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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좋다고 남용말고 약 모르고 오용말자

정순이 2004. 3. 11. 13:19


'약좋다고 남용말고 약 모르고 오용말자'를 아포리즘이 있다. 내가 그꼴이 나고 말았다. 간병하는 날 늦은 우후부터 오한이 들기 시작하드니 해거름녘에는 자꾸 누울자리만 찾아졌다. 내가 간병 하는날 마다 남편이 병원에 들리긴 하지만 몸살약을 지어오라는 말을 할려다가 괜찮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이 그만 혹독한 몸살의 불씨를 지피고 말았으니...

 

늘상 일을하며 단련된 생활을 나로서는 간병하는일이 그다지 힘든일은 아닐것이라며 스스로 물어보고 해답을 내리곤 했다. 그런 내가 몇번의 간병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연 3일동안 온 몸이 욱씬거리는게 손끝도 움직이기 귀찮아졌다. 거울을 보니 내 몰골이 말이 아니다. 얼굴은 뚱뚱부어있고 머리카락은 제 멋데로 헝클어져있다. '그깟 간병쯤이야' 로 안이함이 몰고온 후폭풍에 망연자실 손을 놓고 말았다. 총부리에 총알을 장전하고 뿜어내는 유탄이 나를 향해  쏟아내고 있는듯하다.

 

탁하고 마른기침이 나올때마다 관자놀이가 욱씬거려왔고, 아랫배가 당기는 듯이 조여왔다. 당번간병시간이 끝나고 집에 도착하자 말자 냉장고문을 열어제쳤다. 냉장고안에 쟁여둔 상비약중에서 몸살이 나면 먹을 약 두알을 손바닥에 쥐고 입안으로 털어넣었다. 의약분업으로 인해 낱개를 판매하지 않은 약국의 횡포에 10알 단위로 판매하는 약을 지난번에 사다둔 것 중에 2알을 먹었다. 감기증세가 있을 때 한알을 먹으라는 약사의 말을 귓전으로 넘기며 두알을 삼켰다. 증세가 아주 심했기 때문이다.

 

약을 먹고 침대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미리 온도를 올려둔 침대속은 따뜻하기만 해 낮잠자기에는 그만이다. 얼마쯤 자고 일어났을까. 아직 약기운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현기증이 일었고, 앞에 보이는 사물들이 움직이는 것 처럼 보였다. 약사의 말을 무시하고 두알을 먹은탓이리라.... 그런 와중에서도 아주 나쁜 기억들이 머리를 비집고 올라온다. 언제이던가 며칠동안 피곤해서인지 웃 입술에 자잘한 수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입술 부르트는건 아주 기분나쁘게 가렵기 때문에 수포가 생길기미라도 보일라치면 이쑤시게로 물집을 터뜨린 다음 피부연고를 바르곤 한다. 그런 일이 자주 생기자 하루는 이웃하고 있는 분이 자신이 구입한 피부연고를 하나 사 바르면 직발로 잘 듣는다는 말과 가려운데도 바르면 그저그만이라며 몇번이나 권하는 것이었다. 모든 피부병에 만병통치약처럼 잘 듣는다는 선전을 하기에 의구심이 안든건 아니지만  이웃한 사람이 하는말이라 하나를 구입하게 되었다. 그 약은 나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약이라 아주 독한약이란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 약효과가 빨리나타나지 않나라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때는 더운 여름이라 가벼운 샤워를 하고 난 뒤 낮에 가려웠던 피부에 그 연고를 바르고 한숨을 잤다. 얼마쯤 잤을까. 온몸에 이상한 낌새를 느낀건 새벽2시가 가까워왔을 무렵이였다. 일어나 내 몸을 보니 여기저기 두드르기가 군데 군데 나 있었다. 나 자신의 몸에 난 두드르기만 봐도 모골이 송연해지곤 해 쳐다만 봐도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겨드랑이안쪽부터 시작해 온몸에 굵직한 두드르기가 온몸을 점령하고 있었다. 순간 두려운 생각이 들어 '의려보험'증을 챙겨들고 병원 응급실의 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문진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론은 피부연고를 발랐기 때문에 이런 증세가 나타났단다. 모든 피부병에 잘듣는다는 말에 현혹돼 허가나지 않은 업체에서 제조한 피부연고를 겁없이 발랐으니 피부가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였다. 그 이후로는 다시는 돌팔이들이 팔러 다니는 피부연고는 구입하지 않을것이라며 다짐을 하곤 했다. 미미해보이는 작은 알갱이같은 약일지라도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치사량이 될 수 있음을 절실히 느끼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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