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핑에 정신이 쏠려 유영하고 있는 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8시 30분에 시침이 고정되어있다. 그시간이면 가게에서 남편이 술안주를 해놓으라거나 노래방 가자는 내용의 가벼운 전화 정도다. “여보세요~?” “저, 민규 친구00인데요. 민규 있으면 좀 바꿔주세요.” 굵직한 바리톤 음색이라 민규 친구라는 사실만 밝히지 않았다면 잘못 걸려온 전화로 오인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을 뻔했다. “00이 휴가 나온 모양이구나. 알았다. 잠시만 기다려.” 아들방에 가니 민규는 한잠이 든 듯했다. 두손으로 등을 몇 번 흔들어도 쉽사리 눈뜰 생각을 않는다.
엊그제 친구들과 야외 놀러갔다오드니 피곤했던 모양이다. 더 흔들어 깨울까하다가 '급한 내용이 아니라면 나중에 다시 전화 통화 해도 되겠지' 라는 생각에 “지금 민규 잠자고 있거든, 그러니 나중에 한번 더 전화할래?” “지금 통화하고 싶은 데....깨워주시면 안될까요?” 잠자고 친구를 깨워서라도 통화하고 싶다는 걸 보니 긴한 할말이 있나보다. 아들을 깨워 수화기를 건내니 짧은 통화를 하고 끝낸 듯했다. ‘별 할말도 없는거 같은 데 깨워달라고 하는걸 보니 어른 알기를 우습게 알잖어? ’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럭하고 또 몇 분이 지났을까? 다시 전화벨이 울렸고, 받으니 아까 전화 걸었던 아들 친구였다. 목을 주억거린 듯한 목소리였지만, 다시 바꿔달라고 했다. 또 다시 잠자리에 든 아들을 깨워야 했고, 둘의 통화는 짧은 시간안에 끝을 냈다. 그렇게 전화 받기를 서너 번.. 그래도 싫은 기색 하나 비치지 않는 아들이다. 떠지지 않는 눈자위를 쓸어올리며 전화를 받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으면 친구가 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군에 지원한 탓에 제대를 빨리한 민규는 군에 복무하고 있는 친구들이 휴가라도 나올라치면 만사를 제쳐놓고 친구를 만나러 가기 일쑤다. 야행성동물처럼 낮에는 낮잠으로 일관하고, 땅거미가 뉘엇뉘엇 지기 시작하면 그들은 태동을 꿈꾼다.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어디서 나는 소린지 모르지만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소리를 제어해야겠다는 생각에 손을 뻗어보았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자꾸만 울려대는 벨소리에 가족들이 깰텐데 어쩌나 하는 안타가움에 마음이 급했고, 진원지를 찾아 해결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대체 손이 닿지 않는다. 속은 바짝 바짝 타 들어갔고, 속을 끓이고 있는 나를 외면한 벨은 자꾸만 칭얼거렸다. ‘도대체 어디서 벨소리가 나기에 끊길 생각을 않는거야?‘ 중얼거리며 손을 휘젖고 있는 데 눈이 뜨였다. 잠의 무게에서 헤어나지 못한 눈꺼풀을 밀어올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꿈 이었다.벨소리는 계속 울리고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시침은 4에 분침은 6이라는 숫자에 고정되어 있고, 초침은 바지런을 떨고 있다. ’아니 도대체 이시간에 누가 전화한거야?‘ 지인들 중이거나 친척 중 아프다는 말을 들은적도 없는 데 누구지? 도대체 새벽 댓바람에 누가 용기 있게 전화를 하는거야?’ 궁시렁거리며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저 민규 친군데요. 민규 좀 바꿔주시겠어요? ” 술이 제법 취한 모양이다. 이시간 까지 술을 마셨다면 알만했다. “너 술 많이 취한모양이구나. ” “네...”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술이 한잔 된 사람붙들고 무슨말을 하겠나 싶어 입을 다물었다. “알았다, 잠시만 기다려바라” 아직 새벽이라 깊은 잠에 빠져 들어있을 아들을 흔들어 깨웠다. “민규야, 정영이가 또 전화했다. 좀 바꿔달래” 게으름을 찬미하는 이 아들이 잠의 무게를 밀어내며 전화기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는 게 시야에 들어온다. 잠시 통화하고 또 끊는다.
새벽잠이 많은 남편도 전화벨소리에 잠이 깬 모양인지 "이 새벽에 누가 전화를 하노?” “민규 친구 정영이 있잖아요." "그런데?" 정영이가 휴가를 나왔다네요. 술이 한잔 됐는 지 벌써 세번 째 전화에요. 술기운을 빌어 이 새벽에 전화를 한거겠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참 누가 정영이 와이프 될지 모르겠지만, 마음 고생 좀 하겠는데...^^” 착해 보이는 이미지와 뽀얀 피부까지 더해 여성스러움이 엿보였는 데 주량은 아주 세다는 아들의 귀띔이다. 전화를 끊자말자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는 아들 등에다 대고 “어디 갈려구?” “정영이가 술이 많이 된 모양이에요. 자기가 있는 곳에 좀 데리러 와달래요.” “택시 타고 우리집앞까지 와서 전화를 하면 될텐데 뭐하러 굳이 거기까지 오라누?“ 나의 퉁명스런 말에 ”돈을 다 잃어버렸데요. 원탁을 가운데 하고 친구들하고 술을 마시다 잠시 한눈 파는 사이에 누가 가방까지 다 들고 가버렸다네요.“ 말을 끝내기가 바쁘게 순식간에 옷을 챙겨입은 아들은 황급히 현관문을 열고 나선다. 아들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멀어지고 난 후 ’허,,참 엄마인 내가 이른 새벽에 전화를 해서 나오라고 해도 저렇게 나서기나 할까?‘ 한편으로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동생이나 형이 없다는 생각에 친구들하고 잘 지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더 큰 무게축을 형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