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정령이 사뿐히 내려와 온 산에 봄기운을 수놓고 있다. 어제 늦은 아침 뒷산에 올라갔드니, 하얀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매화가 봄의 척후병인 듯 드디어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었다. 5장의 꽃 잎속 촉수를 드러낸 꽃술들이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듯 환한 미소를 날리며 등산객을 반기고 있는 듯했다.
자신의 삶의 모습들을 이야기하는걸 즐겨하시는 할머니는 "딸같이 편하다는 생각에 내 살아가는 이야기를 숨김 없이 다 털어놓게 된다."는 말씀과 함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곤 하신다. 타고난 깔끔한 성정탓에 쉽사리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의 성격과 맞지않으면 상대를 안하는 탓에 딱히 가실만한 곳도 없을테고, 노인정에서 시답잖은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것조차 마뜩찮아 하시는 할머니는 자신의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손자들 뒷바라지에 전념하는걸로 만족해 하시는 소박한 생각을 갖고 계신다.
또한 남에게 베푸는걸 즐겨하신다.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살므로써 자신의 삶은 이미 과거이지만, 자식에게로 더 내려가서는 손자, 증손자대에게로 미치지않겠나는 나름데로의 주술을 믿고 계신다. 해서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늘 손자 친구를 대려와 같이 먹길 희망하고, 이웃에 나누주길 소망하신다. 그 연치에 누구나 그런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만은, 그 분의 굴곡진 삶의 스펙트럼의 파장은 넓고 두텁다.
손에 구정물(汚水) 한번 묻혀보지않고 곱게 자란 할머니는 결혼이라는 제도권속에 진입하면서 남장을 한 여성으로 허물벗기를 결심했다고한다. 한 가정의 맏이로 태어난 남편은 타고난 여성적인 성정으로 남자가 나서야할 일에 나서기보다는 자로 재는데 허비하는 시간이 많다고한다. 자로재는거야 당위적이겠지만, 행동에 옮기기보다 현실성이 없는 허황된 탁상공론에만 치우치다보니 남들이 앞서서 일을 처리해버리면 자신은 늘 뒷북이나 치는 경우가 허다했고, 법이 없어도 살만큼 선한 심성으로 손해보는걸 손해본다는 생각을 않고 살으셨다고한다. 할머니 역시 베푸는걸 즐겨한 탓에 할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할려고 해도 정도가 지나치니 그나마 배포가 큰 할머니 자신이 나서서 모든일을 서둘러야만 일이 성사되곤했다고한다.
또한 경우에 벗어나는 행동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과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면 짚고 넘어가야한다고한다. 하루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 부근에서 어린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고한다. 소리가 나는 진원지를 따라 현장에 도착해보니 구멍가게 주인인 듯한 덩치 큰 남자가 열 서너살 쯤 됐음직한 아이의 목을 잡고 험악한 인상을 쓰며 악다구니를 쏟아내기에 무슨일인가 자초지종을 물었드니 아이가 가게에서 판매하는 물건을 훔친 모양이다. 할머니는 쥔장에게 큰소리로 “도대체 이아이가 훔쳐간 물건값이 얼마짜리요?” 아이의 도벽을 따끔하게 혼내야한다는 생각이였는지, 할머니의 소리에도 아랑곳하지않고 큰소리 쳐대든 구멍가게 쥔장은 “왜요? 할머니가 변상이라도 하시게요.?” “그래요, 내가 잘 아는 아이라 내가 변상해주려구요.” 그러고는 냅다 오천원짜리 지폐한장을 쥔장 코앞에 던지니 쥔장은 자신의 행동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든지, 머쓱한 얼굴로 가게로 들어가버리더란다. 궁금해진 나는 “정말 할머니 아는 아이였어요?” “아뇨, 모르는 아이였어요. 그래도 힘센 장정에게 당하는 아이가 너무 불쌍하잖아요.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구요.”
“또 한번은 이런일이 있었어요. 비가와서 아이 학교로 가는 길이였는데,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들 몇이서 담배를 피우고 있잖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면 몸에 해로워 그러니 담배는 피우지 말어“ 그랬드니 빳빳이 고개를 들고 있던 아이들이 고개를 숙이며 ”알겠습니다.“ 라더라구요.” “할머니 요즘 아이들은 참을성이 없어서, 어른들의 꾸중을 가만히 듣고 있는 아이가 드물답니다. 험한꼴 당할지 모르니, ‘세상이 그렇거니’ 하고 모른척하고 지나가세요.” “그걸 모르진 않아요. 그러니 아이들 마음에 상처주는 말은 하지않아요. 좋은 말로 충고를 해요. 그럼 함부로 하진 못해요.”
화려한 입성은 아니지만, 늘 깨끗하게 다림질한 옷, 가끔은 장미꽃으로 코사지한 중절모를 쓰고 변신을 하기도하는 할머니...노년의 후줄근함은 엿볼 수 없다. 이런 분이야말로 정의 사도라고 정의 내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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