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제일 강한 사람이다.' 라는 아포리즘이 있다. 그만큼 자신을 다스리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직장 상사로부터
언짢은 충고를 들었을 때나 친구간의 사소한 이견으로 참기 힘이 들때라거나, 형제간의 갈등과 이해다툼으로 빚어지는 여러 일들이 현실의 삶에 맞딱
뜨렸을 때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에 슬기롭게 헤쳐나가기란 마음처럼 쉽지 않고
어렵다.
가까이 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을 다스리는 데 탁월한 성정을 갖고 있다. 가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때면 으레히 나오는 말이 있다. "어쩜 그렇게 강해요?" 라는 말과함께 부러움과함께 시샘어린 시선을 보내게 된다. 그정도로 그녀의 이미지는 우리들 뇌리속에 강인함이 트레이드마크처럼 각인되어있다.
그녀의 남편은 몇 달 전 ' 방광암' 수술을 받았다. 며칠 간 생식기에 이상을 호소해 아내인 그녀와 병원에 들러 검진을 받았을 때는 2기암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초기도 아니라면 본인의 살려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존감이 강한 그녀는 아무리 자신이 어려운 일에 부딪쳤을 때도 표현을 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입이 무거운 사람도 아니다. 우리들이 교류하는 시장공간에서 그녀의 개인기를 두고 웃음제조기라고 할만큼 우리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곤 한다. 그런 그녀가 말을 하지 않았으니...그만큼 그녀는 내강외유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어느 날 주체하기 어려운 듯 눈물샘을 터뜨렸다. 우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무슨일이 생겼구나 하고 짐작만 했을 뿐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고, 보다못한 이웃사람이 그 까닭(우는 이유)을 묻게 되었을 때 그녀는 남의 일처럼 "00 아버지가 암이래요." 그런말을 하면서도 속이 쓰린 듯 마른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그녀의 남편은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결과가 좋았고, 일주일후에 퇴원을 했다. 그녀의 남편은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혈색은 좋아보였다. 가끔 하루종일 등산가는 재미로 시간을 보낸다는 말을 그녀로부터 듣곤 했다. 가끔 그녀가 일하고 있는 곳에 얼굴을 내비치긴했지만, 그때마다 환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정도로 혈색이 좋았다. 다시 수술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수술받을 날짜를 말하지 않았다. 아마 우리들이 병문안 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은 듯 했다. 그런 엊그제 2차 수술을 받았다는 말을 그녀로부터 들었다. 어느 늦은 저녁 그녀가 퇴근하고 난 후 그녀의 남편의 얼굴이 앵글에 잡혔다. 아무래도 수상했다. 수술을 받았다면 몸을 추슬려야 할 것 같은데 밖으로 나온게 아닌가. 것도 술이 한잔 된 모습으로....
이튿날 그녀는 마른기침 소리를 내며 가게문을 열었다. "감기 걸렸나보죠?" 목감기로 인해 목이 잠겨 말하는 것도 힘들어보였다. 그렇게 심하게 걸렸는데도 병원에 가지 않아 더 악화되게 만들었고, 급기야는 안되겠든지 병원에 들렀다. 의사선생님이 '지독한 아주머니' 라는 닉네임을 붙여주면서 목에 이상이 있는지 모르니 사진을 찍어보자고 한 모양이다. 사진을 찍은 결과는 목이 많이 부었다는 진단(인후염)이 나왔고, 그 염증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없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커지는 수도 있다며 말을 아낄것과 당분간은 일하지 말고 쉬라는 것과 함께 병원에 꾸준히 다니라는 의사의 통첩이 떨어진 모양이다.
" 그럼 집에서 좀 쉬지 그랬어요?" "쉴수가 없어요. 내가 아프다고 집에서 드러누워있어봐요. 남편도 엊그제 수술받고 집에 누워있는데, 나까지 누워있어봐바요. 집안공기가 어떻게 되겠어요. 자연히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죠. 그러니 이렇게 나와 있는게 오히려 마음이 편해요. "그래도 쉬지 않으면 감기가 더 악화될텐데요." "병원에 다니면 낫겠죠." 그녀는 좀체로 병원에 가지 않는다. 감기쯤은 우습게 아는 사람이다. 누가(감기와 자신) 이기나 해보자는 식이죠. 참 아이러니하게 병원에 가지않아도 며칠 지나지 않으면 그녀의 감기는 거짓말같이 낫곤했다. 그러나 이번감기만은 예외였다.
"00아버지(그녀의 남편) 수술받았다면서요." "누가 아니래요. 며칠 전 병원에서 수술받고 며칠 간 병원에서 입원해 있으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있었는데도 퇴원을 해버리는거 있죠? " 믿기지 않은 듯 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여튼 못말리는 사람이에요. 엊그제 수술 받고 그제 퇴원한 사람이 술을 마시니..." 이미 포기한 듯 말을 잇는다. "누구한테 부끄러워 말도 못하겠어요. 친정엄마한테서 전화가 와서 몸조리 잘하고 있느냐고 안부를 묻는데 차마 사실데로 말씀을 못드리겠더라구요. 마음고생할까봐서요." "하여튼 대단해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게 쉽지 않을텐데..." "다 비우고 사는거죠.머..." "다들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어디 마음먹은데로 되나요?"
"비우기로 마음먹고 나니 견딜만 하더라구요." 쉽게 수긍할 수 없었지만 부부끼리 마찰없이 사는 걸 보니 사실이라 믿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과 나는 맞지 않아요.(성격)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 그녀의 부군은 몸져 누웠다. 수술하고 난 후 게으름을 경계해야 할 사람이 술을 마시고 함부로 몸을 돌보지 않았으니 그 몸이 견디겠는가.1차 수술 결과가 좋았다고 객기를 부리다 호된 치례를 하게 되것 같다. 암이라는 진단과 함께 수술하는 기간까지, 자신이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울부짖었던 그 날들을 생각하면 남편이 왜 원망스럽지 않겠는가. 긴긴 날들은 아니였지만, 몇 십년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졌을 그녀였으리라. 지금까지 가족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혔으면 의사선생님 말씀을 잘 따라하지만, 얼른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아내를 편하게 해주어야 할텐데 그러지 않는 남편이 못내 원망스러웠으리라. 아내는 아파도 집에서 쉬지도 못하고 가게에 나와 일을 하고있는데 남편인 사람은 몸관리를 하지 않고, 술을 마시고 바깥으로 나돌아다니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였으리라.
아내, 두음절에 담겨있는 무게는!?
제우스신의 명령을 거절하고 갖가지 말재주와 임기응변으로 죽음을 피하려든 시지프스는 가혹한 형벌을 받는다. 그 형벌은 높은 바위산 위로 큰
바위를 밀어올리는 것인데, 밀어올려놓기 직전에 다시 굴러떨어졌고, 또 다시 밀어올려야 되는 것이다. 모든 아내들이 다 그런건 아니지만 많은
아내들이 시지프스가 받는 형벌의 무게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날씨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지는 비오는 날, 아내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