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으로 그어진 곳에서 야채 가게를 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뒤로 넘어지면서 허리와 팔이 겹질려 뼈에 금이 간 모양이다. 가까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병문안을 차일피일 미루던 내가 그저께 다녀왔다. 그때가 4시가 가까워오고 있었다. 그때 부터 날리기 시작하던 눈발이 그 굵기를 더해가면서 어제 아침 6시까지 내리면서 온 세상을 순백의 나라로 변모시켜놓고 말았다. 몇 십년만에 처음으로 내린 많은 눈이라는 기상대의 말이다. 부산에 눈구경하기가 실로 힘들었지만,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할만큼 거리 곳곳에는 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민규가 태어나던 그해도 눈이 아주 많이 내렸지만, 이번에 내린 강설량과는 비교할 정도가 안될만큼 많은 눈이 내렸다. 것도 3월달에 말이다. 출근길 두껍게 쌓인 눈때문에 차량들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해서 위험스런 인도를 따라 걷기보다 많은 사람들은 몇대의 차량들이 다니면서 닦아놓은 찻길로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 한때 월드컵 때 축구를 보기 위해 집에서 나오지 않아 온 거리가 한산했던 2003년도 6월달 같았다.
무너진다는 말은 이전에는 인권을 누렸다는 방증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내게 인권이란 언제나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고, 남의 일상사라 생각하고 살아야 했다. 그러던 내가 결혼 25년 나들목에 서 있는 지금에서 인권을 찾자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였는지 모른다. "넌 50살이 되어야 내가 풀어 줄테니까 그전까지는 밖에 나갈 생각을 말어라" " 내가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지 않는데 여자가 무슨 운전면허증이야?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 조차도 불충(?)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다른 여자들이 건강(관절염)에 좋다며 수영장에 다녀라 하는 모양인데 난 그 여자들의 말을 믿을수 없어. 그러니 아무리 건강을 위해서라해도 운동하러 가는 것도 용납이 안돼. 그 여자들이 남편 눈을 속이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핑계거리를 만들기 위한 말에 불과해. 여자들, 모임이 있으면 뭘해? 남 흉 보는 것밖에 더 할말있어?. 남편인 나도 동창회가 없는 데 하물며 여자인 네가 무슨 동창회가 필요있어?"라는 생각으로 천착되어있는 남편의 고정관념에 속이 상해 눈물도 많이 흘렸다.
남편의 지엄(?)하신 통첩으로 인해 이 나이가 되도록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하루씩 줄어들수록 가슴 저 밑바닥에서 자꾸만 서러운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뭇여성들이나, 동서들도 다들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는 데 스스로 돈을 버는 내가 휴대폰을 하나가지고 있지않다는 건 말도 안돼.' 물론 날마다 집과 가게밖에 왔다갔다 하고 바깥에 잘 나갈 이유가 없으니 휴대폰이 필요치는 않다. 어쩌다 외출할일이 있어 휴대폰이 필요할 때는 남편 것을 사용하면 그뿐이다. 그러나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 뭇 문명이기가 범람을 해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 나자신이 초라해보이기 까지 했다. 가끔 아주 가끔 인터넷으로 물품을 구입할 때나 상대방이 휴대폰 번호를 물어올 때 유선전화번호를 아르켜 주는 초라함이 고개를 들었지만, 구입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든 내가 아들의 휴대폰 구입으로 인해 다 해결하지 못한 게 있어,(휴대폰을 구입할 때 한달동안 무료로 사용하게 해주고 한달이 지나면 돈을 받는 옵션이 있는 모양이다. 한달 이후에는 더 사용할 지 말아야할지 내가 결정하게 되고, 사용하지 않고 해지하면 돈을 돌려준다는 것이었다.
굳이 필요치 않으니 한달 기한이 되면 이동통신업소에 들러 돈을 받아가라는 것이었다.) 이동통신업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이었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휴대폰을 구입하러 가게문을 열고 들어섰다. 말이 통하진 않아 바디 랭귀지로 소통을 나눴다. 그 중국인은 진열장 안에 디스플레이 되어있는 휴대폰이 마음에 들었는지 검지 손가락으로 가르키고 있었다. 중국인의 생각은 알수 없었지만, 중고 휴대폰을 구입하러 들렀던 듯했다. 중국인이 검지손가락을 가리키는 건 중고 휴대폰이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새상품과 전혀 차이가 나지 않을만큼 깨끗했다. 그들의 행동을 물꺼러미 바라보고 있었던 나도 그 휴대폰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은근히 그 중국인이 구입하면 어떡하나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순간 나도 나만의 휴대폰을 하나 갖고 싶은 충동이 요원의 불처럼 일었다. "이런데서도 중고품을 판매하나보죠?" "그럼요. 이뿌죠?" 쥔장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출고된지 얼마되지 않은 제품이에요. 아직 할부금도 다 끝나지 않은걸요." 쥔장은 새상품과 비교를 하면서 새상품을 판매하려고 하기보다 중고품을 광고하기에 더 열을 올리는 듯 했다. 그새 중국인들은 마음에 들지않았는지 가버렸다. 다행이다 싶었다.
새상품을 훑어봐도 마음에 드는 기종도 없어 잘 되었다 싶었던 것이다. 가격도 아주 저렴해 부담도 없었다. 먼저 구입한 사람이 다운 받아놓은 컬러링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었고, 돈이 들어가는 여러 가지 기능도 다운로드 되어 있었다. 준비한 돈이 없으니 나중에 들리겠다는 나의 말에 "돈은 나중에 갖다 주셔도 됩니다." 망설이고 있는 내게 쥔장은 쐐기를 박는 말을 했다. 그순간 친구들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우리 남편도 너거 남편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더랬어. 결혼하고 처음에는 아무데도 나가지 못하게 하고, 머든지 내 생각데로 하는 걸 원치 않았어, 그래도 나는 끝까지 밀고 나갔더랬어.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 소신데로 밀고 나갔지. 한 번, 두 번, 세 번...횟수가 거듭될 수록 남편도 제풀에 꺾였는지, 아니면 남편인 자신이 아무리 말을 해도 아내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는지, 그일로 인해 자꾸만 부부싸움이 일어나니 제풀에 꺾였는지, 것도 남편이 제일 걱정하고 있었던 (아내가 일을 저질럼으로써 발생할지도 모르는 불미스런 일) 이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차츰차츰 말을 않더라구. 그러니 니도 너무 남편말이라면 법이냥 그렇게 생각하고 살지 마라. 결과적으로는 너 자신만 서러워진다."
그런 저런 생각에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중첩되면서 휴대폰 하나 가지는 것 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남편에게
말을 하지 않고 휴대폰을 구입했다는 사실에 걱정이 앞섰다. 물론 남편에게 말을 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지만, 분명 말을 한다면 뻔한
대답이 돌아올 꺼라는 생각이 먼저라 말을하지 않았다. 일단 일을 저질러놓고 보자는 복안이었다. 구입할 때의 용기는
다 어디가고 자꾸만 주눅이 들었다. 남편에게 말을 하긴 해야겠는데 서두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를....며칠 전 그렇게 선언 한 적이
있었다. "나도 인제 나자신에게 투자를 좀 하며 살꺼에요. '인권 선언' 할꺼라구요." 라는 내말에 별반응을 보이지 않던 남편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인터넷을 통해 자전거를 한 대 구입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일정부분 강을 매립해 조성해 놓은 산책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엊그제 휴대폰을 구입했다. 물론 '인권 선언'을 하겠다며 자전거나 휴대폰을 손에 넣었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이틀동안 남편의 기분을 살폈다. 휴대폰을 구입했다는 말을 하기 위해 이틀동안 워밍업을 했지만, 쉬이 말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제 남편의 기분이 좋아보였다.
" 나 어제 휴대폰 하나 샀어요." 말이 없다. "중곤데 전혀 중고 같지 않은 거 있죠? 그리고 처음 구입한 사람이 여러 가지 기능을 다운 받아놓은 거도 있었어요." 성격이 급한 남편이 큰소리를 내지 않고, 반응이 없는 걸 보니 무사히 넘어가려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많은 눈이 왔어도 뒷산에 가겠다는 남편을 따랐다. 등산을 하는 도중 "휴대폰 사용료는 정액제로 했는데 한 2만원정도 나올 것 같아요. 한달에 10분 통화하면 기본요금이 1만 3천원이지만, 1만5천원이라는 요금을 내면 35분동안 통화할 수 있다네요. 처음에는 기본료로 정했다가 아무래도 1만5천원을 내고 35분동안 사용하는 게 더 유리할 것 같아 바꿨어요. " "나는 통화할 일이 많이 없을 것 같아서 기본료로 정했다." 1만5천원으로 사용료를 정한 내가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두시간이 넘도록 등산을 갔다왔어도 휴대폰에 구입한 나의 결정에 못마땅해 하지 않든 남편(속으로야 왜 그러지 않았겠나만은) 이 술이 한잔 들어가자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내 눈을 잡아끌며 남편앞에 앉힌 나를 향해 "내 이야기 한번 들어봐라. 난 있제, 니가 내 모르게 다른 사람과 비밀스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는 거 생각하니 기분나쁘다."
"그리고 내한테 휴대폰 산다는 말한마디 없이 휴대폰을 구입했다는 것도 용납이 안된다. 엊그제 중고휴대폰이 있다는 말 한마디 하고
난 후 휴대폰을 덜컥 샀다는 게 용납되지 않는다. " "00아빠, 용납이라뇨? 아내한테 용납이란 말이 어딨어요?" "내가 갖고 있는 휴대폰
때문에 니도 억울한 생각이 들어 구입했다면 내 휴대폰 반납시킬란다. 그럼 된거제?" 눈길을 등산한 우리부부는 드라마 '이순신'을 보면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오랜 시간 잠을 잔 것 같이 눈이 뜨인 나는 낮에 다 읽지 못했던 신문을 보기 위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남편도 눈을 떴다.
아침인 줄 안 남편은 " 커피 한잔 안 끓여주나? " "지금 아침인 줄 아세요? 밤이에요. 아직 12시도 안되었는걸요." "그럼 아침이 아니란
말이가? " 눈을 떤 남편은 아침인 줄 안 모양이다, "지금 몇신지 시계 한번 보세요." "그럼 아직 밤이란 말이가? "믿기지 않는
다는 듯 일어난 남편은 잠이 오지 않는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때부터 시작된 남편의 연설은 새벽 4시를 넘기면서도 끝이 날줄 몰랐고, 휴대폰을
반납시킨다는걸로 결론을 맺고서야 잠을 자는 남편이다. 백만원짜리 옷을 사입는다는 것도 아니고, 여행을 간다는 것도 아닌데, 겨우 휴대폰 하나로
인권 선언을 할려고 했던 나의 revolt는 그렇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