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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들과 보낸 명절 풍경

정순이 2005. 2. 10. 20:15

 

“이 돈으로 노래방 가고 싶으면 다녀오세요.” 추석이라면 성묘 갈 시간이지만, 설 명절에는 성묘를 가지 않는 남자동기분들은 일찌감치 차례상을 물리고 화투판을 벌렸다. 화투판을 벌린지 불과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든 것 같은데도 벌써 적지않은 돈을 땄는지, 바로 밑의 시동생이 노래방을 보내주겠다면 2만원을 쾌척했다. 명절때만 되면 식사를 하고 포만해진 배를 소화시켜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연례행사처럼 이어져왔지만 큰시숙님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 부터는 노래방가자는 말을 하는것도 부담스러웠는지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처음 우리 다섯 동서들이 노래방에 갔을 때도 남편 동기분들이 개평 뜯은걸로 갔었다.  큰동서가 노래부르는  걸 좋아해 아랫동서들을 부추키는 일이 모멘텀 되었으니 큰동서가 노래방엘 가자는 말을 하지 않으니 아무도 나서진 않았다.


그런 오늘 큰동서가 “다섯째 삼촌이 돈을 제법 땄나봐, 우리더러 노래방 갔다오라고 개평 뜯은걸 내놓았는데 우리 갔다올래?” 실로  몇 년 만에 일이다. 큰 시숙님 살아계실때만해도 큰 동서가 개평뜯은걸로 노래방 갔다오겠다는 말을 했었고, 명절 음식 준비하느라 고생했던 여자들을 생각해서 흔쾌히 내놓았고,노래방 갔다오는게 당연한 통과의례처럼 자리매김되었었는데...“그래 우리 소화 시킬겸 노래나 실컷 부르고 오자”며 다들 맞장구를 쳤다. 가게한다는 핑계로 명절 때나 기제사때마다 제수음식 만드는일에 참석하지 못하는 나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노래방한번 가자고 해야겠다며 마음은 먹고 있었다. 그나마 가게가 잘 될때만해도 제수음식 장만할 때 참석하지 못함의 미안함을 점심 한끼 시켜주는걸로 상쇄시키곤 했지만, 지난 해부터 그마저도 거절하는 큰동서다.

 

명절이고 12시 쯤 이라 문을 열어두었을만한 노래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긴했지만, 몇 년 전을 상기하며 집을 나섰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몇집을 거쳤지만 문을 열어둔곳이 없었고, 겨우 한곳을 찾았지만 지하에 있었다. 아쉬운데로 지하에 있는 노래방을 노크했고, 우리5섯 동서들의 한 시간동안 놀이문화를 펼칠 스테이지 무대가 만들어졌다. 느끼한 명절음식에 지친 듯 시원한 맥주도 주문했다. 큰동서가 테이프커팅을 했다. 성량이 풍부한 큰동서는 왠만한 높낮이의 노래도 소화를 잘 시키는 탓에 다양한 노래를 부른다. 어디서 정보를 얻는지 요즘 나온 신곡들도 곧잘 선곡을 한다, 물론 옛날 가수가 부른 신곡 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어서 둘째 동서가 마이크를 잡았다. 둘째 동서의 레파토리는 다양하진 않다. <칠갑산>을 시작으로 <오빠는 잘있단다>로 이어진다. 가끔 높은음에서는 잠시 목소리가 멈추기도 하지만 이전에 비하면 제법 잘부르는 편이다. 셋째동서의 성량은 아주 곱다. 탈렌트를 능가할만큼 이뿐딸이 연예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환하게 꽤뚫고 있다. 딸의 영향탓인지 셋째 동서도 젊은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곧잘 선곡한다. 생소한 곡을 선곡할 때는 셋째동서의 다양한 레파토리가 부럽기까지 하다. 하긴 사회생활의 폭이 넓은 이유도 있을것이다. 넷째인 나는 부르는 곡이 정해져있다.


생소한 곡은 소화해내지 못할 것 같아 일찌감치 포기를 하고 만다. 다른 사람들이 신청한 곡목이 마음에 들었을 때 외워둬야겠다는 생각을 곧잘 하곤 하지만, 매번 그때뿐이지 금새 잊어버리고 말아 다시 노래방에 들렀을때는 기억나지 않아 선곡할때는 늘 신청했던 곡목을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 되어지고만다. <개똥벌레>,<석류의 계절> 그나마 남편과 같이 노래방에 갈때는 선곡할 수 없었던 곡을 불러보기도 하는 여유를 갖긴한다. 내 아래로 막내동서도 나와 비슷하다. 남편직장 동료분들과의 모임도 잦았을 법 도한데 노래만큼은 썩 잘부르지 못한다. 그러나 몇 번 같이 다녀본 지금은 많은 발전을 보인다. 특히 음률 중간마다 딱딱 끊어지는 듯 한 스테카토형식의 노래는 아주 역동적으로 들려 듣기좋았다. 해서 큰 동서가 부르던 흥겨운 음악의 2절을 막내동서에게 넘기며 바톤을 이어가게 했다. 한시간이 지나가자, 쥔장이 30분을 서비스로 더 넣어주었고, 1시간 15분이 넘어서자 다들 지친 듯 아니면 자신들의 목소리에 맞는 곡목의 선택에 자신이 없는지 모니터 상단에 선곡한 아라비아 숫자가 보이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린 우리동서들은 좁은 골목길을 돌아서 시댁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