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상전벽해

정순이 2007. 9. 1. 11:56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변함을 비유한 말 이라고 정의돼 있다. 늘 밖에서 모임을 갖다가 몇 년 만에 초대한 집에 가보니 상전벽해를 느낄만큼 몰라보게 달라져있었다.


‘사장님, 전화 왔습니다. 사장님 전화 왔습니다.’ 남편이 휴대전화 컬러링이 울렸고, 폴드를 여니 앳된 여자의 목소리는 사라지고만다. 멋이라곤 부릴 줄 모르는 남편은 전화국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구입했던 휴대전화를 몇 년째 사용하고 있다. 액정화면이 시커멓게 된지가 꽤 오래됐는데도 내가 해결해주지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을 않는다. 서비스센터에 보내라는 남편의 말에 "수리비용보다 폰 하나 사는게 더 싸게 치일꺼에요. 이번 기회에 하나 교체해요." 유행에 뒤떨어진 디자인, 몇 년째 사용을 해 여기저기난 긁힌자국...그래도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다며 휴대폰 단말기를 교체할 생각을 않는 남편이다.

 

타고난 무뚝뚝한 성격으로 전화를 주고받는 대상은 거의 친구들이다. 아는척을 하는걸보니 친구인 듯했고, 모임 날짜가 됐으니 전화를 한 듯 했다. 남편과 마음이 맞아 직장다닐때는 곧잘 둘이서 만나 밤을 지새곤했는데 지금은 모임이 아니면 만날 기회가 없다. 서너 개 친목회 모임이 있었지만, 성당친구들 모임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고, 나머지 두 개 중 하나는 격월제 짝수 달 학교친구들과의 모임이고, 나머지 하나는 홀수 달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로 구성된 친목회 모임이다. 

 

어저께 모임은 회원수가 많지않은 단출한 4커플이라 번잡스럽지않은게 무엇보다 좋다. 회원수는 많지않으나 격월제로 모임을 하니 자신의 차례가 될려면 거의 일년이 되어서야 자신의 차례가 된다. 집안에서 음식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위해 밖에서 모임을 갖곤한다. 그러나 어제 같은 경우에는 이사를 하고 난 후 처음 자신의 차례였으니 집에서 하게 된 것이다.


통화내용을 대충 들어보니 김해에서 여행사를 하는 친구인 모양이었다. 여행사 직업 특성상 외국을 다닐 기회는 많겠지만, 전화가 올때마다 다른 나라의 이름을 들을때면 풍요속 빈곤에 시달린다.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로밍폰으로 전화를 하니 상대방이 외국에서 전화를 한다고해도 거리감으로 인한 음량이 나쁜건 아닌모양이다. 지난번에는 로스엔젤레스라고하는 거 같드니 어제는 중국이라고 한다. 특히 계절적 요인도 작용을 했겠지만, 여행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걸 미루어짐작할 수 있다. 특히 8월달은 한국에 있는 날보다 외국에 있는 날이 많았다고하니 그만큼 사업이 잘 된다는게 아닌가.


며칠 전에는 두 딸들에게 사무실을 맡겨놓고 남편은 미국에 아내는 캐나다로....가족이 다 외국에 나가있었던적도 있다고하니....사업이 번창일로라는 궤도에 잘 착지한 모양이다. 한때 국내 굴지의 대그룹에서 기획실장이라는 직위에서 직장을 그만둬야할지 그렇지 않으면 눈치를 봐가며 계속 다녀야할지 고민하던게 엊그제 같다. 직장다닐때도 NGO 활동이나 남다른 친화력으로 인맥을 쌓아뒀던게 발판으로 작용했을터이고, 큰 자산이였을테다. 

 

55평이나 되는 넓은 집...여주인의 남다른 손재주와 짭짤맞은 솜씨로 평수가 넓다는 생각이 들지않을정도로 정돈되고  잘 꾸며져있다. 거실에서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없애고 원목으로 아치형 문설주를 만들어놓으니 아늑해보이며 운치있고 고급스러워보였다.

 

교자상위로 정갈하게 차려놓은 음식하며, 외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면세점에서 구입했다는  발렌타인21년도산을 아깝다는 생각없이 꺼내는 부부...몇 순배 돌리고나니 병이 바닥을 드러냈고, 다시 보드카를 들고 나온다. 발렌타인21년도산은 아주 부드러워 얼음을 두어개 띄운 양주를 몇 잔이나 비웠는데, 보드카는 목에 닿는 느낌이 다르다. 비로소 양주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 지방에서 제조한 증류주라서인지 도수가 높다는 말을 들었는데, 사실이였다. 보드카에는 얼음보다 쥬스가 제격인지, 200미리 유리컵에 10분의 1정도 따르고 노란 오렌지 주스를 1:3 비율로 부어준다. 정말 상전벽해다. 신혼시절 일주일 훈련을 떠난 빈자리에 시누이가 채워줬었고, 시누이의 제안에 어느 레스토랑에 갔었고, 거기서 제일 약하다는 핑크레이디를 주문해 목구멍에 넘기지 못하고 시누이 앞으로 밀었던게 엊그제 같은데...^^

 

몇 잔의 발렌타인과 보드카 두 잔을 마시고나니 어느새 얼굴이 달아올랐고 취기가 더해졌다. 취기속으로 그들의 삶과 내 삶이 비교된다. 그들은 잘 뻗어나가는데 컴퓨터 앞에서만 시간을 보내며 세월을 낚시했던 나자신을 내려다보니 상대적빈곤감이 엄습해온다.

'기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람회  (0) 2007.09.09
사회 복지사  (0) 2007.09.05
외출  (0) 2007.08.19
여름밤의 향연  (0) 2007.08.07
탁발승  (0) 2007.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