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산홍엽으로 온산을 붉게 물들이는 가을의 중심에 걸터앉아있다. 자주 가는 사이트 게시판에 올려진 글을 보고 있는데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머하노~~?" 컴앞에서 고정하고 있던 시선을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바라보았다. 친정 둘째 올케였다. 항상 단정한 차림새로 깨끗함이 트레이드 마크이던 올케가 부시시한 헤어스타일과 남루한 입성으로 가게에 들렀다. 방금 전까지 일을 하고 온 듯했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둘째오빠내외분이다. 명절 때나 친정부모님 기일때나 항상 가꾸고 있는 푸성귀를 친척들에게 나누어주곤한다. 아주 가끔이긴하지만 둘째 오빠 내외덕분에 무공해 야채를 섭취하는 셈이다.
둘째 올케는 밭에서 일을마치고 집으로 가는길에 우리가게에 들린 듯했다. 집으로 갈려면 우리가게를 지름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에둘러 가면서까지 우리가게에 들린 마음씀이가 여간 고맙지않다. "언니가 어쩐일이야~?" 함박웃음을 입가에 가득 머금고 올케를 맞았다. 둘째 올케는 가슴가득 안고온 물건을 내려놓으며 힘에 부친 듯 힘겨워했다. 투명한 비닐봉투 안으로 보이는 말린 붉은 고추며, 아주 큰 비닐봉투 두어개를 더 놓는다. "언니, 이거 머하러 가져왔어~?" "매번 그냥 얻어먹는다는게 여간 미안한게 아냐... 나는 해주는 것도 하나 없는데 말이야...나도 농사를 지어봐서 알지만, 농사짓는게 보통 힘들어야지."
"그런 부담 갖지마, 내가 농사를 지어니까 갖다주는거지, 안그러면 마음은 있어도 못 갖다주는걸."고마운 마음에 빈손으로 보내기 뭐해 멀 사주려니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가게를 벗어나며 달음박질하고 있었다. "오빠가 차에서 기다리셔, 그래서 빨리 가야해..."라는 말을 남기고 휑하니 사라지는 둘째올케....올케가 가고 난 뒤 비닐봉투를 열어보니 그 속에는 소담스럽게 담겨진 가을내음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그 속에는 사과, 배, 단감....다른 비닐봉투를 비집고 열어보니 거기에는 부추, 노란호박, 파란호박, 풋고추, 호박잎.....여러가지 야채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자꾸만 코끝이 시큰 거려왔다.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하며 전화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었다. 평소때는 오빠가 받으시드니 둘째올케가 전화를 받는다. 보이진 않아도 알수 있었다.
둘째 오빠는 운전을 하고 있으니 올케한테 휴대폰을 건낸 듯했다. "언니, 너무 고마워 너무 고마워서 다시 전화했어." "마음 쓰지마..." "그래, 언니 알았구, 다음에 만났을 때보자...." 지나간 추석때만해도 그랬다. 추석은 시댁에서 보내고 추석 다음 날 둘째 오빠네 안부전화를 드리게 되었고, 이야기 말미에 친정부모님이 계시는 음택에 몇 년째 가지 못했다는 말을 하자, 둘째 오빠는 흔쾌히 자신이 차를 몰고 데려다 줄테니 언제든지 가고 싶으면 말을 하라는 것이 아닌가.
명절 당일은 시댁에 있어야기에 친정 부모님이 계시는 곳에 성묘를 간다는건 타이밍이 맞지않아 생각도 못한다. 그러니까 5년 전 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민규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 하루 시간을 내어 시아버님 산소와 친정 부모님 산소를 찾아 뵌 이후로는 몇 년 동안 가지 못해다. 명절이 되어도 친정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는 미안함에 마음이 항상 무겁게 짓누르곤 했다. 매번 추석때마다 친정부모님이 계시는 곳에 가고 싶은 마음은 항상 갖고 있었지만 다음으로 미루곤 했다.
집집마다 대저 그렇듯이 명절 날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해서 시댁에서 명절을 지내야기에 친정부모님이 계시는 음택을 찾는다는건 힘들다. 따로 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친정부모님을 찾아뵐수 없다는 서러움이 자꾸만 고개를 들고 일어난다. 이래서 딸은 소용없다는 말을 하는가? 시집간 딸들이 가지는 핸디캡이라는 사실에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늘 마음한켠에 부채(負債)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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