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믿음에 패배한 희망의 불씨

정순이 2004. 9. 7. 12:22

가끔 아들을 우리가게에 보내 필요한 부위를 구입하기도 했고, 자신이 직접 와서 구입해 가기도 했던 45살의 P녀...외모에서 풍기는 그녀의 심성은 참 착해보였다. 세상의 혼탁함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여성으로 보였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을 남편으로 둔 아내들은 대개 그렇겠지만, 자식에게 들어가는 교육비 며, 남편의 용돈을 따로 챙기고 나면 실지 자신에게는 투자할만큼 여유돈이 남아나지 않는다.

 

P녀 역시 다른 아내들의 모습에서 비켜난 것 처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검소해 보였다. 나붓나붓한 목소리로 P녀가 얼마나 얌전해 보이는지 미루어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이 노랗다 못해 창백해 보일때도 있었다. 그 얼굴 사이로 언 듯 언 듯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는 그녀의 피곤한 삶이 엿보이곤 했다. 그런 P녀가 아프다는 말을 들었든건, 몇 달 전 이었다. 같은 종교를 가진 P녀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로 부터다.

 

"같이 다니든 사람은 왜 요즘 통 보이지 않아요?" "아, 00엄마요?" 아이들 이름을 모르니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말도 마세요. 지금 죽을 날만 기다리는걸요." "네? 갑작스럽게 무슨말이에요?" " 유방암인걸요, 것도 말기라고 하던걸요" "그래요? 나이도 아직 젊어보이든데...."말끝을 흐렸다. "누가 아니래요. 유방암이라고 진단이 나왔다면 자신을 위해 몸도 아껴야 하구, 먹는 음식도 가려 먹어야 하는데 자신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 의사 소견은 오래 살지 못한다고 했나봐요. 그런데 그녀는 믿지 않는거 있죠?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잘 챙겨먹어야 하는데도 건너 뛸때가 많았고, 민간요법으로 좋다는 걸 좀 했으면 싶었는데 그러지 않더라구요. 옆에서 보는 우리가 다 안타까울 정도로 답답한거 있죠?."

 

"혹시 믿음이 있어서 그런건 아니에요? " P녀와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가진 종교는 '여호와의 증인' 이다. 몇번이나 교회에 같이 나가보자고 전도를 하고 했지만, 나의 생각이 확고한 걸 알자 P녀와 같이 다니는 분은 지나가는 길에는 꼭 가게에 들러 매달 발급하는 신문만 한부 주고 간다. 그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아직까지 한번도 '여호와의 증인'에서 발간한 신문을 보지 않았다. P녀가 그렇게 되고부터는 아이들의 발걸음도 뜸했다. 그런 엊그제, P녀와 같이 다니든 그분이 신문을 들고 가게에 들렀다. "좀 놀다 가세요. "라며 자리를 권했다. "참, 요즘은 좀 어때요?"

 

 내가 P녀의 호칭을 쓰진 않았지만, 내가 누구의 안부를 묻는다는거 쯤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눈치를 챈 듯 "며칠 전에 죽었어요." " 네? 벌써 죽었단 말이에요?" " 말도 마세요, 온 몸이 퉁퉁부어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24시간을 앉아서 생활하다싶이 했는걸요. 그러니 그게 어디 사람 사는 짓이에요? 어차피 살아날 가망이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죽는게 본인을 위해서나 가족을 위해서도 바람직한거죠." "우리 주변에 보면 유방암이라는 진단을 받고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어요,

암세포가 번져있는 유방을 절제하는 시술을 받고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지나가는 게 보이든걸요." "누가 아니래요. 자신의 몸은 자신이 관리를 잘 해야 하는데 방심을 했으니 저 지경이 되었죠." P녀가 방심했든건 의사 소견보다는 하느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더 무게중심이 기울었던 듯했다.

 

믿음이 독실하면 아무리 병마와 투쟁을 벌려도 인내할 수 있는지...모든걸 하느님한테만 의존했다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둔한 탓인가? 아님 하느님을 맹신한 탓에 자신의 병은 하느님이 다 낫게 해줄꺼라는 믿음에서인가, 너무 맹목적이라 전혀 예후하지 못한 청맹과니였던가. 참으로 답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