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가을속으로 성큼 걸어들어간 것 같은 선선한 날씨는 아침저녁으로는 춥기까지 해 창고속에 넣어두었던 온열기를 꺼냈다. '옥메트' 의 은은한 온기가 온 몸으로 전달되어지는 게 너무 따뜻하게 느껴지는 걸보면 사람이 '간사한 동물' 이라고 일갈한 어느 선인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여진다. 불과 며칠 전 열대야속에 밤잠을 설쳤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오늘은 온열기의 힘의 노예로 전락을 하니 말이다.
싸늘하다는 생각을 전달해주는 말초신경이나 피부에 닿는 차가움은 오늘 새벽에 유격 훈련으로 '행군'을 하는 아들을 생각하면 사치스럽다는 생각까지 든다. 군대는 봄과 가을은 건너뛰고 여름과 겨울이라는 계절밖에 없다는 아들의 말을 떠올리면 이만한 추위에 웅크리는 나 자신이 엄마의 강인함이 숨어버린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하다. 보통 군대시설은 적의 시선을 교란시키기 위해 나무색과 같은 군복과, 사방으로 둘러쳐져있는 나무들로 인해 산중턱에 위치해 있는곳이 많다. 그러니 지정학적 특성으로 인해 봄과 가을의 계절은 없고, 염천같은 여름과 동장군이 엄습하는 겨울 밖에 없는 것 같다. 겨울이 오면 다시 꺼내 쓸 생각에 창고속에 깊숙히 넣어두었던<옥메트>를 꺼내 온도를 올리니 따뜻한 온기가 경직되어있는 온몸을 감싸며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가게에 들릴 때마다 신경통을 호소하던 젊은 할머니는 요즘 신경통에 대해서는 통 말씀이 없으셨다. 지나친 운동으로 달포 전부터 삐거덕 거리던 다리통증이 인제 허리까지 점령해 북진을 계속하고 있는지 아프지 않는곳이 없다. 약지손가락, 검지, 중지...뼈마디가 있는 곳에는 다 아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할머니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젊었지만 달리 부를만한 호칭이 없을때는 호칭은 생략하고 "전에 허리 때문에 고생하시드니 요즘은 어떠세요?"
"내가 다니는 <세라스톤 의료기 홍보관>에 다니고 부터는 통증은 아예 사라졌어요. 내가 신경통을 치료하기 위해 안가본곳이 없어요.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아보았구요, 병원에 들러 신경통에 대한 치료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더라구요. 나이가 들어 어쩔수 없나보다 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2년 전에 우연히 <세라스톤 의료기 센타>에 들러 치료를 받으면서 씻은 듯이 나은거 있죠? 왜 새댁도 어디가 아파요?" " 네...다리가 아파서요." "그럼 내가 표를 한 장 갖다줄테니 그곳에 한번 가봐요. 같은 일행중 한분은 걷지도 못한 상태로 들러 한달동안 치료를 받고 인제는 가뿐해졌다며 너무 고마워하는거 있죠?" "나같이 젊은 사람들도 오기도하나요?" "그럼요, 새댁보다 더 젊은 사람도 오는걸요."
"그럼 언제 한번 가볼까요?" "내가 원장님께 잘 말을 해 놓을테니 꼭 한번 들러봐요. 신기할 정도로 좋아질 꺼에요.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말도 못해요." 장대같은 비가 쏟아지는 아침이였지만 젊은 할머니와의 약속을 생각하며 출근시간보다 한참 이른 시각에 현관문을 나섰다. 여러사람의 말을 빌려 들어보면,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한다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다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서둘러야되지 않겠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릎통증은 있어도 운동을 하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평소 뛰든 속도보다 많은 단계를 낮춘다음 뛰고 있는 <러닝머신>도 뒤로미룬 체 <세라스톤 의료기 센타>로 발길을 향했다. 멀지않은 곳에 <세라스톤 의료기 센타> 라는 글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제법 멀리까지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강좌를 하고 있는 듯했다. 영 쑥스럽다. 많은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다는건 용기가 필요했다. 살며시 안을 들여다 보았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침대위에 몸을 누이고 있었고, 그 앞으로 나 있는 단상에는 젊은여성이 마이크를 잡고 연설하고 있었다. 삐죽거리는 내 모습을 본 어느 여성이 침대에 누운채로 낯선 이방인인 내게 일러준다. "책상 소쿠리에 담겨있는 표보이죠?"
그녀의 검지손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소쿠리속에 번호표가 보였다 표를 봅아 들었다. '그다음은요?' 하는 듯 시선을 보내자 "바깥에 있는 통에 비닐봉투를 가져온 다음 신고 있는 신발을 넣어 신발장안에 넣어두고 저기 안쪽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자꾸만 망설여졌고, 마지못해 그녀가 가르켜주는데로 하면서도 자꾸만 뒷목이 간질거려왔다. 낯선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오고 말았다. "저 그냥 갈래요."라는 말을 남기고....나를 소개한 분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왔다. "소개를 하는거니까, 기본적으로 3일은 다녀야 내 체면이 서요." "걱정마세요, 무슨일이 있어도 3일은 채울테니까요." 하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고, 자꾸만 뒷목이 뻐근해옴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