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우미
“아니 어저께 집에 없었나~?” 생뚱하게 무슨 말인가 싶어 그녀의 동선을 따라가니 “퇴근했지 싶어서 아무리 벨을 눌러봐도 반응이 있어야제...” 바로 앞집에 사는 이웃분인데 음식솜씨가 아주 좋다. 어느 가정없이 다 그렇겠지만, 12월달이면 김장을 담는다. 그런데 여느집과 다르게 김장양이 얼마나 많이 담는지 현관문앞에 쌓여진 배추양을 보면 김치공장을 방불케한다. 며느리몫, 딸 몫 또는 지인들에게도 나눠준다는 말을 곁들일때면, 타고난 그 성정을 미루어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관앞에 잔뜩 쌓여있는 배추를 볼때마다 어떻게 할지 암담할 거 같은데도 언제 다해버리는지 뚝딱 헤치우고 먹음직스런 김치를 들고 인터폰을 누른다.
그런 엊그제 출근길에 현관문을 열어보니 또 많은 양의 배추가 현관문밖에 쌓여있었다. 어떤 행사에 참석하는길에 김치를 들고 갔드니 다들 너무 맛있게 잘먹었고, 그 중에 한 분은 김치가 너무맛있다며 좀 담아줄수 없느냐고 부탁을 한 모양이다. 너무 정중하게 부탁을 하는바람에 옆에 있던 남편이 얼른 대답하지않는 아내의 허리를 쿡 찌르고 난후 그렇게 하겠다고 아내의 대답을 가로챈 모양이다.그렇게해서 다시 김치를 담게되었고, 복도에 쌓여진 배추를 본 날 외면할 수 없어 “나중에 맛있게 담아 좀 줄게...”라는 말을 듣긴했지만, ‘인사차 그런것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두서없는 일상으로 잊고 있었다. 그랬는데 그 분은 김치를 담아 인터폰을 눌렀던모양이다.
커피포터에 물을 넣고 스위치를 올렸다. 종이컵에 커피를 타면서 나와의 대화가 잠시 중단되자 바깥을 응시하든 그분이 아는 사람이 지나가자 몇 옥타브를 높여 아는척을 했다. “어디가? 놀다가...” “여기서 머해?” “커피 한잔 끓여준다네. 마시고 갈려구...” 90도 각도의 구부린 허리로 걸음을 걷고 있던 할머니가 가게안으로 들어서자 어떤 아리따운 여성이 할머니를 뒤이어 가게안으로 들어섰다. “공과금은 납부한거야?” “네..내고왔어요.” 자리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뒤따라 들어오는 낯선이에게 그렇게 묻고 있을 때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뽀얀 피부와 남에게 뒤지지 않을정도로 미모를 갖추고 있는 그녀는 아주 여유로운 웃음으로 할머니 말씀에 응대를 했다. 아무리 봐도 할머니하고는 언밸런스처럼 느껴졌지만, 행여나 모를 실수를 생각해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저렇게 이뿐 며느리가 있나? 아님 딸인가?’ 여러가능성을 열어놓고 누군지를 점치고 있었다.
“도우미여...” “가끔 와서 공과금도 나 대신 납부해주기도하고, 빨래도 해주기도하구..해...” “어디 구청에서 나오셔서 봉사하시는거에요?” “아니에요, 보훈청에서 나온거에요.” 생소하다. 보훈청에서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가족들 중 환자가 있다거나 독거노인이 있을 경우에는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가보다. “매일 나오는거에요?” “아니에요.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일주일에 세 번정도 나와서 여러 가지로 돌봐드리는거죠. 간호업무도 같이하기도하구요.” “정말 좋은일을 하시네요.” “멀요. 저도 보훈청에서 봉급을 받고 일을하는걸요. 내 관할 구역은 반송쪽인데 시간이 남아 이쪽으로도 활동하게된 셈이죠.”
직장구하기나 취직하기가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할 만큼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특히 우리동시대를 살고 있는 나이에서는 더 어렵다고들한다. 눈을 돌려 ‘사회복지사’에 도전해보는건 어떨까? 실버산업 발달로 노인복지사가 인기직종, 21세기 유망직종으로 노인복지사가 뜨고 있다고하니 한 번 도전해볼만도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