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제사문화

정순이 2006. 12. 13. 11:49

 

큰 시숙님이 돌아가신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타고난 깔끔한 성정으로 늘 깨끗함을 유지하시려던 모습이 눈에 선하기만 한데 벌써 4년째다. 명절때마다 음식준비에 참석하지 못하는 미안함이 늘 마음의 부채로 자리하고 있어 등산을 갔다온 남편에게 가게를 맡기고 시댁으로 향했다. 기일 하루 전인 어제 제수(祭需)를 구입해간 큰동서로부터 “내일 저녁에 저녁이나 먹으로 온나”는 의례적인 인사치례지만 항상 배려를 잊지않는다. 시어머님이 계시지 않아 할 일이 줄어든 큰동서는 하루 전 날 제수를 구입해서 당일 이른아침부터 혼자서 음식을 다 장만해놓는다. 해서 명분은 제수음식 장만하는데 거들어준다는거지만, 행사가 없으면 만날일이 없어 적조했던 동서들과의 담소로 시간을 메꾸고 돌아오곤한다. 간선도로 옆이라 늘 잠겨있는 시댁의 문은 특별한 날에는 빗장이 걸려있지 않다. 대리석 계단을 올라가자 마루아래로 신발이 몇 켤레 보이지 않았고, 작은방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누고...”라는 큰동서의 목소리가 적적하고 무미건조하든 공기를 가른다.


두 짝으로 된 미닫이 문을 열고 방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자 둘째 동서와 큰동서가 전열기의 온기를 느낄수 있는 침대위에서 튀김음식이 담긴 쟁반을 가운데 두고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늘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제일먼저 옷을 걷어부치고 음식장만에 앞장서는 마음씨 착한 둘째 동서가 일찌감치 시댁으로 왔던 모양이다. 둘째 동서가 반색을 한다. “어서온나, 시간 있드나?” 둘째 동서의 말에 미안한 마음이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다. 고의적인 건 아니지만, 늘 가게를 한다는 핑계로,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 제수음식장만에 참석하지 못하는 나를 배려하는 둘째 동서의 친정엄마같은 마음씀씀이에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럼요. 오늘같은 날에는 올 수 있는걸요.” 가벼운 미소를 흘리며 침대위로 올라가 동서들과의 이야기에 무임승차했다.


늘 그렇지만, 큰동서의 입담은 목소리의 진폭을 오르내리며 청중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때로는 격한 감정으로  공명을 울리기도 하고, 때로는 조곤조곤한 어투로 상대를 압도해 나가기도했다. 다시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바깥으로 나간 큰동서가 쟁반 가득 절편을 갖고 들어왔다. 튀김음식과 과일로 포만상태였지만, 다시 절편을 보자 구미가 당긴다. 식탐이 많은 쥔장을 잘못만났다며 투덜거릴 것 같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건 차후에 생각하기로 하고 미각기관을 충족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두어 시간동안 동서들과의 담소를 뒤로하고 가게로 돌아왔고, 평소보다 조금 이른시각 가게를 마치고 남편과 시댁에 갔다. 아버지기일이라 울산으로 발령을 받은 큰 조카도 보였고, 서울에 있는 둘째 조카도 와 있었다. 제사 지낼 시간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남아있음에 무언의 눈빛으로 의기를 모으고 마루에 있는 가스열풍기앞에 동그란 원을 그리며 둘러앉았다. “요즘은 제수상 차리는 데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집들이 많다고 하더라구....”둘째 동서가 포문을 열자 다들 한 마디씩 뒤를 잇는다.


“다른 집 제수음식상 차리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시든 음식으로 상을 차린다더라구... 고등어도 올린다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심지어 케이크를 올리는 사람도 있다는 소리도 들었어.” “그건 너무했다. 일반적으로 케이크는 즐거운 행사때는 빠지지 않는 음식인데 제상에 올린다는 건 좀 그렇네요.” 안방에 앉아있던 둘째 조카도 나선다. “서울에서는 문어를 제사상에 올리면 이상하게 생각하는거 있죠?” “어떤 집은 제수상 차린 방에는 소등을 하고 제상위에 켜진 희미한 촛불에 의지하고 제사를 지내는 가정도 있다네요.”

 

지방마다 제사상차림이 조금씩 다를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양식은 있다. 무엇보다 고인을 추모하는 마음이 우선이지 않을까는 생각이다.


차례와 같은 제례(祭禮)의 기원은 종교의례에서 찾을 수 있다. 원시시대에 인간은 자연의 변화와 현상을 주재하는 신(神)이 있다고 믿었다. 그 자연신에게 인간의 안녕을 기원하였는데 이 의식(儀式)이 바로 제례의 기원이다.따라서 원시시대의 제례는 종교의식으로서 대상은 신이고 주제자는 제사장이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지내는 제례의 대상은 조상(祖上)이며 주제자는 자손이고, 내용 면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효(孝)의 정신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