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남편의 건강앞에서 고개를 떨군 그녀

정순이 2004. 7. 9. 12:54

눈자위가 붉어져보이는게 이상해 유심히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니나 다를까 성난 서러움의 급류에 휩쓸린 듯 투박한 손이 눈물을 훔쳐냈다. 그녀의 누선원을 자극한 진앙지를 찾기위해 두손을 뒷짐지고 느릿한 걸음으로 B녀에게 다가갔다. 5척단신의 B녀...


너나 없이 남편을 잘 만났더라면 B녀정도의 나이가되면 느긋함으로 여유를 즐길테다. B녀는 그렇지 못앴다. 아니 우리들의 세대들이라면 대개 자식을 위해 또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희생쯤은 감수하며 살아간다는데 공감을 할터이다. 굳이 맏이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시부모님을 모셔야 할 처지라면 속으로는 마음이 상할지 모르지만 말없이 남편의 생각을 따를 것이다. B녀도 그랬다. 강가에서 급류에 휩쓸려가는 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들었다가 비명횡사를 한 시숙을 대신해 B녀가 실질적인 맏이역할을 맡았다. 시어머님을 극진하게 모셨다.

 

항상 시어머님을 친정어머니같이 정성을 다하는 B녀의 시어머님은 이태 전에 돌아가셨다.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어도 말많고 깔끔한 손위시누이들과 아직까지 잘 지내는 걸 보면 B녀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 여자인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강인함이 트레이드 마크 였던 B녀....이웃하고 있는 사람이 B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이런일 있다고 속상해하지말고 먹고 싶은거 있으면 먹고 그래요." 그들의 이야기 허리를 자르기 멋하던 나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잠시 손님이 와 이야기가 끊어지는가 싶드니 손님이 가고 나서야 다시 자리에 앉은 B녀는 또 다시 서러움에 못견뎌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B녀의 남편이 몸상태가 않좋다는 말을 들었던 건 몇 개월 전이었다. 감기증세가 떨어지지 않아 병원을 찾게 되었고, 의사의 권유로 종합검진을 받아보면서 알게 되었다는 <전립선암...> 

 

B녀는 남편의 건강을 되찾기 위해 빠뜨리지 않고 병원을 다닐 것을 남편에게 주문했었고, B녀는 민간요법으로 약초를 달여먹이며 치료를 병행하고 있었다. 그런 언제 B녀의 얼굴이 너무 밝아보여 "요즘은 남편건강이 좀 어떠세요?" "많이 좋아졌어요. 일전에 병원에 재검진을 받았는데 종양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라며 어린아이같은 해맑은 웃음을 짓곤했었다...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B녀의 낭보에 같이 기쁨을 나누곤 했었는데.... B녀는 아직  남편의 병명이 <암>이라는 말을 않고 있었다. 그런 배면에는 자신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기 위한 포석을 깔아놓을 듯 했다. 이번 역시 그랬다. 헛웃음을 지을망정 자신의 서러운 감정은 잘 표출하지 않는다. 해서 자신이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B녀 남편의 악화된 건강은 알수가 없다. B녀의 표정이 밝아보이지 않은 어느날 B녀 옆에서 같은 업종을 하고 있는 H녀가 걱정이 되어 묻게되었고, 비로소 B녀남편의 건강이 걷잡을수 없을 정도에 와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항상 삶과 죽음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맞물려 우리주변을 얼쩡거린다. 무심코 길을 걸어가다가, 말다툼하다가... 예측하지 못한 곳곳에서 저승의 사자는 손길을 뻗치며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누가 그랬던가.죽음을 직시할 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고 했던가...


오늘 아침 B녀는 남편의 재검진결과를 보기 위해 장사하러 나오지 않았고, H녀 주변에는 몇몇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에요?" "결과 나와바야 알겠지요." "그럼 검진 받은지는 며칠되었나보죠?" "그럼요." 그런데 나는 여태 모르고 있었으니  미안한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든다. H녀의 말이 이어진다. "00엄마가 며칠동안 풀이 죽어 말이 없기에 이상하다싶어서 물어봤죠. 평소때는 얼마나 말을 잘해요, 그런데도 며칠동안 말을 않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보이기에 물어보았어요. 처음에는 말을 않더라구요. 예감이 이상해서 남편건강에 대해서 물어보니 그때야 말을 하는거 있죠." "오늘 결과보러 간건 며칠 전에 검진한걸 결과를 보러 가는이유도 있지만, 어느정도 전이가 되었는지 그걸 알려고 병원에 같이 간거에요."


"네....."어떤 때는 가족의 굴레에서 일탈하고 싶은 마음일때도 있을테고, 또 어떤때는 아내의 자리를 포기하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B녀는 가족의 흠이나 남편의 험담은 감추려고 했다.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지않은 것이 많겠지만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남편의 흉허물을 보면 결국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거와 마찬가지' 라고 했던가.. 그런 의식의 정체성이 있었기에 B녀에게 강임함이 상징성을 띠고 있었을 것이다. B녀의 파르르 떨리는 메마른 입술에 눈물이 적셔주고 있다.

 

남편의 건강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B녀의 삶 앞에서 목이 메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