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이야기......(1)
여과되지 않은 이른 아침의 따사로운 햇살이 버티컬 틈 사이로 층을 만든다. 흡사 욕실의 발판을 연상케한다.아무도 없는 조용한 아파트 실내의 빈공기를 가르고 전화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아직 마르지 않은 물기를 타월로 대충 닦으며 수화기를 들었다. “동생이가?” 하는 소리에 울컥하며 격한 감정이 목젖을 흔들었고, 타는 목마름으로 다음말을 기다렸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던 목소리였든가. 그 기다림의 세월은 10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목소리였고, 생사가 궁금했지만,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버린 내가 S의 안부를 궁금해한다는건 내 욕심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공연히 안부를 핑계대며 통화를 하다보면 나로 인해 다시 결혼을 하지 않지나 않을까는 걱정이 들기도했다.
정말 죽었는 줄 알았다. 거의 십년동안 전화 한 통화 없었던 사람이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왔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정말 죽은 줄 알았다. S에게서 마지막으로 전화를 받았던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나 지금 둘째 형네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어...” S와 나눈 마지막 통화였다. 전화 목소리는 술이 잔뜩 취한 듯했다. ‘그렇게 술이 취해 있는 데 운전을 해도 되겠느냐’ 고 걱정스레 말을 했지만, 폴드를 닫아버리는 소리가 들렸고, 더 이상 수화기 너머에서는 S의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술이 취한 상태라 운전 중 통화를 하는 것도 방해 되겠다 싶어 만지작거리던 휴대전화폴드를 닫아버렸다. 그뒤로 S의 소식은 아예 들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전화를 해보았지만, 나름데로 결심을 한 듯 전화번호도 바꿔버렸다.
S.....유난히 개성과 자존심이 강했던 S의 형제들은 비록 형제이긴 하지만, 서로에게 불만이 많았다. 물론 형제끼리 불만이 없는 가정이 어디있겠나만은 부모로부터 같은 핏줄을 이어받고 태어난 형제간의 성격이라 다들 이해하고 수용하게된다. 예외도 있긴하지만 말이다. 부모의 많은 유산으로 인해 형제들끼리의 다툼으로도 모자라 형을 경찰에 고발하고 형지 질세라 동생의 비리를 고발하는 경우...그러나 그런 예는 극히 드물다. S의 집은 부모의 유산 때문에 형제들끼리 대립각을 세웠던 건 전혀 아니였다. 부모의 유산이 없는것은 젼혀 아니였다. S의 부모는 비록 많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진 못했지만 S의 형제들에게 골고루 집 한채는 물려줬다. S의 형제들은 몇번이나 사업을 해보겠다면서 사업자금을 부모로부터 가져갔으나 번번히 실패를 했다. 그래도 결혼해서까지 부모로부터 집한채를 유산으로 받았다는 건 S의 집도 못살았던건 아니였다는걸 알수 있다. 부모의 희생정신은 끝이 없나보다. 자식들에게 사업자금으로 다 뺏긴것 같았는데도 S의 부모는 아들들이 결혼을 했을때 집을 한 채씩 구입해주었다. 4자식들에게 다 집을 사주다보니 느즈막에 결혼한 막내아들에게는 집을 사줄 여력이 소진되고 없었다.
전셋집을 전전하던 막내에게 S 바로위의 형은 막내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을 동생의 문패로 바꿔주게된다. 그런 생각이(그러니까 내가 동생한테 집까지 주기도 했으니 동생은 당연히 형의 어떤 말이라도 다 수용을 해야지 않겠나) 인프라 되어있었는지 모를일이다.
하여간 유난했든 S의 형제들은 매사에 간섭하기를 즐겨했다. 어쩌면 나름데로는 애정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서로 가정을 가지고 있고, 나이가 들만큼 들었는데도 형이 아우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함부로 말을 한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아무리 형이라고는 하지만 받아들이기에는 S 자신이나 S의 동생들의 성격도 만만치 않았다. S의 형 생각에는 형이 동생들보다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다는 낡은 자존심이 똬리를 틀고 있는듯도했다. 해서 동생들이 형을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큰 작용을 했는지 모른다.
하여간 형이 어떠한 말을 해도 동생은 당연히 받아들여야하지 않나는 생각을 갖고 있는 S의 형인거 같았다. 동생은 동생들데로 형의 처지(공부를 적게 했다)를 이해하지 못했고, 다만 자신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형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그도 그럴것이 여러사람이 있는데서나 자식들이 있는데서도 동생의 잘못을 지적한다든가, 어드바이스를 한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록 형이라고는 하지만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극상이긴 하지만 형이라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몇 번 반기를 들어보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못할 노릇이라는 걸 느꼈다. 해서 집안행사가 있어 얼굴 마주치는 일이 있어도 인사 외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름데로의 전략을 세우고 실전에 임했지만, 술이라도 한잔 하는 날에는 여지없었다. 자꾸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형을 만나는게 아주 거북스러워졌다. 물론 성격좋은 사람들처럼 허허거리면서 분위기를 이끌수도 있지만, S의 성격으로는 무리한 요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