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tory

유년 시절의 아픈 기억들

정순이 2006. 8. 26. 13:09

새집으로 이사를 가고 난 후 세 남매가 마주앉아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다. 부엌에 물을 마시러 가려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제법 진지하게들려 잠시 귀를 기울이든 그녀는 까무라칠뻔 했다. 맏이인 큰 딸이 서두를 꺼낸듯했다. “나는 이사오기 전에 살던 집에서 기억나는 건 엄마한테 맞았던 기억밖에 나지않어. 엄마는 집에 친구들을 데리고 오지 말라고 하셨어. 그런데 그 아이들은 엄마나 아버지가 없는 우리집이 편해서인지 막무가내로 들어오지 뭐야. 나보다 선배라 말도 못하고....그걸 엄마는 이해를 하지 못하시고 매를 들곤 하셨지. 난 너무 억울했지만 엄마한테 말을 못했어.  ” 초등학교 다닐 무렵의 일이였으니 몇 십년이 지난 셈이다.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아픈 기억들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상처난 부위에 날카로운 메스라도 닿인 듯 아려왔다. 엄마에게서 매를 맞았다는 심리적 패닉에 바탕되어있어서인지 이렇게 자랐어도 말을 않아 항상 큰딸을 대할 때면 조심스러워진다며 자신으로 인해 성격이 변해버린거 같아 항상 죄책감이 든다는 그녀.... 남편과 큰딸아이와도 대화가 전혀 없다며 걱정하는 그녀....


옆에서 듣고 있던 둘째 아들도 발언권을 행사하며 “우리는 왜 이사를 올때마다 더 작은 집으로 오는 지 이해가 가지 않어....” 그나마 셋째로 태어난 딸아이는 항상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서인지 곧잘 아버지인 남편한테 애교를 떨곤 해 부자간의 사이가 좋다며 웃음짓는 겨녀... 그랬다, 신혼 시절에는 꽤 넓은 정원에 정원수로 목련을 비롯해 자귀나무며 우물가로 육탈한 앵두나무도 있었다. 그런 집에서 살다가 남편의 사업실패로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게되었고. 생활이 여의치 않으면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갈수밖에 없었다. 이사를 갈때마다 가재도구는 작은 것으로 교체가 되었고, 아이들의 마음에 입었던 깊은 트라우마(trauma)는 치유할 수 없을만큼 커져만갔다.


남편의 사업실패는 자신을 밖으로 내몰았고. 자신의 노동력으로 생활비를 메꾸느라 날마다 치열한 생활전선에서 헉헉돼야만했다. 남편은 돈을 벌러 외국으로 가버리고 난 후였고, 자신은 직장을 다녀야했기 때문에 집안에 남겨진 아이들은 스스로 먹을걸 해겷야만 했다. 가뭄에 콩나듯 가끔 와주시는 시어머님은 사업실패로 쑥대밭이 된 아들집에 다니러 오긴 했으나  생활전선에 뛰어든 며느리를 안쓰러워하기보다는 시어머니 대접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곤했다. 며느리가 퇴근할려면 아직 많이 기다려야하는데,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손자들의 끼니는 걱정하지 않은체 딸네집으로 가버리는 시어머니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시어머니라 말한마디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은 쌓여만 갔고 ,그 불만을 고스란히 자식들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곤 했다. 생각이 다 같을수야 없겠지만, 만약 내가 그같은 경우라면 아프면 아프다고 시어머님께 사실데로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 밥이라도 챙겨주라고 이야기 할 것 같은데 그녀는 타고난 유순함으로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그녀의 외향을 보나 내면을 들여다보나 보면 전혀 그럴거 같지 않아 보인다. 자신의 색깔과 명확한 정체성이 엿보인다.


올해 들어 벌써 몇차례나 학생들이 선생님들의 체벌로 인해 입원을 하거나 정신적인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특히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수학 성적이 좋지 않다고 뺨을 맞은 사례는 생각할 수록 안타깝다. 아직 학습 분위기에 즉응되지 못했을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매를 댄다는건 체벌에 대해 많은 시사를 하게 한다. 그러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체벌이 다 잘못되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을 꾸중했다고  교사에게 대드는 학생이나 교사를 우습게 아는 학생들에게는 매를 드는 건 당연하지 않나는 생각이다. 그런 학생은 집에서도 부모에게 대들 아이들이고 부모를 우습게 볼 아이들이다. 일전에 자신에게 용돈을 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를 매스컴을 통해서 본적이 있다. 그런 아들도 어릴 때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줘서 버릇이 없어 그런 결과를 빚지 않았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우리 이웃에 그런 사람이 있다. 두 아이의 아버지고 나이가 50대다. 그러나 가족을 내몰라라하고 자신의 안위만 챙기고 이혼한 지금까지 자수성가한 누나의 힘에 의존한다.

 

자신을 아껴주던 부모님들이 돌아가셨으니 기댈곳도 없다. 가족을 돌보지 않으니 아내도 이혼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지만, 자신의 행동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어렸을 때는 아주 유복한 가정이였다. 한번의 사업실패, 다시 누나의 도움으로 시작한 사업도 또 실패하고 말았다. 빚더미에 앉아있지만 갚아야 한다는 생각은 않는다. 누나의 돈이라 갚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했으니.....그렇게 많던 돈은 썰물 빠지듯이 다 빠져나갔다. 그 사람의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는 정부산하기관 병원에서 아무도 봐주는 이없이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위로 누나가 넷이고 막내로 태어난 아들이라 아주 귀하게 키웠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었고, 원하지 않는것도 원할 것이라는 생각에 미리 사주곤했던 아이가 막무가내로 자란 경우가 더 많다는 생각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체벌을 하면서 키운다고해서 그런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옛말에 ‘미운아이 떡하나 더 주라‘는 속담에 공감한다. 인경형성에 장애가 온다고 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의 체벌은 인정하고 싶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아이가 있다고 해고 체벌을 하지 않고 설득을 해서 바로잡는다지만, 그런 학생들을 설득한다는 건 더 오만해지는 역효과를 가져올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식당에 갔을 때나 공공시설물을 이용할 때 자신의 자식이 버릇없이 굴어도 외면하고, 막무가내인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저렇게 내버려 둬도 되나?’ 는 생각이 든다.


체벌로 인해 옷을 벗는 교사가 점점 늘어나자 요즘은 그런 학생은 아예 교사들도 외면을 하고 수업을 한다는 말도 들린다. 체벌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며 교사들에게 대들 수 밖에 없는 학생들이 있기에 오류는 늘 상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