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무늬만 며느리

정순이 2006. 8. 20. 10:27

 

“어머니, 이번 주 토요일이 할아버지 제삿 날 이라면서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아들로부터 두 번에 걸쳐서 외할아버지의 제삿날과 시아버지의 제사날짜를 듣고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그도 그럴것이 한 가정의 며느리라면 날 있기까지 낳아준 친정아버지의 제삿날과 시아버지 제삿날정도는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했다는 죄스러움이 뒷덜미를 옥죄어왔다. 자식을 훈육시켜야하는 엄마로써 직무를 유기한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게 며칠 전의  이야기였다. “내일 민호형이 부산에 내려온다네요.” “그래? 방학은 벌써 시작했을텐데 인제 내려오나보네.” “나름데로 바빴겠죠. 이번 토요일이 할아버지 제사라고 그 날짜에 맞춰 내려온다고 하든데요. 그래서 민호형이랑 만나 점심이나 한끼 하고 큰집에 같이 가기로 했어요.”고개를 갸웃거리던 남편이 휴대폰을 들었다. 남편 생각에도 아직 아버지기일은 아직이지 않나는 생각이 바탕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해서 둘째 형님네로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려는  마음도 자리하고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니 형제간들의 왕래가 소원해져 안부도 물어볼겸 수화기를 들었을터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 다음날 그러니까 어제가 시아버지 제삿날이라고 하지 않는가. 내가 기억하고 있기로는 분명히 팔월 한가윗날보다 19일 전  이라고 알고 있다. 추석명절이 될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에 전혀 생각도 않고 있었다. 시댁에서 무슨 행사가 있던 모든 행사를 앞두고는 항상 큰동서는 가게에 들릴 수 밖에 없다. 갑작스런 큰동서의 방문에도 두뇌회전만 조금 하면 쉽게 무슨 날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이 바탕하고 있다. 제수음식을 장만하지 않을 수는 없을테고 제수음식을 장만할려면 필히 가게에 들려야하기 때문이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달력에 표시를 해두었지만, 올해 윤달이 들었다는 걸 숙지하지 못했던 나는 추석명절 19일 전 음력날짜만 보고 표시를 해두는 우를 범한 것이다. 이번달이 평달이고 내가 표시해둔 달이 윤달이였던 것이다.


명절을 앞두고는 제수음식 장만하는데는 동참하지 못하고, 기제사때에는 얼굴만 내민다. 대개는 깔끔한 큰 동서가 제수음식 장만은 다하는 편이라 시댁에 간다고 해도 할 일은 없지만, 5섯 동서가 만나면 아주 재밌다. 큰동서의 이해심많고 화끈한 리드십에 그 아랫동서들은 큰동서의 말을 잘 따르는 편이다. 그러니 다른 가정처럼 동서들과의 의견대립이나 감정대립이 전혀 없다. 가게 셔터문을 내리고 부슬거리는 빗속을 걸으며 5분 거리안에 있는 시댁에 들르니 몇 년 전처럼 북적대진 않는다. 어른들이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알수 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썰렁하다. 서울에 살고 있는 시누이는 교통편이 불편해 참석하지 못했을터이고, 둘째 조카도 러시아에 출장을 갔다며 자리하지 못했다. 큰 조카는 수원에서 창원으로 발령을 받았다며 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했다. 무엇보다 귀차니즘을 신봉하는 큰조카는 엄마가 살고 있는 본가와 가까운데로 발령을 받았으니 다행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시댁에는 친정처럼 제사 지낼 시간을 따지지 않는다. 합리적이고 융통성 있는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제는 토요일이라 시간에 구애를 받진 않겠지만....여하튼 무늬만 며느리, 동서인 나를 이해해주는 시댁식구들이 있기에 난 편한 마음으로 일에 전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