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비오는 날 창가에서서...(4)

정순이 2004. 6. 25. 12:41

그일이 있고부터는 Y의 모습은 우리들곁으로 다가오기를 꺼리는 듯 했고,  희미해져가는가 싶드니 어느날 부터는 연락이 뜸해지는 것 같드니  일주일에 한번씩 걸려오는 전화로 인해 Y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었는데, 그것마저 두절되고 말았으니....우리형제들은 가끔 Y의 소식을 들을수 있는 통로는 전부인으로부터였다. Y의 전부인은 아직 Y에게 애정이 남아있는 듯 Y의 일거수 일투족의 정보를 꿰뚫고 있는 듯 했다. S(전부인)의 말을 빌리면 " 그여자는 남편을 잡아두기 위해  아이를 낳았고, 부산 근교에서 살림을 차렸다" 는 소식을 우리들에게 전해주곤 했다.


그런 어느날 Y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술이 취한 듯 했다. 맨정신으로 동생들한테 전화하기에는 용기가 없지 않았겠나며 I는 나름대로 해답을 찾곤 했다. 한번, 두 번, 세 번....한달에 한번 꼴로 잊어버릴 만 하면 전화가 걸려오는 Y의 취한 목소리...집에 퇴근했을 때 걸려오곤 하든 전화가 10시를 넘길때도 있었고, 11시를 훌쩍 지나서도 전화를 해온다는 사실과 전화 할 때마다 Y의 취해진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Y의 생활에 무슨 문제가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미루어 가늠해보곤 했다. 그런 어느날 Y의 형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Y가 형네집으로 온다는 것이었다. I는 고민했고, I의 언니와 상의를 했다.

 

"아무래도 Y가 살기가 힘드는가 보는데 우리들이 얼마간의 돈을 보태면 어떻겠나" 구...I의 언니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I의 대견스런 마음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우리들의 생각이 Y의 살림에 얼마나 보탬이 되겠나만은 그렇게 해서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I의 언니는 결혼하기 전에도 그런 뜻깊은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Y가 힘들어할 때 I의 언니는 적금통장을 들고 Y의 맏형을 찾아갔던 적이 있었다. 자신의 적금통장을 내밀면서 "이걸 보증으로 생각하시고 제게 돈을 빌려주세요. Y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니 동생인 제가 그냥 보고 넘길수가 없어요,

 

Y를 도와주고 싶어요." 만기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적금을 해약하면 손해가 많다는 사실과 당장 Y를 도와주고는 싶지만 자신이 Y를 도울 능력은 없음을 알고  차선으로 택한 것이 Y의 맏형을 찾아간 모양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지만 뜻은 이루지 못했다. Y 형 생각에는 스스로 일어서라는 뜻이  담겨있었는지 모르지만....이런걸 보면 여자는 情적이고 남자는 動적이라는 말에 공감을 한다. 거진 몇 달만에 만난 Y의 모습은 많이 수척해진 듯했다. Y가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음에도 안쓰러운 마음에 자꾸만 눈자위가 스멀거려왔다. I의 언니가 가방에서 제법 두툼해보이는 봉투를 꺼집어내어 Y의 손에 쥐어주었다. 눈치를 챈 Y는 받을수 없다며 단호한 듯 뿌리치는 듯 하던 Y의 손은 동생의 계속되는 요구에 못 이기는 듯 받아넣었다. "요긴하게 잘 쓰겠다" 는 말과 함께....


I도 봉투를 내밀었다. 지난날... I가 궁핍한 결혼생활이 이어지자 가끔 I의 집에 들린 Y는 월간지속에 얼마의 돈을 넣어주고 가곤 했었던게 상기되어  I가 느끼는 회한은 남달랐다.  자신의 처지와 Y의 처지가 도치된걸 생각하면 Y자신이나 I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특히 동생을 도와주는 입장에서있기보다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자신의 입장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졌겠냐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알싸해졌다.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던 Y의 둘째형은 여동생들의 행동에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계셨다.  아무리 피가 섞여있는 혈육인 동생이지만 Y의 지난 날들의 행동들과 요즘의 살아가는 방식이 영 못마땅해 하는 Y의 형은 아예 말씀을 않으셨다.

 

그런 분위기를 모르는 Y도 아니였든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자세를 취했다. 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던 Y의 형수가 급하게 뛰어나와 Y의 팔을 잡아당기며 제지했다. "앉으세요, 지금 이시간에 어딜 가신다고 그러세요? 주무시고 내일 아침에 내려가세요." 그러나 막무가내였다. Y의 남루한 행색을 행여나 형의 주변 사람들 눈에 뜨여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가도 하면 형의 입장이 어떨까 싶은 염려도 한몫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