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야간산행

정순이 2006. 8. 2. 12:23

 

“이렇게 더워서 산에 가겠나?” 정말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 10시 30분에 가게 출근하는 나와 교대를 하는 남편은 매일 두어 시간씩 뒷산에 올라갔다 내려온다.  몇 년 전 심한 발의 통증으로 가족들을 놀라게 했던 통풍과 알콜성 간염에는 적당한 운동이 더 없이 좋다고 했으니 예지(豫知)라도 있었든 듯 등산에 열심이다. “이렇게 더운데 산에 갔다올게 아니고, 차라리 야간에 산에 갔다올까?” 대답을 바라지 않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남편에게 “야간 산행을요?” 구미가 당기긴 했다.  얼마 전 일간신문에 야간 산행 할만하다는 기사가 실렸었다.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내심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마땅한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올 정초 해돋이를 보러가기 위해 칠흙같은 어둠을 더듬으며 고생을 했을 때 ‘ 아무리 구경할만한 볼거리가 있다고해도 깜깜 할 때는 두 번 다시는 산에 오르지 않겠다’ 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이야 예전(결혼하기 전까지만해도 무서움을 무지 탓었다.)처럼 무서움을 많이 타는건 아니지만, 미리 랜턴을 준비해가지 못한 실수를 자각하기에 이르렀고, 후회스러움이 뒷목을 짓눌렀다. 돌부리에 걸리기도 했고, 나무뿌리에 걸려 엎어질뻔 했던 생각을 하면 지금까지도 그때의 아찔했던 기억이 야간 산행을 망설이게 했다. 그러나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가겠나 싶은 생각에 우뇌와 좌뇌는 알력을 행사하며 혼란을 일으켰지만, 결국은 우뇌의 승리로 야간 산행에 동참하기로 결정하고 가까운 천냥프라자에 들러 랜턴부터 챙겼다. 8시 30분 평소와는 조금 이른 시각에 가게셔터를 내리고 범어사 노선인 148번 버스를 탔다. 한낮의 더운 열기를 머금고 있던 노면이 나 건물들이 뿜어내는 복사열은 버스안에서 식혔던 땀을 다시 흐르게 했다. 열대야를 피해 빈터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과, 평소 마음이 맞는 지인들끼리 돗자리를 펴놓고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 늦은 시각에도 무슨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의아하기 까지했다. 파워워킹으로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  저녁을 먹고 소화를 시켜려고 개를 몰고 산책삼아 나온 사람들...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영사기처럼 지나간다.


많은 음식점들이 네온사인을 밝히고 고객을 기다리는 듯했고, 규모가 큰 식당앞에는 가드레일 사이로 색색깔의 네온사인이 빛을 밝하고 있다. 낮보다 더 운치 있고, 밝아 보였다.  가드레일로 인도와 차도의 경계를 갈라놓은 나무사이로 일정한 운율로 한 마리의 여치소리가 시골의 목가적 풍경을 연출한다. 뒤를 이어 다른 풀벌레 소리들도 제각각 궁상각치우의 화음으로 장단을 맞추는 들려왔다. 낮은 탄성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아!! 이 맛..... 그 풍광도 잠시....길을 재촉하니 칠흙같은 어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범어사 뒤로 올라가는 등산로는 험한 바위들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초승달이 서쪽하늘에 걸려있다. 길을 안내하는 밝기에는 미흡하고 약하다.

 

남편의 헤드랜턴도 건전지가 수명이 다 되었는지 빛이 희미하다. 오늘 급조한 작은 랜턴의 빛에 의지해 어둠을 더듬고 바위 하나하나들을 정복해가며 북문에 도착하자 안개가 자욱하다. 자연의 바람이  땀으로 얼룩이 진 곳을 해결해준다. 능선을 타는 건 쉽다. 오르막일 때는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지만, 내리막일 때는 시원한 자연의 바람이 땀을 말끔하게 씻어준다. 야간산행이라  등산시간이 많이 걸릴꺼라 예상했지만, 9시 10분 범어사 버스 종점에서 출발해 11시 30분 쯤 온천장 금강공원 뒤에 도착한 걸 보면 늦은 걸음은 아니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