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나르키소스

정순이 2004. 6. 21. 12:00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이들 가운데 하나(또는 에코)가 나르키소스 역시 똑같은 사랑의 고통을 겪게 해 달라고 빌자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이를 들어 주었다. 헬리콘산에서 사냥을 하던 나르키소스는 목이 말라 샘으로 다가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샘만 들여다보다가 마침내 탈진하여 죽었다. 그가 죽은 자리에는 시신 대신 한송이 꽃이 피어났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나르키소스(수선화)라고 부르게 되었다. 정신분석에서 자기애(自己愛)를 뜻하는 나르시시즘도 나르키소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가게를 하면서 알게된 J는 자기애가 유난한 편이다. 제아무리 가족이라고해도 자신의 희생을 앞세운 상대방의 충족에는 면죄부를 주지않을 만큼 자기애가 강하지만, 디테일을 포착하는 섬세함도 예리하다. J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아주 친화적이고 이타적인 성격같은데도 자신의 하고싶은 건 묻어두고 넘기지 않을 만큼 자기에 대한 유니크한 욕심이 유별나다. 자신에 대한 자기애가 모티브 되어서인지 자식들에게도 많은걸 요구하기보다는 아주 분방하게 키우는 편이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다 자랐으니 알아서 한다지만, 가령 애들의 휴대폰 요금이 몇십만원이 나왔다고 해도 대신 내줄만큼 이해하는 편이다. 대신, 자신의 살아가는 방식에는 자식들로부터 간섭받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해서 가족이라도 서로 강요하지 않고 살아가는 편이다. 일전에 J의 딸이 토플리스 차림으로 가게를 보고있는걸보고 상당히 놀란적이 있다. 그러나 늘씬한 체구에 매력적으로 보이기는 했다. 나 역시 쥬니어들의 트이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해못하는건 아니지만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너무진한 색상으로 머리염색을 한다든가, 화려한 옷차림으로 다니는 건 눈살이 찌푸리게되고, 이해못하는 에고이스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걸 알고 있다.

 

자신의 덩치만큼이나 크다란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가게에 들린 J는
"목살 좀 줄래?" "고기 사갖구 어디 갈려구?" "아니, 집에가서 구워먹구 잠 좀 잘려구..." "가게는 누가 보구?"
"그냥 문닫았어, 너무 피곤해서 집에가서 다리뻗구 잘려구" "@@@" "가게에서 엎드려 자면 되지 않어?" "가게에서 어떻게 잠을 자? 그리고 새우잠을 자야하니 편하게 잘수 없구...""이구, 니가 가게를 한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날마다 자유분방하게 밖으로 나다니던 사람이 얌전히 가게지키구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건 좋은 현상이지머. 너 같은 경우는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새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객쩍은 웃음을 방사한다.

 

"나는 그렇지 못해, 만약 잠이 온다면 가게에서 엎드려 잠을 자더라도 가게에서 잠잘생각을 하지, 너처럼 가게문을 닫고 집에가서 잘만큼 용기스럽지두 않구..." "가게하는 사람들은 다 너같은 마음가짐으로 해야지, 나는 어짜피 가게를 그만둘 생각을 하니까 이러는거지... " " 왜 그만둘려구?" "응, 요즘은 인건비도 나오지 같지않어,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 딸이 원해서 했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딸과 사귀는 남자측에 부모님들이 결혼을 서두르나봐, 하루 매출만 괜찮게 오른다면야 혼자서라도 하겠지만,영 신통찮으니....."

 

"피부로 느껴지는 경기가 너무 침체되다보니 가게하는 분들이나 사업하는 분들이 다 움츠리고있나봐, 특히 네가 하는 업종은 굳이 사입지 않아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주부들에게는 피부에 와닿지 않을꺼야, 그러니 경기가 안좋으면 안좋을수록 네가 하는 업종은 제일 먼저 민감하게 반응을 하겠지.." 고개를 끄덕인다. "가게안에 디스플레이 되어있는 모든 옷들, 반품은 다 되는거야?" "응, 반품되는게 있고 안되는게 있어" "반품 안되는건 손해가 많겠네..."


"할수 없지머.."  경기침체의 암운의 어두운 그림자가  J의 가게에도 덮여져 오는 모양이다. 남편이 따로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여가활용삼아 시작한 가게지만, 얼마있지 않으면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볼날이 멀지 않은거 같았고, 나 역시 가게하고 있는사람이라 자영업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거 같아 마음이 착잡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