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남편그늘!

정순이 2004. 6. 12. 12:02

'수양산음 강동팔십리(樹陽山陰江東八十里)'라는 잠언이 있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까지 뻗친다 함이니 어떤 사람이 잘 되면 친척이나 친구 또는 친지들이 그의 덕을 입는다는 뜻을 비유한 말이다. 남편의 그늘 또한 그에 비할바 아니라는 생각이다. 가게에 들린 Y는 냉커피 한잔 끓여주겠다는 나의 손을 뿌리치고 황망하게 돌아갔다.

 

 "00이 잠 깨워줘야 해요." '이태백', 이라는 자조스런 말로 취직하기 힘듦을 신조어로 양산해 낼만큼 우리주변에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하지 못한 사람이 부지기수다. 서너달 전 쯤이였던가 조심스럽게 Y는 말을 해왔다. 행여나 가벼운 입놀림으로 해서 자식의 취직이 물거품이 될까봐서인지 조심스러운 듯 나즉히 말을 했었다. "00이가 취직이 될 것 같아요." "그래요? 축하 할 일이네요.

 

요즘같이 취직하기가  힘이들 때에 00 이가 취직이 된다는건 엄마가 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서 복을 받은 걸꺼에요." 자격증이 몇 개나 있어도 취업하기 힘들다는 사실과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도 취업할때가 없어서 '환경미화원'에까지 취업희망서를 내고 경쟁률이 10몇대 1이라는 냉혹한 현실에서 '전문학교'를 졸업한 딸이 병원에 취직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쁘하던 Y의 모습이 떠오른다. 대학에 들어갈 무렵만 했을 때도 자신이 지원한 대학과 병원이 자매결연을 맺어 100%취직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안심하기까지 했으나 해가 바뀔수록 심각해지는 청년실업난을 보면서 자꾸만 초조해졌다는 Y는 딸이 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지인을 통해서라도 딸의 취직을 부탁하고 싶었다는 절박했던 지난날 들이 회상되는 듯 헛헛한 웃음을 짓드니 이내 여유로운 웃음으로 옷을 갈아 입는다.

 

그런 Y는 요즘 더 피곤해한다. 3교대로 로테이션하는 딸의 직장시간에 밎추어 길들여져야하기때문이다. 딸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전화선플러그마저 배놓는다는 Y...."고등학교 다닐 때 지금처럼만 딸한테 신경을 섰더라면 더 좋은 학교로 갈수도 있었을거 같아요. 지금은 딸이 잠을 자고 있으면 TV까지 꺼놓게 되는 나자신을 보고 피식 웃고 맙니다. 남편이 고생해서 벌어다 준 돈은 그 귀함을 몰랐는데 딸이 벌어다 준 돈은 그렇게 값지게 보일수가 없더라구요." "취직한지 얼마되지 않아 고생하는걸 보니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겠죠. "

 

 "그렇긴 할꺼에요. 딸의 책상위 포스트잇에 깨알같이 적어놓은 글을 보면 얼마나 신경을 쓰야하는지 딸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응급실' 에 근무하면 수당을 더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응급실' 에 지원했다는 딸아이...알아두어야 할 약품이름이 너무 많아 퇴근해서도  외워야 하는 많은 약품이름에 쉴 시간도 반납할 정도라며 즐거운 비명을 질러대는 것 같다.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옛 명언을 되새기며 딸의 고생은 젊은 사람만이 할수 있을꺼라는 자위와 취직 한 사람만이 누릴 수 특혜 인듯 행복해 하는 웃음이 물씬 뿜어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