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종교에 대해 이야기한다는건 얼마나 자가당착적인지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어려운 일에 부딪쳤을 때 마음깊숙한 곳에서 하느님을 찾는 내면의 울림이 있다면 그자체만으로도 하느님은 우리들한테 충분한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 크신 사랑을 한갖 인간들에게 놀림을 당한다는 건 종교를 믿지 않는 나 까지 반감을 가지게 만든다. 언제이든가, 고3인 아들이 수능시험을 앞둔 하루 전 늦은 밤 잠시 성당을 찾았다. 굳게 닫혀진 성당문 앞에서 마리아상을 향해 잠시 기도드렸던게 아들을 위해 내가 해줄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며 스스로 면죄부를 받곤했다.
성당에 도착하기 조금 전 까지 컴퓨터에 앉아 히히덕거렸던 내가 늦은 밤, 아들을 위한 기도를 해야겠다며 밤을 택했든 건 내 자신속에 은밀하게 감춰져있던 검은 마음을 위장하기 위해 위장술을 썼는지 모른다. 평소때는 성당문앞에도 가지않았던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내중심적인가.....내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내앞에 장벽이 나타났을 때 어김없이 찾게되는 내 안의 하느님께 나는 종종 죄를 지으며 살고 있다는 죄책감마저 들기도 했었다.
남이 하니까, 부화뇌동 내지는 종속변수의 역할,거수기의 역할에 머물러 있기보다 마음에 와 닿는 일이나 종교에 정열을 쏟는다는건 어쩜 나같이 거부감만 느끼는 사람에게는 맹목적인 모습까지도 부러워보일 때 가있다.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이 청맹과니처럼 보이기까지하는 고귀함....자식의 교육이나 건강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의 모습...이런 사고의 바탕에는 사랑이라는 고귀한 서사가 내재해있다.
그런 내가 시댁에 갔을 때, 셋째 동서는 어느 스님으로부터 법문을 듣고나서부터 절에 다니고 있다는 말을 듣고 저으기 놀란적이 있다. 그도 그럴것이 남편의 형제분들은 아주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고집하고 있다는데는 아무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을만큼 고착화 되어있다. 그런 집안에 봉기를 들었다는 동서의 용기에 새삼 부러운 마음이 들었고, 셋째시숙님이 달리보이기까지 했다.
언제이든가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날 아들인 민규가 친구따라 교회에 간적이 있었다 그 당시 민규의 말을 빌리자면, 교회에서 친구들을 데리고 많이 데리고 오라고 한 모양이었다. 남편은 아들이 또 다시 교회가는 일이 없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선지 교회가는일을 용납하지 않을 듯, 쐐기를 박으며 가장의 목소리를 높인적이 있었다.
"우리집안에는 두 종교를 가지는건 용납할수 없다"며 예의 그 독트린을 고집했다. 그일 이후론 아들은 교회에 가는 일은 없었다. 군대에 입대하면 군인의 종교를 인정한다는 내부규칙에 의해서 가톨릭을 택하게 되었고, 세례명까지 받은 모양이지만 계속 성당에 다니는건 아닌모양이다. 아들이 성당에 다니진 않아도 한집안에 두종교로 양분되는건 안된다는 생각이 바탕되어 있으리라. 이런 사고의 바탕에는 남편이 5살무렵 가톨릭 재단인 <메리놀 병원>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이유가 타 종교를 받아들일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면 남편의 마음을 이해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