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tory

어떡하란 말인가?!

정순이 2006. 5. 27. 11:26

 

낯익은 사람에 가게에 들어서자말자 A4용지 파일이 묶여져 있는 묶음을 앞에 내민다. “주소하고 이름, 전화번호 하나적어주세요.” 부탁을 하는 마당에 미안하다는 기색은 전혀보이지않았고 당연하다는듯이 파일을 내밀었다. 순간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기분이라 외면해버리고 싶었지만 “ 일전에도 아는 사람이 와서 적어달라해서 적어줬는 데 또 적어도 되나요?” “어짜피 형식적이니까 괜찮아요. 내가 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그녀에게서 받아든 종이에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 그녀에게 돌려주니 “기왕 적은 거 남편이름도 적어주세요.” “필체가 같은데도 괜찮아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선거철이라게 피부에 와 닿는다. 유동인구가 많이 다니는 사거리길목에는 여지없이 유세차량과 당 유니폼을 입은 선거요원인 여성들과 남성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90 각도로 고개를 숙인다. “0번 부탁합니다.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그들의 부탁에 목례로 호응하며 사라진다. 선거철이면 늘상 있어 왔던 행동들이라 그들의 고개숙임이 새삼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녀....

그러니까 달포 전이 였을까? 이웃가게에서 맛있는 음식을 했다며 먹으로 오라는 전갈을 받고 건너가 식탁을 마주하고 한담을 나누고 있을 때, 나를 찾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먹든걸 내려놓고 서둘러 가게에 들어서니 낯이 익은 단골 손님과 일면식이 없는 사람과 나란히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낯이 익은 사람이 서두를 꺼냈다. “며칠 있으면 이댁에 딸을 결혼시킨데요. 해서 수욕 좀 맞출려구요.” 고마운 마음에 간단한 커피라도 대접할려니 손사래를 치기에 그냥 돌려보내게 되었다. 외형으로 봐서는 전혀 딸을 출가시킬만큼 나이를 먹지 않았을거 같이 보였다. 하얀 벙거지모자에 타이트한 바지를 입고 있어 많이 바줘야 50대 초반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벌써 출가시킬 딸이 있나보죠?” “그렇게 젊어 보여요? 몇 살이나 되어보여요?” “글쎄요. 대체로 결혼할 아이를 기준으로해서 부모 나이를 가늠하곤 하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아서요.” 그래도 재차 나이를 물었다.

 

“한.....50대 초반” 어렵게 대답을 했다. “그렇게 많이 보여요? 밖에 나가면 다들 40대 후반으로밖에 보지 않는데...” 그말을 듣는 순간 미안한 마음이 가슴 저변에서 꿈틀거린다. 고객이 나이를 물어올 때는 대체로 외관상 보이는 나이보다 몇 살 정도는 깎아서 말해준다. 그게 상대의 기분을 위해서도 나을 거 같다는 내 나름데로의 처세술이다.   그런 며칠 후 “삶아 준 수육이 너무 맛이 있었다”는 사실과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시댁에 갈려면 음식을 장만해가야한다며 장조림용 쇠고기를 주문했고, 딸을 결혼시키면서 마음고생 했던 이야기들을 늘어놓다가 그녀는 돌아갔다.  그녀가 돌아가고 난 이튿날 그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저....” 뜸을 들이는 걸 보니 말하기 거북한 내용인 듯했다. “말씀하세요.” “어제부터 고민하다가 어렵게 전화를 합니다. 마음에 두고 마음고생 하는 거 보다 툭 털어놓고 속시원하게 말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물론 내 잘못이긴 하지만....”  “....”

 

“어제 그 가게에서 고기를 살 때 하얀 봉투에서 돈을 꺼내 고기값을 계산하고 바로 집으로 왔었어요. 다른 데 들린 곳이라곤 전혀 없거든요. 어제는 아이들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다고 가방을 열어볼 시간이 없었는 데 오늘 열어보니 그 봉투가 보이지 않는거에요.” “ 잘 찾아보셨어요? 혹시 다른데 두고 못 찾을 수도 있지않겠어요?” 정말 이럴 때는 곤혹스러워진다. 가끔 가게에 우산을 놔두고 간다든가 시장을 보고 난후 비닐 하나를 빠드리고 가는 일이 있긴 했으나 돈봉투를 잊어버리고 가는 사람은 18년 동안 가게를 하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않았다. “ 아줌마를 마음에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니 기분 나쁘게는 생각지 마세요.” 라고 전화를 끊긴 했지만, 그 순간 상했던 마음의 파장은 아주 오래갔다. 행여 나중에라도 찾아지겠거니 하는 생각에 묻어두려했다. 그런데 이튿날 그녀로부터 또 전화가 걸려왔다. “혹시 앉는 자리 밑으로 떨어져 있을지 모르니 좀 확인해봐달라” 고도 했다.

 

요즘은 경기가 좋지 않아 손님이 가고 난 후래도 한참동안 사람이 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 날도 그랬다. “혹시 아주머니가 가고 난 후 다른 사람이 와서 가져갔다면 모를까 하얀 편지봉투가 바닥에 떨어졌다면 금세 눈에 뜨이지 않겠어요? 그리고 가게를 마칠 때는 의자를 가게안으로 다 들여놓게 되는 데 남편으로부터도 그런 이야기도 못 들어보았구요.” 포기하기에는 아까운 액수라는 생각이여선지 그녀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듯 했다. 한참동안 말이 없드니 “우리딸이 결혼하고 난후 나쁜 액운이 있다면 내 돈을 가져간 그사람에게 다 가버리라” 는 악담까지 해댄다. 돈을 잃고난 후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너무 하다는 생각이 무게중심을 달리했다. 나야 떳떳해서 그런 악담을 한다고 해서 마음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은 생각에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자신의 외모를 꾸미는데는 돈을 아끼지 않을거 같은데 비해, 자신이 도움을 주는 대상이라면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그릇된 생각과 상대방의 기분은 아랑곳 하지 않고 함부로 뱉어내는 슬러지 같은 배설물에 느낌 심한 모욕감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