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言語의 덫

정순이 2004. 5. 27. 20:54

인간관계의 유기적인 뫼비우스의 띠를 잇기 위해서는 누구나 야누스적인 성정은 내면 깊은 곳에 어느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느날은 상대방의 크다란 실수도 이해가 되는 날도 있고, 또 어떤날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듯 아주 미미한 실수에도 대립의 각을 세우고 마는 경우가 있다. 다만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잘 다스리느냐에 따라 충돌을 슬기롭게 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나는 가게에 들리는 고객들에게는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일관하고자 노력한다. 비단 나뿐만이 사업하는 모든 분들이 그런 생각으로 사업에 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어제 5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남자분이 <육회용 쇠고기>를 찾았다. 엊그제 들여놓은 쇠고기 정육이었지만 벌써 숙성이 되어있었고, 살짝 냉동 된 상태라는 말과 함께 손님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듯  기다렸다. 진열장안에 진열되어있는 쇠고기 정육의 신선도를 유심히 살피시드니 " 00어치만 주세요." 육회용 쇠고기는 지방이 많이 없는걸 선호한다. 아무래도 생고기를 날것으로 먹게되니 지방이 있는 걸 섭취하지 않을려는건 당연하다. 허나 아무리 지방이 없는 부위라 하더라도 정육표면에는 약간의 지방이 있기마련다. 그것까지 제거해주진 않는다. 그 이유로는 얇은 지방층을 제거하려면 살코기가 같이 딸려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회용 쇠고기>를 구입하려는 분들께는 미리 말을 하게 된다.

 

그렇게 분리된 지방이 붙어있는 쇠고기는 국거리 용이나 찌개를 끓일 때 사용하라며 따로 비닐봉투에 담아준다. 정육점을 하는 모든 가게에서 다들 그렇게 하고 있다.  산지 소가격이 비싸다는 동인도 한몫하고 있지만 <육회용 쇠고기>를 구입하고  난후 남게되는 짜투리고기는 다른 소비자들에게 판매할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주인과 고객과의 암묵적인 묵인하에 이루어지고있다. 또한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육회용 쇠고기>를 썰고 난후 남은 짜투리고기를 다른 비닐에 담아 "아저씨, 이건 국거리할 때나 찌개할 때 넣어드세요." 내가 하는행동을 유심히 보고 흡족하지 않았는지 남자분의 인상이 무채색을 띠는 것 같드니 이내 인상이 일그러지는 듯했다. 당연한 나의 행동이라 그 남자분의 표정을 이해할수 없었던 나는 뒤에 서 있는 다른고객의 요구에 부지런히 손놀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분은 그때까지도 가시지 않고 서 있는게 아닌가. 혹시 더 필요한 게 더 있나 싶은 생각도 들기까지 하기도 했다. 그랬는데 이게 왠일인가. "내가 원한건 <육회용 쇠고기>였지 국거리를 달라는건 아니예요. 그러니 이건 다른 사람들에게 팔고 <육회용 쇠고기>를 주세요."


"아저씨, 그런 경우는 없어요. 이렇게 짜투리로 남은 고기를 누가 사가겠어요? 아저씨 같으면 가져가시겠어요? 그렇게는 못하시겠죠? 모든 사람들이 다 똑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도 나는 <육회용 고기>를 달라고 했지 국거리를 달라곤 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목청을 높였다. 순간 속이 상했지만 방금 썰다가 남은  양이 많아 진열장안에 넣어둔 <육회용 쇠고기>를 국거리 용 고기와 바꾸면서 감정의 파고에서 헤어나지 못한 자신을 발견했다. 종알종알, 궁지렁 궁지렁......

 

" 도저히 못 가져가겠어요. 내가 준돈 다시 내놔요." 고객의 언성이 높아지는것 같드니 이내  비닐봉투에 담겨있던 물건을 도마위로 냅다 던지는게 아닌가.  이런 경우 고객과 싸움을 원하지 않으면 물론 돈을 돌려 드려도 되겠지만 이미 상해진 자존심은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 나의 목소리의 옥타브도 올렸다."제가 언제 육회용 쇠고기를 드리지 않았어요? 표피층에 지방이 붙어있는 얇은 고기는 국거리 해 드시라고 했죠. 그것 제거하고 알코기만 드리면 남은고기는 처분할 방법이 없어요. 어느고객이 찌꺼기 같은 고기를 가져가시겠어요?" <육회용 쇠고기>는 슬라이스로 썰기 때문에 국거리용도와 같이 섞어 판매하기가 어렵다. 그런걸 모를만큼 연세드신분도 아닌데도 막무가내였고 돈으로 환불해달라는게 아닌가. 너무 어이가 없어하고 있는내게 " 돈으로 돌려주지 않으면 이대로 갈수 없어요. 안 돌려주고는 못 뱃길꺼요." 자뭇 협박조로 나온다.


그대로 승복하기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반골기질이 다분한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재래시장이라 싸움이 끊이진 않는다. 가게하는 분들이 싸움을 하면 이익보다는 가게이미지 차원에서 손해보는 경우가 많아도 될 수 있으면 참고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생각이 바탕이 되어서 15년동안 가게를 하고 있지만 고객들과의 싸움은 없었다. 가게 이미지가 나빠지는데 상인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들의 요구하는데로 들어주겠지 라며 악용하는 고객들도 있다. 주변에서 남들이 싸움을 할때도 '조금만 더 참지 왜 그럴까, 저러면 자기만 손해볼테인데...' 조금은 안타꾸운 생각을  모티브로 가게를 하고 있다.


"알아서 하세요."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분은 도마위에 얹혀져 있던 비닐봉투를 들고 표표히 사라졌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던 것이었을까? 적지 않은 분들이 가게를 하고 있는 상인들에게 고착된 나쁜 생각을 하고 있다. '소비자는 왕' 이라는 생각 내지는 돈을 보태주니까 손해를 보더라도 참아라' 는 안하무인인 경우가 종종 독버섯처럼 도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