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추억의 부표....^^

정순이 2004. 5. 4. 12:43

 

한시간반 동안 노래를 불렀지만 식지 않는 열기에 다시 30분을 추가했다. 몇분의 시간을 남겨두고 우리일행은 일어섰다. 잘 못하다간 마지막 열차시간을 놓칠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집에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던건 10시가 막 지나서였다. 우리부부를 서울역까지 배웅해주겠다며 따라나서기까지 한다.  서울역에 도착한 우리일행은 매표 창구안의 아가씨에게 부산가는 마지막 열차가 언제 있는지 물어보았다. 이미 새마을호는 끊겼다는 대답이 돌아왔고, 무궁화열차편도 좌석은 이미 예약이 끝이난 상태고, 입석만 남아있다는 것이 아닌가.

 

무궁화열차를 타고 부산까지 갈려면 5시간은 족히 걸린다. 아니 더 걸리는지도 모르겠다. 5시간동안 서서 가야한다는 말에 상심한 우리부부는 고속버스를 탈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또 가야하는 불편함이 있어 다음 날 새벽에 첫 출발하는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표만 예매를 하려는 순간 뒤에 서있던 일행중 여자분이 카드결재를 하고 마는게 아닌가..부담스러운 가격인데도 선뜻 지불하는 그녀를 다시 보게되었고, 나와 비견해볼 때 부끄러움이 자꾸만 비집고 올라왔다. 단돈 몇 천원도 남을 위해 투자한다는 건 몇번을 망설이는 나자신의 모습이 중첩되어왔기 때문이다. 다음날 새벽열차를 타야하는 우리일행은 시간이 여유로워진 우리 일행은 다시 술집으로 향했고 밤이 이슥해서야 각자 집으로 돌아가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집으로 가면서도 우리부부의 잠자리가 걱정되었는지 '여관' 보다는‘찜질방’ 에 가서 목욕도 하고 잠자리를 해결하라며 검지손가락으로 '찜질방' 이 있는 위치를 가르켜주도 난후  빗길속을 뚫고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택시를 손을 들어 세우고는 피날리에를 장식하며 그녀둘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남편의 늦은 귀가로 걱정하고 있는 아내에게 전화라도 걸어보라는 나의 종용에 괜찮다는 말로 나를 위로하는 그남자분은 찜질방 건물 앞에서 헤어지기가 못내 아쉬운 듯 “그러지 말고 숙박업소에 가서 셋이서 맥주한잔 더해요.” 너무 과분한 접대를 받았던 우리부부는 손사래를 치면서‘짐질방’의 현관문을 밀치고 들어갔다. 카운트를 지키고 있던 남자분은 반복되는 일상에 말을 아끼듯 “두분이시죠? 한사람앞에 만원이니 이만원을 내세요.” 서울의 지리를 모르는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느끼고 서둘러 계산을 했다. "남탕은 이쪽이고 여탕은 저쪽이에요."

 

검지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쥔장의 말에 등 떠밀리듯이 실내로 들어갔다. 목욕을 하기 위해 여탕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옷을 갈아입고 쥔장이 말했던 2층 휴게실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다음날 새벽열차시간을 맞출려면  잠자는 시간을 교대로 한다던가 무슨 대책을 세워놓아야 하지 않겠나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은 나뿐만이 아니라 남편도 같은 생각으로 공통분모와 교집합을 이루고 있을터이다. 하루종일 다닌다고 지친몸을 뉘이면 금새 잠이 들고말테고 만에하나라도 열차시각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그들이 주는 가운으로 갈아입고 2층에 올라갔다. 아무리 둘러봐도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목욕하러 들어갔나보다. 경복궁 구경을 할때도 혼자 앞서가는 바람에 여자 셋이서 한참동안 남편을 찾았다.

 

나를 두고 멀리가진 않았을꺼라는 생각에 무리들속에서 남편의 모습을 찾기위해 동공의 파이를  최대한 크게 한후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 남편의 행방에 휴대폰으로 남편의 위치를 파악하고 난후에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을 더듬으며 서운한 마음이 자리하는게 아닌가....다시 1층으로 내려온 나는 욕조속으로 들어가 피곤한 몸을 맡겼다. 하루종일 쉬지않고 다녔던 몸이 물먹은 솜마냥 천근만근의 무게로 짓눌렀고, 내려누르는 눈꺼풀은 내 의지로는 불가항력인 듯 말을 듣지 않는다. 남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욕조 옆 바닥에 타올을 깔았다. 피곤한 몸을 잠시 뉘이기 위해서였다. 지난 밤 분위기가 좋아  내 주량보다 많은 양의 술을 마신게 화근인 듯했다. 

 

관자놀이가 자꾸만 지끈거리는게 더 이상 견디질 못하고 단잠에 빠졌다. 얼마를 잤을 까? 정신이 퍼뜩 들어 눈을 떠 벽에 걸려있는 벽시계의 시침을 보니 2시30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몸을 추스리며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남편을 만나야한다는 절박감이 무섭게 다가왔다. 오지에 떨구어진것 같은 무서움이 엄습해왔기 때문이다. 아직 개운하지 않은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엘리베이트 층수를 눌렀다. 2층, 다시 3층, 또다시 4층 층층마다 남편이 자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일일이 확인까지 했다. 게임방도 코골이방도 ..남편의 성격으로 봐서는 느긋하게 잠 잘 사람은 아니지만 술기운에 못이겨 잠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했다. 마지막5층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 남편의 부재에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짓누른다. 다시 엘리베이트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오는데 내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귀를 쫑긋하며 카운트 있는곳으로 빠른걸음으로 다가간 나는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긴 의자에 나를 찾던 남편은 미간을 찌푸리며 "얼른 옷입고 나와" 이대로 나가면 딱히 갈곳도 없는데 라는 말은 입밖에 내지도 못하고 서둘러 옷을 입고 남편의 뒤를 따랐다.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역에서 내렸다. 서울역은 불이 켜져있지않고 깜깜했다. 아마 노숙자들이 활보하지 못하게 문을 잠구어둔거 같았다. 계단을 내려온 우리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술 한병과 밥을 시켜놓고 마주한 나는 남편의 잔소리를 두시간동안 들어야했다. "니는 도대체 어떻게 된기고. 나는 목욕탕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1시간동안 1층에서부터 5층까지 니 찾는데 시간을 다 허비했다. 카운트에서는 사람찾는 확성기를 비치하지 않아 확인해줄수 없다카제 한시간을 의자에 앉아있으니 쥔장도 보기 딱했는지 나중에는 말해주더라,내가 오죽 답답했으면 5천원이라는 입장료를 다시 내고 들어가 확인해볼까라는 생각도 다 했겠노?"

 

내 자신을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남편의 속상함이 이해가 되어 가만히 있었다. 속이 얼마나 상했던지 남편은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2시간 동안 남편의 독트린을 듣고 있던 나는 식당 쥔장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서울역은 몇시에 문을 열어요? " "지금 열려있을 꺼예요." "우리가 식당에 올때만해도 아직이던걸요." "인제는 열었을꺼에요. 4시되면 열거든요." 쥔장의 눈치를 보며 남편을 일으켜 세웠다. 정말 서울역은 불을 환하게 켜져있었고, 첫 열차가 올 시간은 아직 1시간이 남아있는걸 확인하고는 의자에 앉아 잠깐동안이라도 눈을 부치기라도 하면 좀은 개운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피곤이 몰려오면서 눈꺼풀이 스르르 감긴다. 술에 찌들린 남편의 몸은 축 늘어져있었고 시각이 되어 깨지 않으면 어떡하나 불안감이 밀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5시를 가리키는 시보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을 흔들었다. 꼼짝도 않는다. 초조해진 나는 남편의 팔 안쪽으로 내 팔을 꼭끼우고 앞으로 끌어당겼다.  힘에 부친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려한다. 이시간의 열차를 놓치면 부산에 갈수 없다는 절박함과 다급함이 자꾸만 초조하게 만들었다. 내 모습이 보기 딱했던지 사무실안에 있던 젊은 직원이 나와 남편을 부축하며 게이트를 빠져나가는데 성공했다. 상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