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여성스러움의 정체성

정순이 2004. 4. 2. 11:34

봄꽃들의 항연이 온 세상을 농담하고 있는 듯하다. 노란꽃잎을 머금고 있는 수선화, 그옆으로 빨간꽃잎과 노란 꽃잎으로 단장하고 있는 아네모네, 그앞으로는 할미꽃이 보송보송한 하얀솜털을 세우고 꽃대궁을 떨군 채 피빛같은 새빨간 입술로 미장을 한 모습도 눈에 뜨인다. 할미꽃이라는 이름이 생기기전에는 족두리꽃이라고 불렸다는 할미꽃...

 

꾸미지 않은 작은 화분에 담겨진 할미꽃, 그옆으로 연분홍빛의 철쭉과 하얀 빛깔로 자신의 깨끗함을 뽐내기라도 하느냥 서둘러 봄의 향연에 합류한 철쭉이 보인다. 하얀꽃잎으로 핀 철쭉과 연분홍빛을 띠고 있는 철쭉은 온상으로 인해 일찍 핀듯하다. 진달래꽃이 지고나면 피는 철쭉인데 말이다. "요즘은 할미꽃도 판매를 하나보죠?" "그럼요. 할미꽃이 얼마나 귀해졌는지 몰르죠? 시골에 가 채취를 할려고 해도 없다지 뭐에요. 아마 약초로 쓰이는거 같아요." "맞아요. 친정엄마가 투병중이실 때 하루종일 보료위에 누워계시니 등창이 생겼지 뭐에요.

 

그때 셋째 올케가 그러더라구요. 등창에는 할미꽃을 곱게 빻아 병소부위에 붙이면 등창부위에 들어있는 농액을 다 빨아내는 효과가 있다구요." "쓰임새가 있으니 쉽게 구하기 어려운가보다." "꽃은 이렇게 이뿐데 왜 할미꽃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어요.꽃도 세송이만 피어있구요." “할미꽃에 대한 전설을 모르나 보죠~?” 들은적은 있지만 기억이 가물거려 귀를 쫑긋하고 다음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옛날 어느 할머니가 딸을 셋을 두고 있었어요. 그런 어느날 할머니는 큰딸집에 가게 되었죠. 초라한 몰골로 자신의 집에 오신 친정엄마가 마땅치 않게 생각한 큰딸은 친정어머니께 소홀히 대접을 한거죠. 서운한 마음을 안고 둘째 딸에게도 가보았지만 둘째딸 역시 큰딸과 다름이 없었었어요.

 

다음은 제일 가난하게 사는 셋째 딸네로 가기로 하고 길을 떠나게 되었데요. 살기가 넉넉지 않아 피해를 줄까는 생각에 갈까말까를 한참동안 망설인끝에 발걸음을 하기로 했는데 가는도중에 그만 추위로 얼어죽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녀의 말을 듣고 잠시 할미꽃 전설에 대한 검색을 해보았지만 세세하게 설명되어진 곳은 없다. 설화로 구전되어 내려오는 전설만 알고 지나가기로 했다. 할미꽃은 꽃의 형태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구부러진 꽃대나 씨앗모양이 마치 머리가 하얗게 세고 등이 굽은 할머니를 연상시킨다.멀리 시집 가 사는 막내딸 집을 가다가 허기와 추위로 얼어죽은 할머니의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중국 이름은 백두옹(百頭翁)이다. 당나라의 소경이란 사람이 할미꽃의 씨앗을 보고 그 흰털이 할아버지의 흰 머리카락과 비슷하다고 하여 백두옹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병규엄마는 보기보다 여자다운 면이 많아요. 항상 지나가다 가게안을 들여다보면 계절따라 옷을 달리입고 있는 화초들의 모습이 바뀌어저 있더라구요." 볼우물이 터질 듯이 압안 가득 음식을 넣은 채 올록볼록거리고 있는 그녀는 나의 호기심어린 궁금증에 먹던걸 잠시 미루고 말문을 연다. "이건 약과구 아무것도 아니예요. 우리집 옥상에 가보면 정말 많은 화초들이 있는걸요."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 언제 화초에 신경을 쓸 겨를이 있어요?" " 밥먹는건 그냥 넘길수 있어도 화초들 가꾸는 것 만은 잊지 않고 꼭 챙기는걸요. 요즘같은 봄이면 자잘한 화초들이 얼마나 앙증맞은지 지나갈때마다 화분하나씩은 사고 말게 되더라구요" 정말 그녀는 그런 보살핌이 여성의 치설같은 섬세함이 있어보인다. 아파트 입주할 때 친정조카로부터 선물받았던 '인삼 벤자민' 이라는 화분도 게으름의 미학을 예찬하는 주인장의 관심부족으로 날마다 노란 잎이 생겼다. 그대로 두면 영락없이 죽을 판이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나는 쥔장을 잘못만난 '인삼벤자민'에게 미안한 마음을 거듭밝히며 그녀에게 주었다. 겨우 그녀집에 보내고서야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때 준 '인삼벤자민'이 우리옥상에서 얼마나 잘자라고 있는지 몰라요. 갖다줄까요?" 라며 자신이 그냥 하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든지 다시 돌려주려한다. "아서요. 주인을 잘못만나 그렇게 고생한것만도 미안한 일인데 또  고생시킬순 없어요. 잘 키우기나 하세요" 그녀는 투박한 손등과는 달리 세심한 촉수와 치설을 가지고 있다.

 

가까이하고 있는 많은 이웃들에게 조건없는 베풂을 자주한다. 우리는 흔히 '존심이 상해서' 라든가 '내가 니 시다바리가?' 라는 생각으로 눈흘기는 일이라하더라도 그녀는 묵묵히 받아들이곤 한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을 터이다. 타고난 배포가 큰 탓으로 고객들이 자신이 판매하고 있는 물건을 사면 덤으로 얹어주는양이 더 많을 정도로 후덕한 인심으로 단골고객을 많이 확보해놓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