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독신의 후유증...

정순이 2004. 3. 31. 12:33

'한국 가톨릭 신학과'

24년전의 시대상황으로 봐서는 대학에 입학한다는 건 쉽지않았다. 특히 여자들인 경우에는 더 그랬다. 그러나 그녀는 엄마의 후원을 입고 보무도 당당히 서울로 입성을 했고, 화려한 유학생활은 막을 열며 시작되었다. 위로 다섯분의 오빠를 낳고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부모의 맹목적인 보호막아래 귀염을 독차지했다.

 

 이웃하고 있는 계시는 많은 어른들도 그녀가 어렸을 적에는 그녀를 무등태워주기를 즐겨하며  이쁘했고, 그녀 역시 보답이라도 하는 듯 재롱떠는 모습에 다들 즐거워했다. 부모님들의 맹목적인 사랑에 유년기때는 오빠들의 시샘어린 눈총을 따갑게 받았지만 엄마의 강력한 파워에 오빠들의 반항(?)은 먹혀들지 않았다. 가끔 그녀의 오빠는 회상한다. " 위로 형들이 수학여행을 못갔다는 전례가 있어 나 역시 수학여행을 갈 생각도 못했지만 동생만큼은 보내주었어." 그녀의 오빠는 미간을 흐리며 또다시 입을 연다. " 아들들의 고집은 꺾을만큼 엄마의 파워가 셌지만 딸만큼은 고집을 꺾지 못하더라구..." 하긴 시누이와 20몇년동안 한집에서 생활해온  큰올케도 그랬었다. "애기씨가 대학교에 합격하고 난 뒤 집에 왔을 때 목에 진주목걸이가 걸려있지 않겠어. 어머님이 어떤분이야? 며느리인 나한테도 한달 용돈으로 쥐꼬리만큼 주는분이시잖아. 그런분이 딸에게는 진주목걸이를 사주는 대담함에 무척 놀랐더랬지.... "

 

그런 그녀는 서울에서 대학생활에는 젊은 혈기로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는 직장인들을 모아놓고 야학을 가르키며 젊음의 의지를 불태웠다. 졸업한 후에는 잠시 기거했던 수녀원...나환자촌도 마다하지 않을만큼 여러곳으로 봉사활동을 다니며 좋은일도 많이 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를 바라보는 다섯분의 오빠들은 궁색해보이는 그녀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다른 형제들도 다들 넉넉한 살림살이는 아니라 그녀에게 큰 도움을 줄 여력이 없기때문이다. 44년동안 담아낸 삶의 결정체속 그 쉼표들 사이로 보이는 엿보이는 어두운 그림자....그녀는 선행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은 화려해보이지 않는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구걸하는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친적이 없고, 꼭 주머니를 털어 걸인에게 주고서야 발걸음을 옮겼다며 딸의 착한 마음을 이야기하곤 했다. 좋은쪽으로 받아들이자면 착하게 사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다워보이지만 다른한편으로 받아들이자면 삶의 고단함의 역경과 걍팍함을 모르고 사는 사람인걸로 받아들일수 있다. 이 세상이 얼마나 각박한지 부딪쳐보지 않은 온실속의 화초같은 여성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가 변신을 했다.

 

40년의 장구한 세월을 살고나서야 스스로 깨달았던 모양이다. 아마 그녀가 깨닫기까지는 그녀의 큰오빠의 투병생활이 그녀를 좀더 강하게 살아갈수 있게 작용한듯하다. 큰오빠의 암선고로 인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한 그녀는 서둘러 취직하기에 이르렀고, 월 일백만원이 넘는봉급을 받는다며 그녀의 엄마는 목에 힘을 주고 말씀하셨다. 태어나고 처음 부딪쳐보는 직장생활...많은 난관으로 직장생활은 몇 개월만에 막을 내리고 만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자신이 불리한 위치에 봉착했을 때는 다양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살아오면서 경험하지 못함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는걸 미처 깨닫지 못한 우매함도 한몫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변신을 한 그녀가 대견한지...그녀의 올케를 입을 빌려보면.... "글세. 애기씨가 공과금을 내지 않는다지 머야." "그래요? 그렇게라도 해야죠.  만약에 우리가 애기씨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면 더 했을걸요."

 

"어디 전에는 그랬어? 자신이 손해보는쪽을 택하며 살았던 사람아냐.."그녀는 돈 개념이 없다. 나이가 44살이면 어느정도의 기반을 닦아두었을 법한데도 그녀의 수중에는 전세자금으로 걸려있는 1200백만원이 전 재산이다. 그런 그것조차도 받아내기 불투명한 상태다. 무허가로 지어진 집에 세를 들었던 그녀는 정부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집을 비우라고 하는모양이다. 은행에 저당까지 잡혀있는 집주인이고보면 그녀에게 전세자금을 돌려줄리 만무고 정부에다 받아내는 수밖에 없는처지다. 몇 년동안 거주했다는 사실만 증명이 된다면 어느정도의 보상은 받아낸다는 말은 들었지만 믿을수도 없는 일이다. 자신이 걸어놓은 전세자금을 받아낼수 없는 상황에서 공과금을 낸다는건 어리석다는 생각을 했을터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삶에 익숙하게 길들여져왔고, 손해보는 쪽을 택하며 부딪치는 것을 피하는 삶을 선택했다. 똑하기로 자타가 공인하는 그녀의 엄마.... 그녀의 엄마는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높은 산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딸의 모습이 안쓰러워 신작로가 있는 쪽으로 이사를 하라며 거금 1000만원을 건냈다. 다른 때 같으면 직접 돈을 가지고 방을 물색하러 다녔을 터인데 어찐된 영문인지 딸에게 돈을 맡기며 직접 전세방을 얻어라 한 모양이다. 그녀에 손에 쥐어진 큰돈...그녀는 생각을 달리하고 있었다. 그 돈으로 전세집을 얻느니 자신의 장래까지 생각하며 외국으로 갈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인도'라는 나라에는 '요가'에 대한 지식과 공부를 한다음 자신도 학원을 차려 '요가' 를 가르킬 요량으로 '인도'로 훌쩍 떠났다.

 

배우는 기간은 6개월이나 되었지만 그녀의 수중에 있는 돈으로 마스트하기엔 부족한 액수였기에 3개월이 지난 어느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었고, 재차 인도로 가기에는 저축해둔 돈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를 후원해줄 여력이 있는 형제도 없었다. 그러니 '요가'에 대한 메리트를 깨닫는 기회는 소멸되고 말았다. 그녀는 안주하는 삶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녀가 서울생활을 하면서 나름데로의 독신의 자유로움이 그녀의 결혼을 막았다. 독신의 좋은점도 있을지 모르지만 주변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은 안타깝게만 느껴져 그녀에게 매파를 던졌지만 역부족이었다. 녀의 학력보다 못한 사람들도 결혼의 골인으로 인해 가정에 안주해 살아가는 람이 얼마나 많은가. 결혼하지 않은것보다 결혼을 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그녀의 오빠들은 그녀를 만나기만 하면 그녀에게 주입시켜려해도 굴절되고 말았고, 하다못해 맞선이라도 보라며 꼬드겨도 그녀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여러해동안 그녀에게 어드바이스를 하던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고집에 무릎을 꾾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을 20몇년동안 기다려준 남자친구에게는 끝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다. 친구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로 남자친구에게 비수같은 말을 가슴에 꽂았을 것이다. 그녀의 가족들은 그나마 그녀를 기다려준 사람이 있다는 위안감에 그녀나이테의 연륜을 덜 걱정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고집스럽게 선택한 자신의 삶은 왜 행복해 보이지 않아보이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