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tory

일복이 많은 사람이라서?

정순이 2006. 1. 13. 12:52
 

“찌개거리용 고기 좀 주세요. 그리고 같은 양으로 한봉지 더 만들어주구요.”  늘상 가져가는 양이 있어서 굳이 양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만큼 오래된 단골이다. “누구 줄려구요?”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만  사시기 때문에 많은 양을 구입하지 않는다는걸 알고 있는 나는 의문부호를 날렸다. “나하고 같이 다니는 사람 꺼에요.” “그 할머니는 바쁘신가보죠?” “바쁜게 머에요? 그저께 그댁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지금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시는걸요.” “어떡해요?” 안타까운 마음에 미간을 찡그렸다. “그래서 그집에 요즘 사는 게 말이 아니에요.”그말이 오고간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어제 가게에 들린 그분은 또 다시 그할머니의 찬거리를 주문하셨고 안타까운 듯 미간만 찡그렸다.

 

"아직 깨어나시지 않은 모양이죠?" "아직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나봐요. 이런 소리하면 죄받을지 모르지만, 어짜피 일어나지 못할거라면 빨리 돌아가주시는게 그 할머리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도 더 좋을 거 같은 데...”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게 말이에요.’ 라며 수긍을 했다.  “ 일복많은 그 할머니 언제쯤이면 일을 하지 않고 사실려나....” “본인이 원하는지도 몰라요. 가끔 놀러가자고 하면 절대 같이 가지 않거든요. 해야 할 일이 많다시며....”


앞집 뒷집이 담 하나를 경계로 해서 사시는 모양이다. 비슷한 연배에 이웃하고 있으니 무엇보다 말벗이 있다는 게 그분들에게는 더없는 해방구일테다. 낮은 담장너머에 사는 친구분 께 시장보러 같이 갈것인지 물어보곤 한다는 두분. 한분은 아주 깔끔한 성정으로 머리 염색도 하시고 입성에도 신경을 쓰는 듯 보였다. 가끔 보일법한 흰머리카락이 한번도 눈에 뜨이지 않는걸 보면 그분의 성격이 엿보였다.  어떤 날은 머플러로 코디를 할때도 있었고, 또 어떤날은 스카프로 목에 둘런걸 보면 자신을 위해 꾸준히 관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런가하면 다른 한분은 전혀 자신의 몸가꾸기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 무료봉사로 일관하시는 분으로 보였다. 염색한 머리가 제 수명을 다해 희끗희끗하게  센 머리카락이 반백을 차지하고 있어도 염색해야겠다는 생각이 없는 듯 하시다. 그분을 보고 있으면 유년시절 이웃집 할머니 생각이 나곤한다. 타고난  조용한 성정에  자신이 해준 음식을 잘 먹어주는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이 고맙기만 한듯 불평한마디 없어실만큼 일하는 걸 즐겨하신다. 김장철이되면 제주도에 있는 친동생 김장, 포항에 사는 사촌동생 김장 몫까지 해서 택배로 보내줄 만큼 착한콤플렉스가 핏속에 흐르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만들어준 김치가 그렇게 맛있을수가 없다는 말에 그만 넘어가고 만것이다. 결혼하고 난 후 손위시누이 솜씨가 좋아 돌아가실 때 자신에게 물려달라고 했다는 착한 심성을 가진 할머니. 그 일복많은 할머니에게 또다른 일이 겹쳤다. 늘 강건하시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뇌일혈로 쓰러진 것이다. 어느 가정없이 집안에 환자가 한사람이라도 생기면 집안이 어수선해지고, 온가족이 환자 한사람으로 인해 매달려야하고 모든게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그 할머니 가정도 예외가 아니다. 낮에는 간병인을 두고 있어 할머니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지만, 24시간을 맡길 수 없어 밤에는 할머니가 간병을 하시는 모양이다.  하루종일 집안일하시다 파김치가 되다시피한 몸으로 할아버지가 입원해 계시는 병원까지 가서 간병을 한다는 게 얼마나의 힘듦이 수반되어야하는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심각성을 모를 것이다. 그 연치에 병원까지 버스를 타고 다닌다는것조차 버거울텐 데 1시간동안 버스에서 시달려야하고 그 피곤함도 잊고 간병을 해야하는 날들의 연속, 다시 여명이 희붐해져오면 집으로 돌아와 집안 살림에 자신의 몸을 혹사시켜야 하는 날들....


언제인가 미국에 사는 어떤 여성이 산소호흡기에 의존하며 몇 년을 살다가 남편이 산소호흡기를 빼기를 원한다는 말에 친정식구들이 발끈했고, 소송을 걸었다며 헤드라인을 장식한 사건이 있었다. 친정식구들과 남편과의 뜨거운 공방이 오고 가는 듯했고, 부시대통령까지도 생명존엄에 관심을 보이면서 결국은 친정쪽의 손을 들어준 사건을 보았다. 그 여자의 친정쪽에서도 나름데로의 이유는 있겠으나,  몇 년동안 뇌사상태에 있던 아내가 그정도의 기간동안 남편의 보호를 받았다면 남편도 할 일을 다 한 셈이 아닌가 생각한다. ‘긴병에 효자없다’ 잠언을 합리화시키며 배우자의 아픔을  외면하고 외도에 눈뜨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아왔던 나로서는 그 남편의 행동이 새삼스럽지만은 않았고 이해되었다. 낫는다는 희망의 가느다란 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 안락사 시킬수 있는 법안이 빠른 시일안에 제정되었으면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