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뿌린데로 거두리...

정순이 2004. 3. 26. 10:47

 

시어머님 당신이 돌아가신걸 확인하자 남편과 큰동서에게 전화부터 돌렸다. 처음 겪는 임종이라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고 안절부절 하는게 아닌가...입원해 계시던 곳에서 장례식을 치를것이라는 큰동서의 말을 들은지 오래전이었지만 영안실 부족으로 익일 아침 9시가 되어야 영안실이 빈다는 관계자분의 말을 듣고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시신을 냉동실에 보관한 다음 유족들이 원한다면 다른 병원영안실로 옮겨도 된다는 관계자분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시어머님 영정사진과 주민등록증을 챙겨 뒤늦게 도착한 큰동서는 큰시숙님의 일을 한번겪은 경험때문인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영안실들이 나란히 나열되어 있는 사무실에서 원탁을 가운데두고 세 동서와 둘째 시숙님의 의견일치를 보았다. 시댁과의 거리가 가까운 병원으로 시신을 옮기기로 했다. 입원해 계시던 병원 영안실의 시설이 아주 잘 되어있지만 시어머님 시신을 냉동실에 넣어두고 이튿날 영안실 하나가 비고나면 그때 다시오라는 말과 다른 병원에도 영안실이 없을꺼라며 자본주의적 상술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관계자분의 말씀을 따를수가 없어 우리가 가고자하는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확인해보기까지 했다. 만약에 시신을 실고 다른병원으로 옯겼다가 영안실이 비어있지 않으면 난감한 일이 아닐수 없기때문이다. 세동서와 둘때시숙님과 어머님 시신이 안치되어있는 냉동실로 서둘러 내려갔다. 둘째 시숙님의 부탁으로 냉동실에 안치해둔 시신을 꺼낼 때 어머님 얼굴을 한번 더 보고싶다는 둘째시숙님의 말씀을 듣고 그렇게 하기로 해주는 관계자분께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꾸벅하는 둘째 시국님이다.  어머님의 시신을 확인하자50의 나이답지 않게...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무게답지 않게 둘째 시숙님의 오열은 얼마동안 이어졌다. "엄마...." 시어머님 당신이 입원해 계실때도 거진 매일이다시피 퇴근후의 발길은 끊어지지 않았고, 어머님께 애정표현을 감추지 않았던 효성이 지극한 둘째 아들이다.

 

가까운 병원 영안실에 시신을 안치했지만 다들 직장생활하는 형제분들이라 일처리를 마무리 지어놓고 올 요량인지 늦은 저녁 땅거미가 어둑어둑 해질 무렵에야 시숙분들이 차례로 도착했다. 그날은 조문객없이 조용한 밤을 맞이했다. 이튿날이되자 시어머님의 사망 소식을 접한 많은 조문객들의 행렬이 이어졌지만 대체로 셋째 시숙님과 막내도련님의 인맥분들뿐이었다. 엘리트코스로 궤적을 밟아온 두분의 인맥의 조문행렬은 끊어질줄 몰랐다. 학연, 지연....부의함을 개봉해보니 우리부부의 지연으로 인해 들어온 부의금보다 무려 10배가 많은 부의금들이 셋째 시숙님과 막내도련님의 회사로고가 찍혀있는 봉투들뿐이었다. 남편이나 나나 남들앞에 나서길 좋아하지 않은 탓에 인맥을 쌓지 못한 탓이리라. 부의금함을 개봉하고 난 뒤 둘째 시숙님과 시어머님영정앞에서 술을 한잔 나눌 기회가 생겼다.

 

 " 제수씨...."

"네.." " 이번에 부의금 들어온거에 대해서 만(남편의 끝자이름)이와 의견을 나누었는데요..." "네." 간단한 대답을 한다음 둘째 시숙님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다음말을 기다렸다. "부의금을 나눌 때는 각자 몫을 주기로 했어요. 셋째앞으로 들어온 부의금은 셋째 몫으로 막내앞으로 들어온 부의금은 막내몫으로 나누기로 했어요. 서운해하진 마세요." "그럼요. 서운하긴요. 뿌린데로 거두는걸요. 당연한걸 가지고 제 걱정을 하세요?"


이번에는 다들 각자의 몫으로 들어온 부의금은 각자 가져가기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큰 시숙님의 죽음으로 가게임대료가 소득의 전부인 큰 집의 형편을 고려해 큰동서와 아들들이  똑같이 병원비를 부담했다. 나중에 부의금이 들어오면 그때 똑같이 공평하게 나누기로 하고...

병원비와 제반적으로 지출한 액수가 3백5십만원....한집에 백만원씩 갹출했으니 남은액수는 1백5십만원 정도였다. 그 나머지 돈과 부의금으로 장례를 치루면 된다. 큰 시숙님이 돌아가셨을때는 병원비를 감안해 부의금을 큰동서에게 다 주었고, 아들들이 따로 낸 부의금은 시어머님당신께 드리자는 큰동서의 말에 다들 그렇게 따랐다. 다른 집들은 부의금으로 인해 형제들끼리 분쟁을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들어온 나는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뿌린데로 거두리'라는 메타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