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술년 해돋이를 보고와서...
“따르르릉....”정적을 깨고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어머니, 아직 출발하지 않으셨죠?” “그래, 지금 어디고?” “지금 집에 가는 중이에요.” 책상위에 올려진 탁상용시계를 보니 시침은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며칠 전 남편으로부터 해돋이를 보러가자는 제안이 있었고, 기왕 가는 길에 민규도 같이 갈것을 계획에 넣었다. 좀 불안했다. 늘 허리통증을 호소했고, 지난번 대둔산에 갔을 때도 힘들어하는 아들이였기에 마음이 쓰였다. 또한 젊은 기분에 을유년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낼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밤샘하는건 인지상정인데 아침 해돋이를 보러가기 쉽겠나는 나의 제안에 “한창 젊은 나이인데 밤샘한다고해서 산에 못갈게 머있어? 나는 지난번 북한산 갔을 때 잠 한숨 못자도 등산갔다왔다. ”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아버지의 강요에 볼멘소리를 하는 아들을 윽박지른다. 기실 속으로는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지 않겠지만, 항상 강한 톤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남편이다.
“ 친구들하고 밤샘하더래도 시간 맞춰서 집에 올께요.” 평소 때 단련되어진 몸이라 몇 시간동안 등산하는 건 두렵지 않았지만, 운동을 하지 않는 아들은 등산하는 걸 아주 힘들어한다. 더군다나 허리까지 아프니 아들을 생각하자면 일찌감치 집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4시로 자명종을 울리게 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자명종 소리에 눈이 뜨인 나는 지난 밤 다 읽지못하고 몇 페이지 남지 않은 책을 다시 펼쳐 읽고 있는 데 아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순간 바빠졌다. 몇 시간동안 걸을려면 좀 먹게 해줘야 겠다는 생각에 음식을 데워 아들에게 먹이고, 남편과 나는 간단한 토마토 쥬스로 요기를 대신하고, 단단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택시에 오르니 인사말부터 달라졌다. “어서오세요, 새해에는 복 많이 받으십시요.” 웃으면서 화답을 했다. “기사님도 새해에는 돈 많이 버십시오.”
얼굴 가득한 미소를 날리며 “감사합니다.” 택시에 내려도 도심이라 여기저기 켜진 네온사인에 시간 개념을 잊은지 오래다. 낮이라 불을 밝히지 않은 잿빛 건물들보다 오히려 밤이 더 휘황찬란해 도회지에서 사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 너무 이른 새벽이라 산길을 택하기보다 드문드문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을 가이드삼아 아스콘이 깔린 도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동문이 보이는 들머리에 들어서자 온통 칠흙같은 어둠이 깔려 視界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가족은 남편이 가져온 랜턴에 몸을 맡긴채 길을 더듬고 더듬어 어둠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지척도 분간할 수 없을만큼 캄캄한 등산로를 따라 걸으며 앞서 걸어가던 남편은 “돌이 있으니까 조심해라” 로 에스코트를 했다. 등산로 중앙에 있는 돌부리에 걸려 엎어질뻔 하기를 여러번... 어젯밤 내린 서리로 노면이 미끄러워 더 조심하느라 발 뒤꿈치에 힘을 가했다.
어느새 희붐한 여명이 우리들의 갈길을 안내한다. 하늘에 떠있는 초롱초롱한 별들을 보니 해를 볼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일었다. 머리 바로 위에 북두칠성이 나를 따라온다. 동문에서 40분 남짓 걸어가니 전혀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어린아이를 등에 업은 남자, 고사리같은 아이손을 잡고 남편 뒤를 따르는 젊은 아내, 갓 결혼한 듯 보이는 신혼부부가 손을 마주잡고 걷고 있다. 북문에 이르니 벌써 도착한 많은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작년 이맘 때 해돋이를 보기위해 해운대를 찾았을 때도 많은 인파가 백사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던 각인되어 있던 기억들이 중첩되어온다. 걷기 힘들어하는 아들은 북문에서 기다려라는 말을 남기고 남편과 나는 병술년 이른 아침에 뜨는 첫해를 보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했다.저만큼 가다가 아들을 보니 북문 망루로 올라가는 게 보인다.
걷는 중간중간 힘들어 하는 아들을 위해 쉬느라 시간을 지체한 탓이라 해뜨는 시각이 임박했음을 상기하며 앞서 걷는 사람들을 제쳐내고 뛰다시피 걷기를 반복했다. 드디어 고단봉에 다다랐고,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해뜨는 시간은 조금 남아있었다.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보온병에 담아간 커피를 마셨다. 집에서 끓여올 때 그 온기가 그대로 몸속에 퍼지자 추위로 움츠렸던 몸이 사르르 녹는 듯 했다.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는 남편을 뒤로하고 난 더 높은 고지를 향해 바위를 올랐다. 며칠전 여성기상캐스터는 흐린 날씨 탓으로 해를 볼수 없다고 했었고, 어제는 태양을 볼수 있는 지역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집을 나설 때 뿌옇게 흐려진 하늘을 보며 해를 볼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오긴 했으나, 해를 본다는 상징적 의미보다는 병술년 첫날을 맞아 등산을 하자는 데 더 무게중심을 두기로 했다.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자 벌겋게 하늘이 달아있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해가 해무리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거기 있는 많은 사람들의 “와”하는 함성과 환호성이 터진다. 그때 어느 남자분이 “내가 먼저 ‘대한민국 만세’라고 할테니 다들 따라하세요.” 라며 호응 해주길 요구했고, 그사람이 선창을 하자, 뒤를 이어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드높이며 따라했다. 엄마 자궁속에서 피를 묻히고 나오는 갓난 아이같이 벌건 해무리에 둘러쌓인 병술년 첫해는 그렇게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말 장관이였다. 2년 전 강원도 해돋이 공원에서 보든 해와는 또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한번 얼굴을 내민 해는 아주 빠른 속도로 둥근해로 변신했다. 찬란하게 더오른 태양을 뒤로하고 북문에 도착하자 저공비행을 하며 우리들의 해맞이를 축하비행을 하고 있는 게 사정거리안에 들어온다.
부족하나마 제 글을 봐주시는 모든 분들 올해도 복많이 받으시길 진심으로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