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변명...

정순이 2004. 2. 21. 12:52

 

사랑하는 아들아!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봄이 올려나. 항상 계절에 앞서  비가 내리드니 지금 내리는 이 보슬비도 봄을 알리듯 소리없이 속살을 드러내는것처럼 보이는구나.
예년같으면 꽃샘추위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2월달이지만 며칠 전 부터  영상으로 올라가 있는 수은주에 두툼하기만 하던 사람들의 외투들이 내년을 기약하며 자취를 감춘 듯한 요즘이다. 작년부터 유난히 비가 잦은탓에 네가 귀대할 때 몇번이나 비가 오곤 했었지. 내리는 비가 네 마음을 대신 전달해주는 눈물이라도 되는 듯 말이야... 

 

서너번쯤 인가 비가 올 때 너를 부산역까지 배웅해주곤 했었던 적이 있었지. 그 이유로는 군인은 우산을 쓰면 안된다는 군대규칙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네가 한사코 만류를 하며 혼자 가겠다고 했었기에 보기 안쓰러운마음에 내가 배웅을 하게되었지. 그런데 그것도 못할 짓이더라 . 너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부산역에서 너를 혼자 두고 돌아서는 내 마음이 얼마나 쓰렸는지 너는 모를꺼야...그래서 다시는  배웅하진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런 언제적인가 너를 배웅하기 위해 부산역에 갔을 때 어느 군인은 정말 우산을 쓰지 않더구나. 엄마가 아들을 배웅하기 위해 역에까지 나왔을텐데 비는  장대같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엄마혼자서 우산을 쓰고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 웃음이 나올수 없더라구..군인정신이 투철해서인지 아님 신참이라서 군대 규칙을 철저하게 따르기 위한 순진함이였는지 알수 없었지만 그걸 보고 한참동안 나는 웃고말았지. 내 생각 기저에는 그랬었거든 옆에서 엄마가 우산을 바쳐주는 것까지도 군대규칙을 들먹이며 제약을 가하진 않을것이라는 생각이어서지...

 

사랑하는 민규야~!

3반4일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돌아간 너를 생각하면 언제나 만날 때의 반가움보다 헤어질 때의 안쓰러움쪽으로 무게중심이 더 기우는 거 같고, 골이 더 깊어지는것 같아 너를 보내고 나면 또다시 휑해진 마음 가눌길 없구나. 네가 귀대하기에 앞서 항상 보고하게되는 '행보관'님과의 통화에서 나는 또 한번 현기증을 느꼈단다. 나는 가게로 너는 지하철을 타기위해 택시를 잡기 전 잠시 같이 길을 걸으면서 데이트를 할때였었지. 나는 그때 가게로 출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너의 말에 속으로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단다. 그 당황스러움에는 미안함도 자리하고 있었단다.


행보관님께 네가 그러더구나."어머니와 같이 가고 있습니다."  듣기 따라서는 엄마와 아들이 같이 귀대를 한다는 생각을 할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 아마 그런생각이 바탕이 되어 행보관님이  네게 다시 묻는 것 같았어. 그리고 너의 말이 이어졌지....
"어머니께서 부산역까지만 같이 가 주시기로 했습니다." 라고...그말을 듣고 가만히 있기 뭐했던 나는 네게 물었지.

"민규야 정말 부산역까지 따라갈까?" 라구...그랬드니 네가 그랬지

"그럼 어머니 안가실 생각이셨어요?"
나는 그말을 듣고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듯 잠시 멍해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돌발적인 말이였기 때문이지. 아침부터 비가 온다는 걸 알았을 때 네게 내가 그런말을 했었거든.  그런 말을 듣고 내가 그랬었지.


" 민규야 부산역에 가서 버려도 아깝지 않을 만큼한 우산을 들려줄테니 그걸 쓰고 갈래?" 라구... 그때 너는 괜찮다는 말을 했었지...그때 나는 생각했었어. '그럼 혼자 간다는 거로구나' 라구...만약에 내가 너를 배웅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더라면 출근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일찍부터 서둘렀을꺼야. 왠줄아니? 이 엄마가 출근하고 나면 아버지께서는 거래처에 물건을 갖다주거든 그러니 그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너를 배웅한다는 생각은 할수 없거든...내 마음을 읽었는지 지나가는 택시를 네가 잡고 탈려고할때 네게 작은 목소리로 "나도 같이갈까?" 하며 손잡이를 잡고 묻는내게 너는 손사래를 치며 택시문을 닫고 말았어. 그때 정말 미안한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혼자 가게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많은 생각이 벌떼같이 몰려들더구나.

 

네가 마지막으로 '행보관' 님께 전화를 하고 난 뒤 내 손에 쥐어주는 휴대폰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 너와의 단절...그 단절의 시간이 긴 시간을 요하던 짧은 시간을 요하던 너와의 대화는 여기서 단절 된다는 생각에 설핏 눈주위가 스멀거리더구나. 지금 네게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비가 소리없이 또 내리고 있다. 고개를 들어 컴퓨터 위 책꽃이에 얹혀져있는 탁상시계를 보니 시침이 12시를 지나가고 있다. 네가 부산역에 도착했을 시각은 되었다는 생각에 한시름 놓는 바보같은 엄마가
또 다시 만날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