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Story
장묘문화
정순이
2003. 10. 25. 08:49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꺼야”
사자후를 토하듯 울부짖어대며 토해내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남편이었다.맏이인 큰 형님이 병원에 입원해있는곳에 병문안을 다녀온 뒤 시숙님의 앙상한 몰골을 보고 난후에 속이 상한 나머지 술이 얼근하게 취해 집에 돌아와 울부짖었던 것이다.
“나는 형님처럼 그렇게 살다 가진 않을꺼야. 너무 억울하잖아.그 나이 되도록 어디 여행을 한번 다녀보길 했나, 편한 마음으로 살아보길했나, 그 나이때까지 자식들을 위해 가정을 위해 자신을 위한 시간도 가져보지 못한 채,고생만 진특하게하다가 죽기에는 형님이 너무 불쌍해. 이 나이되도록 고생만 하다 죽는다면 너무억울하지 않겠나 말이야.그러니 내가 죽더라도 절대 화장하진 말어. 알았제?.“
꺼이꺼이....피울음을 토해내듯 사자후를 하는 남편이 잠잠해진 것은 몇번이나 다짐을 받고서야 안심이라도 되느냥 울음을 그치는 것이였다.
연전이였던가 명절 뒤끝에 집에온 남편은 나의 시선을 붙들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내 생각 한번 들어봐라. 나는 있제 너거 둘째오빠 계시는 그 쪽에 산을 좀 사가지고
싶어.“ 생뚱맞은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던 내게 남편은 말을 잇는다.
“한 200평정도 사서 내가 죽고 난뒤에 거기다 묻어줘면 어떨까. 일단 터는 내가 마련하고
나머지는 민규에게 맡기면 어떨까? 한 가족이라도 산소가 흩어져 있으니까 성묘나 벌초하러 다니는것도 여간 성가신게 아니더라구. 니는 어떻게 생각하노?“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남편의 생각이 엉뚱하다 싶을 정도였지만, 내심 그렇게 하는 것 또한 괜찮겠다는 생각이 안든건 아니였다. 친정 부모님의 산소는 같은 곳에 나란히 매장을 하였지만, 오빠의 산소는 멀리 뚝 떨어져 있어서 여간 불편하지않다는 생각을 성묘를 다녀올때마다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남편의 생각 저변에도 나와같은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고착된 고정관념인 매장문화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고루한 생각에 화장문화를 받아들일만큼 생각이 앞서있는건 아니였고, 나 역시 화장문화를 받아들일만큼 생각이 깨어있는 것 또한 아니다.
시댁에서 가족들의 모임이 있을때마다 시어머님은 화장을 해달라며 주문을 하듯 독백을 쏟아내곤 하셨다.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유분은 산에다 뿌려라. 그 유분을 까마귀들이 먹으면 자식들에게나 손자들의 앞길이 트이고 잘된다네. 알았제?“ 매번 혼자 중얼거리시며 최면이라도 걸듯 하시지만, 대답을 기다리시진 않은 듯 했다. 시아버님묘터 옆에 이미 어머님의 빈 묘터가 있음을 모르시는 분이 아닌데도 말이다. 듣고 있던 자식들은 묵묵히 들어주기만 할뿐, 아무도 그렇게 할꺼라는 답변은 드리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에필로그:좁고 한정된 땅을 가진 한반도에서 장묘문화가 계속될 경우, 죽은 사람들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터전이 없어질 가능성이 농후하지만,아직까지 내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것은 내 생각이 너무 고루하기때문인가.
사자후를 토하듯 울부짖어대며 토해내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남편이었다.맏이인 큰 형님이 병원에 입원해있는곳에 병문안을 다녀온 뒤 시숙님의 앙상한 몰골을 보고 난후에 속이 상한 나머지 술이 얼근하게 취해 집에 돌아와 울부짖었던 것이다.
“나는 형님처럼 그렇게 살다 가진 않을꺼야. 너무 억울하잖아.그 나이 되도록 어디 여행을 한번 다녀보길 했나, 편한 마음으로 살아보길했나, 그 나이때까지 자식들을 위해 가정을 위해 자신을 위한 시간도 가져보지 못한 채,고생만 진특하게하다가 죽기에는 형님이 너무 불쌍해. 이 나이되도록 고생만 하다 죽는다면 너무억울하지 않겠나 말이야.그러니 내가 죽더라도 절대 화장하진 말어. 알았제?.“
꺼이꺼이....피울음을 토해내듯 사자후를 하는 남편이 잠잠해진 것은 몇번이나 다짐을 받고서야 안심이라도 되느냥 울음을 그치는 것이였다.
연전이였던가 명절 뒤끝에 집에온 남편은 나의 시선을 붙들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내 생각 한번 들어봐라. 나는 있제 너거 둘째오빠 계시는 그 쪽에 산을 좀 사가지고
싶어.“ 생뚱맞은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던 내게 남편은 말을 잇는다.
“한 200평정도 사서 내가 죽고 난뒤에 거기다 묻어줘면 어떨까. 일단 터는 내가 마련하고
나머지는 민규에게 맡기면 어떨까? 한 가족이라도 산소가 흩어져 있으니까 성묘나 벌초하러 다니는것도 여간 성가신게 아니더라구. 니는 어떻게 생각하노?“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남편의 생각이 엉뚱하다 싶을 정도였지만, 내심 그렇게 하는 것 또한 괜찮겠다는 생각이 안든건 아니였다. 친정 부모님의 산소는 같은 곳에 나란히 매장을 하였지만, 오빠의 산소는 멀리 뚝 떨어져 있어서 여간 불편하지않다는 생각을 성묘를 다녀올때마다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남편의 생각 저변에도 나와같은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고착된 고정관념인 매장문화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고루한 생각에 화장문화를 받아들일만큼 생각이 앞서있는건 아니였고, 나 역시 화장문화를 받아들일만큼 생각이 깨어있는 것 또한 아니다.
시댁에서 가족들의 모임이 있을때마다 시어머님은 화장을 해달라며 주문을 하듯 독백을 쏟아내곤 하셨다.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유분은 산에다 뿌려라. 그 유분을 까마귀들이 먹으면 자식들에게나 손자들의 앞길이 트이고 잘된다네. 알았제?“ 매번 혼자 중얼거리시며 최면이라도 걸듯 하시지만, 대답을 기다리시진 않은 듯 했다. 시아버님묘터 옆에 이미 어머님의 빈 묘터가 있음을 모르시는 분이 아닌데도 말이다. 듣고 있던 자식들은 묵묵히 들어주기만 할뿐, 아무도 그렇게 할꺼라는 답변은 드리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에필로그:좁고 한정된 땅을 가진 한반도에서 장묘문화가 계속될 경우, 죽은 사람들때문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터전이 없어질 가능성이 농후하지만,아직까지 내게는 받아들여지지 않는것은 내 생각이 너무 고루하기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