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대소동
처서라는 절기가 지나가고 난 후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선선함이 이제야 살것같다. 계절이 주는 질감에 느긋한 하루를 맞는다.
“내가 갑자기 아프면 누구를 불러야 할까?” 조카들 둘은 대처에 나가 취직해 있으니 거리가 멀어 부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테고, ‘그렇다면? ‘시댁과 거리가 제일 가까운 우리를 불러야겠다는 말을 하고 싶은건가?‘ 라는 생각이 들긴 했으나, 큰동서의 성격이라면 남한테 피해주는 걸 원치않아 그러지도 못할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아버님 기일이라 제수음식장만을 하기 위해 가게에 들린 큰동서의 푸념이었다. 강하다는 게 트레이드마크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데 그런 나약한 말을 해오니 마음이 짠해왔다. 비록 약한모습은 보이지 않을려 하고 있지만, 왜 그자신도 늦은 저녁시간이나 잠이 깬 새벽에 면벽해야 할 때의 허전함이 없었을까. 아주 강인한 성격이라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아 한순간이라도 동서가 외로워한다든가 하는 생각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본인도 그런걸 싫어했다. 자존심이 아주 강해 남에게 약한모습을 보이는 것조차 용서하지 않았고, 어느 누구에게도 동정어린 시선을 받는걸 거부했다. 그렇게 자존심 강한 큰동서의 당연한 행동이었는지 큰시숙님이 돌아가시고 며칠 후부터 화장을 하고 다녔을 정도다. 처음에는 큰동서의 행동이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큰동서의 성격이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라며 수긍했다. 그렇게 지존심 강한 큰동서가 나약한 말을 해왔으니, 지금 큰동서가 느끼고 있을 외로움이 어느정도인지 미루어 짐작이 되었다.
“얼마 전 태풍이 몹시 불던 날 밤이다. 친목회 모임에 갔다가 늦은 귀가를 했지. 옥상에 늘어놓은 빨래를 걷어러 갔다가 큰 봉변을 당했지 뭐야. 그 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귀를 쫑긋거리고 다음말이 이어지길 기다리며 마른 침을 삼켰다. “빨래를 걷어 돌아서는 데 태풍으로 인해 바람이 불드니 갑자기 옥상문이 쾅 닫히는 거야. 바깥에서 아무리 열어도 열리지 않는거야? 그순간의 아득하고 참담함이란...말하자면 안에서 도어코크를 눌러놓았었나바. 그러니 바람의 세기에 의해 문이 잠긴거고, 안에서 도어룩을 눌러두었으니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열수 없는거야. 안되겠다 싶어 도움을 청해야 하는 데 시간은 12시가 다 되어가는 데 누가 잠을 자지 않고 있을까? 그래도 그순간에 어떡하겠어. 세 블록 떨어져 있는 곳에 친구가 살고 있어. 남들이 흉을 보든가 말든가, 친구 이름을 막 불러제꼈지. 몇분 지나지 않아 친구가 자신도 놀랐는지 왜 그러느냐며 밖으로 나온거야. 마침 자신도 모임에 갔다가 그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는거야. 사실데로 이야기를 하고, 얼른 문을 열어보라고 했어." 그런 상황에서 그친구는 어떻게 문을 열수 있을까 의아해 묻고 싶었지만,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 알수 있을꺼라는 생각에 귀를 쫑긋 거렸다.
"혹시나 싶어 그 친구에게 우리집 열쇠를 하나 준 게 있었거든. 내가 준 열쇠를 얼른 갖고와 문을 열어라고 했지. 자신도 친구의 혼자서 그럭하고 있는게 안타까웠는지 부리나케 집안으로 들어가서 열쇠를 가져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았어, 그런데, 또다른 장벽에 부딪혔 뭐야. 집안에서 안전고리를 채워놓아버리면, 열쇠가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거야. 외출을 할때 안전핀을 풀지 않고 문을 잠궈 버리면 열쇠가 있다고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 인제 집안으로 들어갈수 없나 싶어 절망하고 있는 데 친구가 그러는거 있지? ’경숙아, 잠시만 기다려 내가 자주 가는 집인데 한번 부탁해볼게.” “이시간까지 잠을 자지않고 있을까?” “그래도 어떡하겠어? 답답한 데 불러나봐야지.”
“ 그 친구는 얼마있지않아 한 남자분을 데려왔고, 몇집의 옥상을 건너고 건너 문을 열게 된거야. 문만 열면 집에 들어갈 수 있는 대도 들어갈 수 없는 그 답답함. 상상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꺼야. 우리집옥상은 아웃집 옥상하고 틈이 많이 벌어져있어 건너기도 아주 힘들거든 그런데도 전혀 내색도 않고 그 밤에 건너와 준게 얼마나 고마운지 나중에 사례를 할려고 하니 손사래를 치는 거야. 도어룩을 교체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없애기에는 도둑이 들까 두려워 어떡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드니 볼일을 보러 옥상에 올라갈대마다 잊지말고 문과 계단 턱 사이에 돌을 하나 받쳐두라는거야, 문이 닿히지 않게 말이야. 지금도 그날 밤 일을 생각하면 아찔해져.“ ”얼마나 놀랬겠어요.?“ ”놀라다 뿐이겠어?“ 왜 큰동서가 갑자기 자신이 아파 쓰러졌을 때 도움이 필요할 때 불러야 할 대상이 누군지 깨닫게 되었다는걸 알 수 있었고, 아무리 가까운 친척이라도 멀리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거, 이웃사촌이나 가까이 있는 친구가 제일이라는걸 느낀 하루였다는 말해주고 싶었는 지 모른다. 하긴 5분거리안에 있다고 해도 휴대폰이 없는 데, 동서나 시동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