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순, 다 됐네~?
“하정순, 다 됐구만?” 히죽이며 놀리고 있는 남편의 등에대고 독설을 뿜어냈다. “내가 다 돼어보이는 게 그렇게도 좋으세요? 입이 귀에 걸렸구만요. 곰곰이 생각하니 얼마남지 않았다는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오나보죠?” “하이고, 불과 재작년까지만해도 나 따라가지 못하겠다고 엄살이시두만...정말 그때는 얼마 가지 않으면 있을 금단봉(1800 m)에도 못 올라가겠다며 짜증을 내는 바람에 금단봉을 눈앞에 두고 올라가지 못한 체 발길을 돌려 돌아왔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때를 생각하면 그런말을 못할텐 데....‘
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뿐 표현은 하지 못했다. 몇 개월의 반복된 강행군으로 다리에 힘이 길러진 남편은 나와는 비교가 되지않을정도로 잘 걷는다. 물론 등산 마니아들인 친구들에게 비견할 순 없지만....참으로 아이러니컬 한건 집에서 러닝머신으로 하루에 45분간은 운동을 하는 나인데도 이번 산행에 다녀와서는 다리에 몽알이 진것같은 통증을 호소한다. ”내일 아침 일찍 우리 금정산에 갔다올래?“ 뜻밖의 제안에 걱정되는 생각이 없진 않았으나 흔쾌히 받아들였다. 허리아프다며 등산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와이프가 이웃하고 5시간동안 장산을 갔다온걸 생각하면 이번에 가는 코스는 그정도(5시간)의 시간을 요하는것도 않아, 무난하게 갔다올수 있지 않겠나는 생각에 그렇게 제안했을 것이리라는 미루어 짐작이다. 그러나 장산의 등산코스는 완만했다.
나선형처럼 산허리를 둘러둘러 올라갔기 때문에 힙들지 않게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고, 이튿날 활동하는데도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다. 2주일 전 인가? ”민규 등산화 한 켤레 사줘야 겠어.“ 지난 번 아들과 남편은 금정산 등산을 했다. 산에 오른지 1시간 동안은 별무리없이 걸어며 속력을 내는 아들이 등산화를 신지 않아서인지 발바닥이 아파 통증을 호소하더라며 등산화를 사주면 ’코를 꿸수 있지않겠나‘ 는 말까지 극비사항을 귀띔했다. 그런 어느날 등산화를 사러 가며 내 등산화는 사줄 생각을 않는 게 아닌가. 5~6시간 등산코스에도 운동화를 신어도 끄떡없더라며 가볍기만 하다고 운동화를 고집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아내 등산화는 계산에 들어가 있지 않는 게 아닌가. 가벼운 운동화를 선호하며 등산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나의 일갈이 한몫한 듯했다. 그래도 그렇지. ’그 등산화를 판매하는 매장은 가까이 있지 않으니 기왕 남편 신발과 아들 신발을 사러 가는길에 사오면 어디가 덧나남?’ 하는 생각에 은근히 부화가 나는게 아닌가.
”등산화 사러갈 때 내것도 사와요. 신발 한번 사러가기도 힘이 드는 게 가는 길에 한 켤레 사다놓죠 머.“ ”몇 m 신노?“ 집에서 230m 신으니까 235m 하면 될꺼에요. 그러나 235m 신발을 사왔으나 발에 너무 딱맞아 안된다는 것이 아닌가. 평소 때 신는 신발보다 조금 더 크야 하산길에 발이 몰리는 앞부분이 아프지 않다며 어드바이스 했다. 다시 240m로 바꾸었다. 신어보지 않고 당연히 맞겠다 생각했지만, 처음 신어보는 등산화는 영 불편했고, 발이 신발안에서 노는 것같이 벗겨질것 같았다. 그러나 주사위는 던져졌다. 처음 신는 등산화는 발이 아플 수 있으니 거리가 짧은 뒷산에 다니며 등산화를 길들이라는 남편의 언질이 있긴 했으나, 대수롭게 생각하지않은 어제 드디어 대장정에 깃발을 내걸고 그 시험대(?)에 올랐다. 산 초입에 들어서자말자 예의 그 신발을 말썽을 피우기 시작했다.
신발이 벗겨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아킬레스가 있는 발목뒤에 힘을 줘야했고, 거기에 신경을 쓰다보니 발걸음이 무거워졌고, 더 힘이 드는 듯했다. 자꾸만 몇 년 전의 기억들이 숨가쁘게 달려왔다. 그랬다. 그당시 등산이라곤 전혀 다녀본적이 없고,등산용어마저 생소했던 우리부부는 친목회에서 갑작스럽게 결정 된 등산 계획에 따라 부랴부랴 한 켤레 산 등산화에 고생 했던 기억이 자꾸만 뇌리에 중첩되어왔다. 새벽 5시 30분 . 희뿜하게 밝아오는 새벽을 열며 밖으로 나온 우리부부는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 식물원 후문에 내려 산으로 들어섰다. 아직 여명이 밝지 않았는데도 등산객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과 멀지 않은 약수터에 물을 길러 가는 듯 보이는 사람의 배낭에는 빈 패트병도 보였다. 몇 번 와본 기억이 나는 지 남편은 앞장을 서서 가이드를 했다. 아주 가파르고 경사가 심했지만, 남편은 숨도 헐떡이지 않고 가볍게 앞장서 나를 기다리곤 했다. 몇 개월의 반복한 등산으로 다리에 힘이 생긴 남편은 힘겹게 뒤따라오는 내게 혀를 글끌 찬다.
‘헉, 어느새...?‘ 능선에 다 올라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니 그 시원함이 폐부를 훑는다. ’음, 바로 이맛이야.‘등산로 옆으로 우거진 메타쉐콰이어와 소나무과인 후박나무, 침엽수인 향나무,쭉쭉 뻗은 편백송...이름모를 들꽃들이 헤맑은 웃음으로 등산객들을 반긴다. 멀지 않은 곳에 ’언덕위 하얀집 ‘ 있다는 푯말이 눈길을 끈다. 이 산속에 힘에 지친 등산객을 위한 쉬어가는 집이 있었다니...신선한 상호에 엷은 미소가 저절로 번진다. 그집을 옆으로 하고 내리막길에 들어섰다. 어디서 졸졸 냇물 흐르는 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비가 많이 오지 않은 탓인지 물의 흐름이 빠르진 않았으나 아주 맑고 깨끗하다.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성지공원으로 가는길을 물었고, 산속에 있는 소방도로를 건너야만 갈수 있는 길을 안내받았다. 소방도로를 건너 올라가는 등산로를 보니 가파른 나무계단이 우릴 반긴다. ’아뿔싸, 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하나?‘는 생각에 아찔했다.
온통 땀으로 범벅된 청바지가 칭칭 감겨오는걸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했다 ‘ 힘겹게 올라가길 10여분 내리막길 멀지 않은 곳의 푯말에 성지공원이 1.2km 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다 왔구나 싶은 안도감에 다리에 힘이 빠진다. 이튿날인 오늘도 다리 곳곳에 동통이 뭉쳤다는 내말에 남편의 뼈있는 한마디가 방안공기를 가른다. ”니는 그래가지고 한라산은 고사하고 지리산도 어림없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