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을 달리는 소득 양극화현상
이야기 중간 중간에 할머니의 웃는 모습은 다문 듯, 벌린 듯 작은 입을 벌리며 홍조를 띄우면 천진한 아이를 보는 듯해
마음 속 깉은 곳에서 작은 파문이 일곤한다. 우윳빛 피부에 양쪽 볼이 발그래하다. 나이가 세월의 무게를 비켜간 듯 70이라는 세월을 무색케
할만큼 고운 모습을 하고 계신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그 고움과는 달리 몸은 70풍상을 온몸으로 겪어내신 듯 걸음걸이에 힘이 없어시고, 다리에
힘이 다 빠졌는 지 기우뚱거리면서 걸음을 떼어놓으신다. 젊었을때는 한미모 하셨을만큼 외모도 아름답지만, 외모만큼 복이 따라주지 않았는지,
남편시집살이가 아주 혹독했다며, 눈을 지그시 감고 회한에 잠긴 듯 눈자위가 불어지곤 한다. 자신이 살아왔던 힘겨운 삶의 굴곡들을 힘겹게 건너왔던
이야기를 풀어놓으신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지. 요즘은 여자들이 더 큰소리치는 세상이지. 그러나 그당시만 해도'여자들은 시집을 갔으면 그집(시댁) 귀신이 되야한다'는 말을 시집올 때 친정엄마로부터 듣고 결혼을 했을만큼 여성들에게는 암울한 시대상황이였지. 그래도 처녀때는 많은 귀여움을 받으면서 자랐는 데 말이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지난 시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놓을때마다 100% 다 믿게 되는 건 아니다. 어느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말하는 당사자인 화자의 성격을 반영하고 지나치다 싶으면 선별해서 듣게된다. 그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뢰감을 쌓으려고 노력하게되고, 신뢰의 인프라를 구축하려고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을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갖고 태어난 성정을 어쩔수 있으랴. 없다는 한계를 절감하지만 말이다.
그분도 고생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을 법한 고운 성정을 하고 계시지만, 몇번의 사업이 실패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고, 엎친 데 덮친격으로 IMF가 그분의 가정에 허리케인을 몰고 오면서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셨단다. 한때는 서울에 집도 두채나 소유했을 만큼 부를 축적했지만, 큰아들의 사업자금과 보증을 서면서 집 두채는 고스란히 날리고 지금은 기층민들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런 그분은 가끔 생활비가 부족하다며, 아쉬운 말씀을 할 때도 있다. 자식의 앞길은 부모가 열어주어야한다는 할머니의 고착된 생각은 자신의 아들을 보는 낙으로 대신할만큼 자식에 대한 욕심은 있었다. 어렵게 보낸 대학나온 아들도 뚜렷한 직장도 없이 하루살이처럼 사는것같이 보여질때는 그 가정의 어려움이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 할머니와 같은 분들이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경기침체의 여파를 비켜갈 수 없어 어렵게 사는 분들이 제법 있다. 가끔 고기를 사기 위해 가게에 들러 셈을 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 데 미세한 손떨림이 전달 될만큼 어려운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이 많다. 이런 할머니들과는 극과 극을 달리는 다른 부류가 있다.
재작년 쯤이든가 남편이 사줬다며' 그랜저'를 몰고 다니는 여성이다. 나와 같은 동갑내기 여성인데 돈을 얼마나 잘 쓰느냐면 한달에 자기가 쓰는 용돈이 어려운 사람들의 몇 달치 생활비정도로 많은 돈을 뿌리고 다닌다. 그들의 명분은 "돈있는 사람이 뿌려야지만,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매일 지갑에 제법 많은 돈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와야겠다며 목에 힘을 주곤한다. 어제 아침 조간신문 한 귀퉁이에 씁쓸한 기사 하나가 하루종일 마음을 울적하게 만든다. 우리나라 상위 10%가구의 월평균 소득이 하위 10%가구의 18배에 달한다는 소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당연히 빈곤층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지면 좀처럼 헤어나기가 어렵다. 특히 40~50대 중년층은 실직하거나 사업에 실패할 경우 재기하기 힘든 '사회적 경제구조' 로 가고 있다. 이것은 '가난의 대물림'으로 고착화되기 마련이다. 죽어라 일만 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번 직장을 잃으면 재취업할 수 없는 구조의 근본적인 개선이 없는 한 선진복지입국은 빈말일 수밖에 없다.
소득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마이너리티들의 한숨소리는 그들의 흥청거림에 듣기지조차 않은 채 묻히고 만다. 그들은
'내가 벌어 내가 쓴다' 는 그릇된 인식아래 오늘도 백화점으로 몰려간다. 하루하루 한숨짓는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에 정부는 언제쯤
귀를 기울여줄까. 노블리스 오블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