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
"장조림 할려는 데 어떤 부위가 좋아요?" " 안심 부위죠. 아주 연한게 소고기보다 먹기가 더 나아요." 널씬한 팔등신에 한가닥의 헤어링 속으로 묶어올려진 머리카락들이 넘실대는 헤어스타일에 시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그녀는 어울리지 않을만큼 세련미를 갖추고 있었다.
"오늘이 딱 5년째 날이네"
묻지도 않은 말을 그녀는 독백처럼 내뱉었다. "무슨 말이에요?" "내가 수술받은 게
오늘로 딱 5년 째거든요." "수술받으셨나보죠? 어디가 아파서요." "말도 마세요.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만 생각하면 숨가쁜
상황에 심장이 멈출 것 같아요." "그러니까 5년 전 오늘이었어요. 어제 저녁 멀 잘 못 먹었는지 자꾸만 속이 쓰려오는 거 있죠?
약국에서 약을 사먹었는데도 쓰린 증세는 좀체 멈추지 않는거에요. 그래도 쉴수가 없어 그날 가게는 문을 열었어요. 견딜 수 없는
통증에 눈을 뜨자말자 병원에 들렀어요. 병원에 들러 엑스레이를 찍었드니 종양이 보인다는거에요." "어느병원에 갔더랬어요?" "요지 00병원
있잖아요." 그녀가 가르키는 병원은 우리가게에서 5분거리안에 있는 병원이다. "그래요? 그병원에서도 잘 집어내든가보죠?"
많은 사람들로부터 병원이미지가 그렇게 썩 좋게 평가를 내린 건 아니었다. 처음 그병원은 작은 의원부터 시작해 많은 임신부들을 재왕절개로 수술을
해 많은 돈을 벌었다는 악선전과 함께 병을 잘 발견하지 못한다는 말들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들려오곤 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어디가 아프다면 먼 곳에 위치한 병원까지 가는 불편함을 감수하곤했다.
그만큼 지명도가 낮았는데 그녀는 그병원에서 종양을 발견을 한모양이다. 그것도 아주 초기에 말이다. 어느 누가 말을 하든 검사를 받고 polyp 이나 종양을 초기에 발견해 수술이 잘 되었다는 말이 들리면 어느병원인지부터 묻게 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예기치 않은 갑작스런 통증이 있을 때 정보없이 여러병원을 전전하기보다는 고객들로부터 확보해놓은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다.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유명한 의사한테 진료받기 위해 몇 시간 씩 줄을 서서 기다려는것도 불평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검진을 받고 의사앞에 앉아있는 데 의사선생님이 고개를 가로로 흔드는거에요. 그래서 물었죠. 결과가 나쁘냐구요. 그랬드니 의사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아직 정확한 건 더 세밀한 검진을 받아보아야 알수 있겠지만, 조그마한 종양이 보인다는 거에요. 다행스럽게 다른 데 전이가 된건 아닌것 같다며 '고신대 병원'을 소개하더군요. 의사선생님이 추천하는 병원에 서둘러 갔었죠. 몇가지 검진을 받고 수술에 들어가기 전 담당의사가 묻더군요. '혹시 어떠한 불상사가 일어나도 그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다는 각서에 도장을 찍어달라는 거였죠. 기분이 아주 나쁘더라구요. 의사의 직분으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보다는 불미스런 일을 먼저 거론하는 데 화가 나는거에요. 그래서 그날 밤 늦게 퇴원을 해달라고 졸랐죠. 통상 밤에 퇴원절차는 밟지 않는 병원규칙에도 불구하고 떼를 썼죠. 그들도 별수 없다는 생각을 했는 지 퇴원수속을 밟아주더군요. 여러가지 검진을 해서인지 2백만원이 조금 넘게 나왔더라구요. 다른 병원에서 또 다시 검진을 받는다면 이중으로 부담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부담보다는 살아야한다는 의식이 더 강했죠.
입원할려면 필요한 이불보따리를 옷을 대충 챙겨들고 무작정 서울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어요. 열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도중 왜 그렇게 눈물이 나오는지....그러나 생각해보면 내 몸을 돌보지 않은 내 책임이 컷었죠. 밥도 제때 먹지 않은적이 많았고, 술이나 담배를 피우기까지 했으니...."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외모에 '술'을 마셨다는 말에 '무슨 일을 하기에 술을 마셨는지' 묻고 싶은 충동이 일긴 했지만, 그녀의 눈을 재촉하며 다음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서울역에 내려 '원자력 병원'을 찾았어요." "거긴 어떻게 알구요?" "가끔 TV를 통해서 '원자력 병원'에 대해서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그병원을 택했죠. 응급실에 도착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입원실이 없어 응급실 복도에 진을 치고 있더라구요. 내가 운이 좋았는지 그날 밤 입원실로 옮겼으니 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수술을 받을려고 기다리고 있는 데도 난 며칠 기다리지 않고 수술에 들어갔으니 운이 많이 따라 준 셈이죠. 그리고 담당의사님도 TV에 나오시는 분이라 믿음이 갔구요. 재빠르게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해서인지 수술결과가 아주 좋았어요." "운이 절묘하게 따라주었네요."
"내가 처음으로 운이 따라 준다는 생각을 했었던 적은 그때였어요. 보장성 보험을 넣은지 딱 91일만에 보험금도 탔으니
말이에요. 하루 늦은 석달만이라면 보험금을 받을 수가 없나봐요. 그 하루 때문에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으니...보험회사에서도 억울한 면이 있는
지 직접 병원까지 찾아왔더군요. 다 확인해보니 틀림이 없으니 얼마 있지않아 보험금을 가지고 왔더군요." "복이 많은가봐요." "복은요..."
말끝을 흐렸다. "지금 28살 먹은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무렵 때 남편은 유명을 달리했죠." "그래요? 어쩌다가요?" "낚시를 갔다가 파도에
휩쓸렸죠. 지금생각해보면 나혼자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득해요." "시신은 찾았나요?" "아뇨, 찾지 못했죠." "그때부터 내 험난한 삶이
이어졌어요. 남편 그늘에 묻혀 전혀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으니 세상돌아가는 물정에도 깜깜했죠. 이것저것 장사를 시작해보았으나 신통찮았어요.
아이들을 보면 재기를 해야겠는 데 남편 죽고 몸을 추스릴 여유도 없이 아이들 학자금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 너무 서둘렀던 탓에 원금마저
까먹었으니 다시 재기할려니 용기가 생겨야 말이죠. 그때 시작한 게 술장사였어요.
밑천 많이 들이지 않고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였으니 시작하기가 쉬웠죠. 술장사를 시작하면서 밥을 제때 챙겨먹지 못한날들이 이어졌고, 나신의 처지가 서글퍼 술도 한잔 씩 한게 마시는 빈도와 양이 늘었던 셈이예요. 거기다 담배까지 가끔 피우기도 했으니...그러니 속이 견딜수나 있었겠어요?" 안타까운 듯 양미간을 찡그리며 그녀의 이야기에 함몰되어갔다. "요즘도 가게하나요?" "아뇨. 병원에 입원하면서 그만 손을 놓은 게 아직이에요" 그래도 생계걱정을 하지 않고 있나는 듯한 눈길을 보내니...."이제는 딸 둘이도 결혼을 해서 한 짐 들었죠. 막내인 아들만 결혼시키면 내게 지워진 임무는 다 하는 셈이죠." "네...."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러 서울 원자력 병원에 가보지만, 아주 깨끗하데요. 그래도 방심할 수 없어요. 의사들이 말하는 건 5년만 넘기면 괜찮다고 하지만, 그래도 알수가 있어요? 딸은 그래요. '우리엄마는 착하게 살아서 하느님이 함부로 데려가지 않을꺼라' 구요." "딸이 옆에 있으니 마음이 든든하시겠어요?"
"그럼요. 사위도 아들같이 얼마나 잘 해주는 지....다만 한가지 걱정이 있다면 동생 때문에..." 말끝을 흐렸다. "동생이 왜요?" "동생도 암 진단이 났거든요. 5개월 전 에 암진단을 받았는 데 앞으로 살아갈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데요. 혹시나 해서 내가 수술받은 병원에 가면 뾰족한 수가 날려나 해서 그 병원에 데려갔죠. 그런데 제 수술을 집도한 의사선생님도 동생을 보드니 고개를 가로 젓더군요." "그래요?" "어쩔수 없죠. 동생만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져와요. 회복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러서야 병원에 들렀으니 ...."내눈을 들여다보며 "건강검진을 자주 받으세요." "누가 아니래요,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게 쉽게 안돼더라구요." 그녀가 말하고 있는 뒤로 손님이 들어선다. 그녀는 황급히 "다음에 또 올께요." 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