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눈오는 부산

정순이 2010. 3. 12. 20:11

 

 집안 청소를 하기 위해 창문을 연 나는 하얗게 변해있는 바깥 풍경에 화들짝 놀랐다. " 이거 좀 보세요. 눈이 왔어요, 부산에도 눈이 다 왔네요." 부산에 눈이 잘 오지 않은 탓인지 남편도  만연한 희색으로 바깥을 응시했다. "이렇게 눈이 왔는데, 손님 오겠나? 우리 가게문 열지말고, 금정산에나 갔다오자."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굳이 금정산까지 갈 필요있어요? 가까운 뒷산에 가면 될텐데.."딱히 약속은 하지 않았다. 현관문을 나서 가게로 출근했던 남편은 다시 돌아와 "길이 미끄러워 아이젠을 부착하지않고는 안 되겠어." 라는 남편의 말에 '뭐 그렇게까지 요란을 떠누?' 라는 생각으로 입을 삐죽였다. 그러한 생각은 출근길에 나서보고서야 실감이 났다.

 

아파트 앞, 신작로까지 내려가는 길은 아주 가파르다. 가파른 길을 더듬 듯 내려가려니 바지런한 경비아저씨가 벌써 염화칼슘을 뿌려놓았다. 천일염같은 하얀 입자를 한 염화칼슘이 길에 뿌려져있어 걷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좀 전 경비아저씨와 다른 한 분과 염화칼슘 이야기하는걸 짐작하면 그분들이 뿌려놓은게 확실할터이다.

가게에 출근해 대충 정리를 해놓고 아이젠을 챙겨들고 길을 나섰다. 진눈깨비와 눈이 번갈아가며 내려서인지, 길은 많이 녹아있었다. 2005년도에는 올해보다 훨씬 많은 적설양이었다. 그때는 별장비 갖추지않고도 뒷산을 갔다왔었다. 그런 기억에 가볍게 생각하고 아이젠을 챙기지않은 나는 산 들머리에 들어서야 불안감이 밀려왔고, 많은 등산객들로 다져진 협소한 등산로는 한 걸음 뗄때마다 그 미끄러움에 오금이 저려왔다.

 

준비성이 많은 남편은 들머리 들어서기가 바쁘게 아이젠을 착용했다. 돌아보며 괜찮겠나며 걱정하던 남편에게 "혼자 갔다오세요." 5년만에 맞게되는 눈들의 춤사래를 놓쳐야 하는 아쉬움이 돌아가야하는 발길을 망설이게 했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속으로는 아이젠 한컬레를 나눠신자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한컬레만 신는다고해서 효과가 있을라나는 생각도 들었다. 안되겠다싶어 발길을 돌리려는데, 혼자 돌려보내기 안쓰러웠던지 남편이 제안했다. "아이젠 한 짝 신어볼래?" "그래볼까요?" 남편 손으로부터 건내받은 아이젠 한짝을 신발에 덧대고 조이기를 한다음 걸음을 떼어보니 훨씬 나았다. 그제서야 여유가 생겼고, 소나무위에 상고대처럼 쌓여있는 나무들에게 눈길을 보낼 수 있었다. 정말 장관이다. 소나무의 푸른색에 뽀송뽀송한 솜사탕을 올려놓은 듯 눈들의 축제에 연신 탄성을 질러댔다.

 

잎이 무성한 푸른색 소나무색에 하얀 눈꽃의 배색은 아주 잘 어울렸다. 잎이 있으면 있는데로, 헐벗은 나목의 가지위에 얹혀있는 눈은 그나름데로 멋있었다. 눈의 무게에 눌린 나뭇 가지,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눈이 물로 변해 바위로 떨어지고, 그 미결정의 물방울이 바위 아래로 떨어지다 찬기온을 맞아 고드름 되어 매달려 있었다. 옛날 처마끝 조롱조롱 매달려있던 고드름이 연산작용을 하며 숨가쁘게 다가온다.

 

윤산 정상을 뒤로하고 하산길을 서두르니 등로 길섶으로 식재된 묘목위에도 하얀 당의를 걸친 팔손이, 식나무,사이프러스들이 열병식을 하듯 도열해있다.  오래전 다녀봤던 길이라 낯이 설진 않지만, 굳이 많은 시간을 들여 산을 다닐 필요가 있나는 나자신과의 협상에서 굳이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있나는 무게중심에 가중치가 더하면서 짧은 코스인 등로로 다닌다. 몇 년 만에 다시 와보는 낯익은 등로 옆으로 꽝꽝나무하며 광나무며 쥐똥나무들이 여전히 윤산을 지키는 파수꾼역할에 한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듯하다. 계절의 윤회에 소명을 다하기 위해 얼굴을 내밀고 오리나무꽃. 가문비 나무위로 살짝 내려앉은 하얀눈뭉치들...곳곳에 단장되어있는 나무 계단도 운치를 더했다.

 

갈길을 재촉하자, 시각야으로 들어오는 수원지의 카키색 물빛...눈이 부신 듯, 바닥이라도 다 보일 듯 평소의 투명한 물빛보다 어두운색을 하고 있는 수원지둘레길을 걸으니 외국영화에서나 본듯한 그림들이 장관을 이루며 펼쳐졌다. 수원지 호수에 투영돼 어늘거리는 물빛위로 비조(飛鳥) 한 마리가 시야밖으로 멀어진다. 평온하고 아늑한 산 속에서 휘파람새 한 마리가 짝지를 찾는 듯한 소리가 봄하늘을 가른다. 찌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