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부모라는 아이콘

정순이 2009. 3. 25. 21:30

 

 

 가지런한 치아와 얇은 입술이 치아를 가리고 있어 치아가 있는지 없는지 몰랐다. 아니 당연히 있겠지 생각했다. “이를 해야겠는데...”R할머니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는 “왜요? 치아가 없는거예요..?” 윗입술을 들어올리며 검지로 이를 가리켰다. 앞에 두 개의 치아 사이도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그 두개만 남기고 어금니가 있는 곳으로는 온통 시커멓다.  썩은 치아뿌리만 몸뚱이가 잘려나간 나무 밑둥지마냥 시커멓게 자리보전하고 있을 뿐이다. 정상성인의 경우 위에 있는 치아가 14개인데, 앞니 두 개와 어금니 양쪽으로 한 개씩을  제외하면 남은 치아는 10개밖에 없는 셈이다.

 

아랫니와 윗니가 맞물리지않는 부정교합으로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가 없다. 소화기능이 저하된 연치높으신 분이라, 치아로 음식을 골고루 다져야만 소화가  될것 같은데...“하긴해야하는데...”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해넣어야 할 치아 개수가 많으니 상당한 견적이 나올것이라는 미루어짐작과 자신의 능력부족으로 자식들에게 도움을 구해야하는데, 아이들 교육비며 생활비로 빠듯한 살림살이를 하는 자식들에게 차마 아쉬운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음식은 어떻게 씹어요..?” "대충 우물거리긴하는데, 소화도 안 되는것 같고, 맛도 모르겠고, 미치겠어요."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지난뒤에도 여전히 R할머니는 치아를 해넣지 않아보였다. 다시 보름 후...

 

“참! 지난 번 아르켜 준 거기 지금 연락해봐도 될려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R할머니의 동선을 따랐다. "아들들한테 어렵게 말해서 마련했어요." "아, 치아 때문에 말씀하시나보군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셨다. R할머니가 돈을 마련하신 모양이다. 기공소 전화번호 버튼을 눌렀다. 낯익은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다. 지리적 감각이 둔하시다는 R할머니의 말씀을 따라 마중까지 나온 기공소 사람을  따라 나섯던 할머니,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가게로 오셨다. "어떻게 됐어요? 할머니..." " 이 돈도 어렵게 마련했는데, 이 돈으로는 어림도 없겠어요. 그리고 치과에 가서 치아 발치를 하고 잇몸이 다 아물고 난 후 다시 오라는거예요." "그래도 돈이 생겼을 때 , 하셔야해요. 치아라도 해넣지않고  놔두면 또 써버리게 되요. 마음 억었을 때 하셔야해요." 몇 번이나 할머니의 생각이 바뀌지않길 다짐받으려했고, 채근해도  "죽을 때까지 이대로 살래요." 체념한 듯, 고개를 숙였다.

 

R할머니는 치아를 한 번 해넣었던적이 있었다. 벌레먹은 충치와 그와 연관된 조직결손으로 몇 개의 어금니와 앞니 두개도 해넣었었다. 그 당시만해도 지금처럼 경제적 어려움은 덜했다. 해서 두 아들과 딸이 쉽게 돈을 거둬 어머님께 드렸고, 썩 좋은 의치는 아니지만 중간 쯤 되는 가격의 假齒를 치과에서 할 수 있었다.  15여 년이 지난 달포 전 사과를 깨물다 느낌이 이상했다. 사과를 씹으려는데 단단한게 걸린다. 뭔가 싶어 엄지와 검지를 동원해 단단한 물체를 잡아내니 부러진 치아다. 그 한개를 기점으로 옆에 있는 치아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갔다.

 

벌써 15년 전에 해넣은 것이니 수명이 다 돼기도 했다. ‘지금같이 형편이 어려울 때 이럼 어떡하누..‘ 갑작스런 치아탈골로 난감해진 R할머니...간신히 남아있는 왼쪽 어금니로 음식 씹는걸 해결했다. 그런데 이걸 어째. 그 쪽 치아마저 탈골돼버렸다. 동사무소에서 지급되는 쥐꼬리만한 R할머니자신의 노령연금과 매달 박봉으로 살아가는 큰 아들의 봉급에서 조금 떼어 보태주는 돈으로 어렵게 한달을 꾸려가는 R할머니에겐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선뜻 자식들한테 “치아를 해넣어야하니 돈을 내놔라“라는 말은 정말 못하겠다고했다. 형편이 빠듯한 큰아들한테도 입을 떼지 못하겠고, 얼마 전 자동차를 구입한 둘째네는 여유가 있어보이긴했지만,  손자 둘의 교육비에 헉헉댈게 뻔할 것 같아 운을 떼지 못하겠고 막내딸이 있긴하는데  평소 때 도움을 많이 받아 입을 떼질 못하겠다고하셨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말 내 수중에 돈이 있어야한다는 사실을 이 번에 뼛속깊이 느꼈어요. 딸은 항상 나한테 잘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이 해넣어야한다는 말을 하니 짜증섞인 목소리로 그러지 뭐예요. '엄마, 지금 쪼달려 죽겠는데, 이럴때 이 해넣는다하면 어떡해!'  3월달이라 아이들 앞으로 지출할 일이 많다는건 알지만, 그래도 그런말을 들으니 너무 속상한거 있죠.?"  위로 두 아들을 낳고, 어렵게 얻은 막내딸이라 애지중지 키웠고, 어릴 때 몸이 약해 병치레가 잦아 엄마 속을 무던히 애태웠다든 막내딸...혼신의 노력으로 키워놓은 막내딸로부터 그런말을 들어야하는 심정은  정신적 상실감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