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우울모드.......

정순이 2008. 12. 2. 12:13


 

  "니는 둘째 오빠한테 그렇게 신세를 지고도 한 번 찾아가지 않나?" 평소와 다르게 친정오빠에 대한 관심에 저으기 당혹스런 마음으로 "그렇죠? 그렇지않아도 언니하고 같이 갈려고 약속했는데, 언니로부터 전화가 오지않네요."  두 달 전 가게에 들린 막내올케는 "둘째 형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언제 한 번 놀러오라네. 일손이 없어 사과를 수확하는것도 못하고, 알이 찬 배추도 뽑질 못하고 있다.'며 시간나는데로 밭에 와서 배추며 과일이며 가져가라 고 했었다" 는 말을 했었다.


그러지않아도 일손이 딸린다는걸 번연히 알면서도 앉아서 둘째 올케가 가져다주는 푸성귀나 과일들을 낼름낼름 받아먹기를 영 낯간지러웠다. 그런 어느날 가게에 들린 막내 올케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하루종일 일손을 도와주고 오자‘는 말에 마음에 없는 소리로 '그러자' 했었다.  약속은 아니지만, 막내올케와 그런 의견교환을 하고 난 후 일상생활로 돌아온 나는  휴일이 되면 오빠네밭에 가는 생각보다 등산 가는걸 즐겨했다. 딱히 쉬는 날이 없어서인지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제법 많은 시일이 지났는데도 시누이인 내가 가자는 말을 할 낌새를 보이지않자, 지난 주 일요일, 혼자서라도 다녀와야겠다며 가게에 들렸었다. 마음에 없이 건성으로 한 약속이긴하지만, 약속을 지키는 못함에 미안했고, 장사해야한다는 같잖은 핑계가 빚어낸 내 욕심에 화가 나기도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막내올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차량을 대고 가게까지 갖고 갈 수가 없으니 손수레를 끌고 농협앞으로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서너 개의 비닐에 들어있는 내용물은 많은 배추와 크고 작은 사과였다. 큰 사과는 유아기때의 머리만했고, 작은 사과는 갓난 아이가 쥔 주먹만했다.  집에 갔다가 다시 가게로 온 막내올케의 얼굴이 어두워보였다. “언제 시간내서 오빠네밭에 가봐...오빠 얼굴을 보니 황달끼도 있어보였고, 배도 불러 보이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형님, 요즘은 암수술을 했다고해서 완쾌됐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같더라구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더라구요..”


그때까지 말을 아끼던 둘째 올케가 말문을 열었다. “동서한테 이야기하면 막내시누이 귀에도 들어갈 것 같아서 말을 않고 있었어. 그렇지않아도 한 달 전, 정기검진날 검진을 받으니 암세포가 간에까지 전이되어있다고 하더라. 병원에서 3달마다 정기검진 받으라고해서 의사말만 듣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지뭐야. 시숙은 의사한테 화를 많이 내기도했었어. 그렇지만, 어떡해...‘ 라고 하시더라구....”막내올케의 말을 듣고 나니 같이 못간게 후회스러웠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서둘러 언니한테 연락을 했다. 그런 엊그제 남편이 느닺없이 그런말을 꺼내는게 아닌가. 다시 언니께 전화를 했다. 부랴부랴 시간을 낸 언니와 만날 시간을 정하고 둘째오빠께 전화를 드렸다.


한시간 반을 달린 언니와 난 마중나온 둘째오빠를 만났다. 쓰고 있는 모자 아래로 머리카락이 보이지않는다. 독한 약으로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말을 들어 알고 있긴하나, 지난 번 방사선치료때는 그러지않았었다. 둘째 오빠 병문안 갔을 때, 병실문을 열고 들어서니 몇 몇 병상 옆으로 시커먼 비닐 봉투를 뒤집어 쓰고 링거 거치대에 매달려있었다. 무엇인가 궁금해하는 내게 '암 환자들이라 방사선치료받고 있는 사람들' 이라고 일러줄 때 섬뜩했던 그 기분....요즘은 본인이 마지막정리를 할 수 있도록 아르켜준다고는 하지만, 그 상실감은 어떠했을까. 그런 생각에 병문안을 갔다오고서도 한동안 시커먼 비닐봉투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둘째 오빠도 그런 시커먼 비닐봉투가  수액거치대에 걸려있다는 생각을 하니 도무지 받아들여지지않았고 아뜩하기까지했다. 위암 수술 후 암세포증식을 막고 암세포를 소멸시키기 위해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한달에 한 번 4박5일동안..그렇게 세 번의 방사선 치료가 있었고, 그리고 몇 달 후 다시 검진했을때는 암세포가 보이지않았고, 다른 장기로의 전이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에서 다시 암세포가 간과 다른 장기로 전이되었다는건...? 3달 동안에 암세포가 다른 많은 장기로 전이 될 수도 있는가...여러가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이번에는 한 달에 2번씩 방사선 치료를 받는다고한다. 2박3일동안...지난번보다 방사선치료기간은 짧아졌는데 반해 두 번을 받아야하는 고통이 있다. 이번에는 다른 장기로 전이돼서 독한 약을 사용한 탓인지 숭덩숭덩 빠지는 머리에 아연(啞然)한 오빠는 이발을 해버렸고, 모자를 쓰게 되셨다. 모자를 벗으니 하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나 있는게 그마저 몇 가닥 보이지않았다. 둘째 오빠의 현실을 받아 들여야하는 참담함에 눈시울이 젖어왔다. 큰 오빠도 44세에 허망하게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계시지않는데 버팀목 같던 둘째 오빠의 손도 놓아드려야하는 생각을 하니 식도 아래서 뜨거운 뭔가가 올라오는 듯했다.


정년퇴직을 하고 쉬어야 하는 느즈막한 나이에 700평의 농지를 구입해  많은 과일나무와 여러 푸성귀들, 자식들 결혼기념일 식수를 한 수종들을 키우며 열심히 사는  둘째 오빠네 부부는 노후를 알차게 보내고 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고사성어를 인용해도 될 만큼 한갓 불모지에 불과했던 밭들을 기름진 땅인 옥토로 바꿔 놓았다. 자그마한 키에 어디서 저런 대찬 생각을 다했을까는 생각이 들정도다.


밭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자연석을 산비탈이 있는 곳으로 옮기고, 밭과 밭 사이에 경계를 알 수 없을 정도인 것을 밭둑을 만들고, 밭에 있는 작은 돌들을 다 걷어내고 옆에 땅을 더 구입해서는 밭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수로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했다. 그런 고생할때는 ‘ 늦은 나이에 뭐하러 땅을 사서 생고생을 하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십수년이 지나고 난 지금에 와서는 둘째 올케의 안목을 높이 사고 싶을만큼 주변의 지리적조건이나, 자산가치가 임계점에 이르고있다.


그렇게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시청에 군무원으로 근무하는 딸들이 아버지께 효도할 기회도 주지않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