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9월의 첫날에...

정순이 2008. 9. 2. 08:10

아침 저녁으로 피부를 간지럽히는 선선한 바람에 이제 가을이구나했드니 그런 생각이 방정맞은 듯 다시 수은주의 눈금이 오르내림의 속도가 롤러코스트 타듯 후텁지근한 하루였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入秋)도 지났고,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백로가 며칠 앞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감안하면 계절의 동력은 어김없이 순환의 물레방아를 돌리기에 한 눈 팔지않는다. 

 

음식솜씨 없기로 남편과 아들에게 일찌감치 화인 찍혀있던터라, 누구라도  내가 만든 음식이 맛있다는 말을 하기만 해도 미소가 자연증식하며 어깨가 으쓱거려지기까지 하는건 숨기지못하는 나의 순진함이 바탕되어있지않나는 생각이다. 식사를 하다 요리방법이 지난번하고 다르다든가, 입에 맞지않을 때는 남편과 아들은 이내 불만을 터뜨리곤한다. "제발 하던데로 해...다른 사람 말 듣지말고..." "어머니, 몸에 좋은것도 좋긴한데요, 맛도 중요하다구요..."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볼멘소리를 할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일지않는것도 아니다.

 

그럴때마다 '다음에는 아들이 원하는데로 해줄까...' 는 다짐도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기억의 저장고가 오작동을 일으킨 탓인지, 다시 요리를 할때는 아들이 좋아하지않는 재료들을 첨가하고만다. '음식도 예술이다' 는 문구를 떠올리며 가게에 들리는 고객들에게  음식레시피 주문을 요구할때가 있다. 가끔은 그 방법으로 요리를 해보곤하는데, 그때마다 입맞에 맞지않다며 불만을 쏟아놓는 남편과 아들이다. 마주하고 식사를 하던 남편과 아들은 내 시선을 피해 공중전으로 교전을 벌이듯 눈빛이 오간다. 그때마다 으례 <주부사표>라는 강경한 히든카드를 내밀어보지만, 한 번도 수락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컬하게 퇴근해 돌아오면 밥달라는 소리부터 한다. '내가 밥으로 보이나..?!'

 

며칠 전 일간지를 보다 주부해방을 외치며 가출했다는 드라마내용에 많은 여성들을 TV수상기 가까이 끌여들이며 며칠 사이에 드라마 시청률 1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엄마는 뿔났다' 는 어떤 내용이기에 여성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고 있을까 는 궁금증에 짱파일에서 다운로드를 해서 하루분을 시청한 적이 있다. 엄마 해방. 주부 해방을 '휴가'라는 명분을 내세워 남편의 이해를 얻어 남편과 같이 원룸을 얻으로 같이 다니는 설정은 전혀 현실성이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건 가상공간을 매개로 대리만족을 느끼는데서 시청률이 높지않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머리가 희끗한 노구(老軀)의 시아버지와 결혼한지 얼마되지않는 며느리에게 집안살림을 다 맡겨두고 떠난다는게...그렇지만, 내게도 그런 기회가 온다면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하는 바램도 가져봤다.

 

작년으로 기억한다. 산악회 회원들과 등산을 갔던 남편은 집으로 돌아오는 관광 버스에서 배속이 더부룩함을 느꼈고, 속을 할퀴는듯한 복통으로 이어졌고, 화장실이 급했던 남편은 아랫배의 통증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휴게소에 도착하기만 기다렸다고한다. 휴게소에 도착하기 바쁘게 화장실로 직행했고, 뱃속에 들어있던 내용물들을 배출구를 통해 다 배설했는데도 불구하고, 복통은 가시지 않았고, 급기야는  일행들께 민폐를 끼치기 싫다는 부담감에 낯선 곳에서 내렸다고한다.


 

휴일이라 문을 열지않는 약국이 있다는건 모르지않지만, 집 근처라면 돌아가면서 문을 열어놓은 당번약국이 있다. 그렇지만,  낯선곳에서 약국을 찾는다는건 쉽지않았을테고,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일찌감치 포기를 하고 근처를 두리번거리다가 슈퍼를 찾았다. 사정이야기를 하자, 쥔장은 매실주스 마실것을 권했고 얼마의 매실주스를 마시고 얼마지나지 않아 복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고한다. 매실의 효능을 실감했다고한다. 몇 년 전 매실청을 담은적이 있었다. 매실청의 효능을 아무리 역설(力說)해도 "몸에 좋은거 혼자 다 먹고 오래살아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드니 직접 겪어보고서야 매실의 효능을 인정했다.

 

가끔 아들방에 들어가보면 탄산음료 패트병이 보이곤했다. 톡 쏘는 맛을 즐겨하는지  곧잘 눈에 뜨이곤했다. 때로는 코카콜라, 또 어떨때는 옥수수수염차 음용하는 품목이 몇 가지나 되는지 모른다. 건강에 좋지않다며 마시지말라고 주문하면 "알았어요." 하면서도 음용수병이 나뒹굴곤 한다. 나는 탄산음료나 청량음료는 좋아하지 않은데반해 즐겨마시는 아들을 보면, 탄산음료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닮은 모양이다.


시중에는 새롭게 선을 보이는 청량음료들이 아주 많이 나와있다. 웰빙음료를 자랑하며 등장한 '옥수수수염차' 다이어트 음료라 광고하는 '감식초음용수' 를 비롯해 젊은층을 겨냥한 다양한 음료수들이 시각을 자극한다. 우리 동시대를 살았던 세대들은 '사이다'나 '콜라' 두 종류밖에 모르고 살았을만큼 청량음료에는 낯설다. 그런 아들에게 명령반 부탁 반으로 " 올해는 매실청을 담을테니까 매실음료를 마셔야한다." 썩 달갑지않은 듯  마뜩치않은 표정으로 "알았어요." 남편과 아들의 말을 주춧돌삼아 올해는 많은 양의 매실청을 담았다.

 

씨줄날줄로 엉켜있는 비닐 망에 들어있는 10kg양의 매실을 사다가 담아놓은 며칠 후 친정 둘째올케가 4kg 되는 양을 또 갖고 왔다. 몇 달 전 둘째 오빠네 밭에 갔을때, 나무에 올망졸망 매달려있는 매실을 탐을 냈드니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이틀 후 다시 지인으로부터 4kg정도의 매실을 받았다. 몇 년동안, 매실청을 담아봐야  먹지도 않는다는 생각에 매실청을 담지않았는데, 한꺼번에 20kg나 되는 많은 양을 담게 됐다. 동량의 설탕(백설탕 3. 황설탕7)의 비율로 매실과 설탕을 켜켜이 넣고 밀봉을 했다  달 포 후 매실원액을 국자로 떠내 물과 희석한 다음 투명한 크리스탈 머그잔에 작은 각얼음을 동동  띄워 아들과 남편앞으로 들이미니 아들은  미간부터 일그러뜨린다. 자신의 입맛에 맞을려나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인상을 쓰는 폼새를 보니 눈앞이 캄캄했다. 남편과 아들이 마셔야 양이 줄어들텐데 마시기도 전에 미간부터 일그러뜨리는 걸 보니 덜컥 겁부터 앞선다. 엄마의 엄포에 억지대답을 하긴했으나 못마땅 표정이 역력하다.  저 많은 양을 어떡할까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안 되겠다싶어 가게오는 고객에게 한 잔씩 권하니 매실 특유의 시큼한 맛도 나지않고 아주 잘 담았다며 칭찬일색이다.^^

 

 달리는 자동차소음을 헤집으며 아련하게 들려오는 "찹쌀떠억..."하는 소리가 9월의 밤공기를 가르며 정겹게 들려오는 9월의 첫날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