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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효자의 하루

정순이 2005. 2. 11. 10:55

얼마 전 두 살 터울인 언니한테서 한통의 전화를 받고 마음이 심란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을 잊고 살고 있다는 자책감이 들어서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지 어언 24년이 지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어머니 생신을 기억하고 있는 언니다. "정순아, 오늘 무슨날인지 알고 있어?" "무슨날인데?" "오늘이 어머니 생신이잖아" "그래. 맞아.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  며칠이더라? 12월 28일인가?  " "12월 18일이지" 미안한 마음과 함께 언니가 친정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새삼스러워 말문이 막혔다. 가끔 나와 같은 달에 들어있는 친정 아버지 생신날은 언 뜻 언 뜻 기억이 날때는 있었어도 어머니 생신은 늘 잊고 살았다.


그런 엊그제 그 미안함을 만회할 기회가 온 것이다. 친정집이 10분 거리안에 가까이 있지만, 친정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명절 때 친정에 가지 않은지가 벌써 몇 년 째다. 그러나 늘 잊지않고 전화로 명절인사를 대신하고 있다. 둘째 오빠네부터 시작해 막내오빠까지...그러나 정작 인사를 드려야 하는 친정부모님 산소에는 가지 못한다는 게 명절 때마다 늘 무거운 마음으로 짓눌리고 있었다.  명절 당일은 시댁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친정식구들이 성묘가는 시간을 맞추지 못한다. 해서 혼자 친정부모님 산소를 다녀온다는 건 무리라는 생각에 포기하고 살고 있다. 그러니 명절 때마다 마음 한 귀퉁이에 친정부모님을 뵙지 못한다는 자책감이 나를 짓누르곤했다. "따르르릉..." "여보세요?" "고모, 나야 우리 어머님 산소에 같이 갔다올까?" 막내올케다. 명절 때 식구들과 같이 성묘를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문갑위에 올려진 탁상시계를 보니 11시 3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갔다가 올려면 최소한 5시간 내지 6시간은 넉넉히 잡아야 한다. 부산에서 양산까지 걸리는 시간, 성묘객들로 인해 정체될지도 모르는 시간을 감안해야 해야하고, 셔틀버스가 운행을 하는지, 운행을 한다면 정류소가 어딘지 사전에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행동은 무모하기 짝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큰 무게를 차지했다. 지금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친정부모님을 찾아뵙겠나는 생각에 "그래 같이 가볼래? 찾아는 갈수 있겠어? " 막내올케나 나나 바깥 나들이를 잘 하지 않은 탓에 거리 감각이 무딘 편이다. 해서 미심쩍은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이번 기회에 길을 익혀두면 다음에 친정부모님 성묘 갈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잘 찾아 가지 않겠나는 생각에 결정하기가 더 쉬웠는지 모른다. 대충 화장을 하고 만나려는 약속시간보다 조금 더 일찍 집에서 출발했다. 꽃집에 들러 국화꽃이라도 사들고 가려는 생각에서였다. 막내올케는 과일을 준비해온다는고 했고, 나는 꽃을 사들고 가기로 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올케언니가 보이지 않아 두리번 거리며 찾고 있었지만, 나보다 미리 도착한 올케언니 역시  멀지 않은 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며 웃고 서 있었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시외버스터미널' 아무리 봐도 우리가 가려는 곳의 지명은 보이지 않았다. 매표소에서 발매를 하는 아가씨께 물어보니 우리가 왔던 길(두코스)을 다시 돌아가  '범어사 시외버스정류소'에서 12번 버스를 타라는 것이 아닌가. 아뜩했지만, 기왕 내친 걸음이라  종종걸음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멀리서 한 대의 버스가 미끄러져오고 있었다. 우리가 타고 갈 버스번호가 버스앞창에 적혀있는게 보였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12번 버스를 타고 내린 곳이 '양산 시외버스 터미널' 우리가 가야하는 '신불산 공원묘원'에 갈려면 갈길이 멀다. 30여분이 지나고 나니 '양산시외버스 터미널' 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발매를 하는 아가씨께 '신불산 공원묘원' 으로 갈려면 어느버스를 타야하는지 물었고, 9번 출구에서 '화룡'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시각이 1시 40분을 지나고 있었고, 버스시간표를 확인해보니 '화룡' 가는 버스는 2시10분에 출발한다는게 아닌가. 또 다시 30분을 기다려야했다. 기다리는 동안 추위로 얼얼해진 몸을 생강차 한잔으로 녹이고 우리가 타고갈 버스를 기다렸다.

 

생강차를 거의 다 마셔갈 무렵 우리가 타고갈 차가 거대한 몸통을 우리앞에 들이민다. 인제 친정부모님을 뵐수 있겠구나 하는 실감이 났고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남편과 외출을 할 때는 남편을 믿고 따라다니면 그뿐이였지만, 올케와 갈때는 내가 맡아서 해야만 했다.  버스 기사분께 물었다. ' 신불산 공원묘원' 에 가려는데 어디서 내려야하는지, 또 내려서는 얼마만큼 걸어서 가야하는지...버스로 30분을 가야한다는 것과 도보로도 30분을 더 걸어서 가야한다는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버스기사분은 덧붙였다. 걸어서 가려면 힘이드니 지나가는 차를 세워 타고 가라는 보충설명까지 곁들인다. 운동삼아 걸어가야겠다는 내생각과는 달리 올라가는 길이 제법 가팔랐다. 몸을 앞으로 내밀고 고개를 쭈욱 빼면서 지나가는 차를 세우려는 듯 바디랭귀지를 날렸다. 차가 한 대 멎었고, 창문을 여는 운전석을 향해 "좀 태워줄 수 없어요?" "어디 가시는데요?" 가는 방향은 한군데 뿐인데도 그렇게 물어왔다." 신불산 공원묘지'에 가려는데요." "그러세요? 우리도 거기 가는데 타세요." 친절한 분의 덕택으로 우리는 힘들지 않게 산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린 우리는 '사무실'부터 찾았다. 공연히 산소를 찾는다고 시간을 허비하기 보다는 사무실에서 열람해 아르켜 주는데로 찾는다면 훨씬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꺼라는 생각에서였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연도와 날짜를 말하니 금새 찾아내주었다. 다음에 올때는 힘들지 않게 와야겠다는 생각에 사무실 직원에게 물었다. "전에는 셔틀버스를 본거 같았는데 요즘도 운행하세요?"  몇 년 전까지만해도 '순환버스' 를 운행했으나 지금은 여러가지 제반적인 이유로 운행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쉽긴 했지만 해가지기전에 집에 도착해야한다는 생각에 우리는 서둘렀다.


사무실 직원이 아르켜 준 번호를 들고  헤맨 끝에 친정부모님의 산소가 눈에 뜨였다. 측백나무가 부모님산소를 방풍림처럼 둘러쳐져 있는게 보였다. 상석에 언니가 가져온 과일들을 올려놓고, 일회용술잔에 술을 따르고 몇 년만에 만난 부모님께 세배를 드렸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