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제인의 哀歌(5)

정순이 2004. 12. 22. 14:14

                                                              부제:바람부는 언덕에 서서....

 

남편과 별거를 함으로써 아내는 잠시나마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분을 만난것도 별거를 했었기에 그나마 만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에 객쩍은 웃음이 자꾸만 후두를 간지럽혔다. 그러나 마음만은 편치 않았다. 그러기를 보름 쯤 되었을까? 소식을 들으신 시어머님이 부랴부랴 집으로 찾아오셨고, 난방도 되지 않는 방에 잠을 자는 아내를 보시드니 이내 손을 잡고 "마누라없이 고생을 하며 살아봐야  아내 귀중한걸 안다"시며 자신을 따라 시댁에서 같이 지내자며 손을 잡아 끌어셨다.  팔순을 바라보는 시어머님이 자신을 달래고 있는 모습을 대하고 있자니 아내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완고했다. 시어머님은 아내의 고집을 꺽지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러기를 여러번..... 참으로 인간으로서는 할짓이 못 된다는 생각을 거듭했다. 그런 어느날 아내는 집에 갈일이 생겼다. 늦은 시각 갖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큰방에 널브러져 있는 빈캔맥주병이 남편의 고단함이 엿보였고, 앙상한 남편의 몰골이 자꾸만 아내를 나약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남편에 대해 가졌던 악한 감정들은 남편의 앙상한 몰골에 자꾸만 다져먹었던 마음이 흐려지게 했고, 생각은 혼란에 혼란을 거듭했다. 그런 어느날 또다시 집에 갈일이 생겼다.

 

큰방을 외면하고 작은방에 들어서니 남편은 컴을 켜 놓은 채 술기운에 떨어져 잠이 들어있었다. 켜놓은 컴 모니터에 자연히 눈길이 멈추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쪽지함을 열어보았다. "남편 아이디로 들어올 수 없나?" 남편이 그여자에게 보낸 쪽지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느낌이 이상했든 듯 남편이 부시시 눈을 뜨며 "지금 머하고 있노?" 아내의 오른손이 잡고 있는 마우스를 훽 나꿔챈다. 그 여자에게 보낸 쪽지 하나만 봐도 남편의 생각이 어떤지 알수 있었다. 아내와 별거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전혀 뉘우치는 기색없이 그여자와 놀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기실 아내가 없음을 틈타 마음놓고 그여자와  놀 생각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남편의 앙상한 몰골은 아내에게 보이기 위한 전시용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더 남편이 미웠다. 또 다른 각도로 남편을 이해하자면, 아내가 자신을 버리고 간 이유가 그여자 때문이라 그여자와 의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수습할려고 했는지까지는 모를일이다. 아내는 눈에 뜨이고 손에 잡히기만 하는 물건이 가까이 있었다면 남편을 향해 내리치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팔에 젖먹던 힘까지 보태 남편의 이마에 내려 던졌다. "니도 인간이가?"  갑작스런 아내의 행동에 당황한 남편이 오른손을 들어 이마를 짚는걸 보면서  아내는 서둘러 집을 나왔다. 혼자 있는 방으로 돌아오면서 아내의 확신은 더 굳어져갔다. '이혼'이라는 단어.....

 

어느 부부나 부부싸움없이 사는 커플이 얼마나 될까만은 이같은 경우라면 모든아내들은 '이혼' 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결혼할때의 배우자에 대해 가졌던 환상은 오래지 않아 희박해지고 웬만한 일은 이해하며 살아갈 것 같았던 마음도 살아가면서 장점보다는 단점에 더 눈에 뜨이는지 모른다. 그러기를 거듭하다 급기야는 다른집 배우자들과 비교하게 되고, 배우자에 대한 서운함의 더께는 쌓여만 간다. 그러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자라 엄마의 손길이 필요치 않을 때 아내들의 공허함은 이루말할수 없게된다. 그 공허함을 끝없는 노력으로 자신의 개발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벼랑끝 모험을 감행하기도 해 미명의 복선이 깔리기 마련이다. 어떤 경우든  역기능과 순기능이 있게마련..... 아내같이 온라인을 통해서 사람을 알게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를 만나 위안을 받는다면 그걸로 충분조건은 되리라는 생각이다. 오프라인으로 이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어느누구나 살아가면서 가슴아픈 사랑은 한번 쯤 겪었으리라.

 

유년시절에는 선생님에 대한 사랑으로 사랑앓이를 했을수도 있고, 짝지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다. 아내에게도 그런 아픈기억이 있다. 채팅이라는 용어가 생소할 무렵으로 기억을 소급해 올라가면....두어달 먼저 채팅을 하게된 남편은 모임이 있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을만큼 온라인에서의 사람들과 이야기에 몰입되어 있었다. 처음 아내는 잠을 자지 않고 채팅에 몰두해있는 남편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게 뭣이 저렇게 재미 있을까?'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점점 아내와 보내는 시간을 외면하고 컴모니터에 있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은근히 샘이 나곤했다. 남편 어깨너머로 본 대화방은 아주 재미있어 보였다. 타이핑이 빠르지 못했던 아내는 대화방을 기웃거리며 그들의 이야기에 넋을 놓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아내는 어쩌다 마음을 먹고 그들의 말에 대꾸라도 할라치면 그들은 벌써 다른 이야기를 화제로 옮겨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저렇게 빨리 타이핑을 칠수 있다면?' 그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뿐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대화방을 나오곤 했다.

 

그들은 아내에게 보란 듯이 '태그' 나 '이미지', '영상'을 올리며 묘기를 부리는 듯 했다. 모니터 창을 통해 흘러 나오는 '음악'...이  모든게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아내도 언제쯤 그들과 합류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고, 자주 그들과 어울리다 보면 아내의 실력도 일치월장 하지 않겠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어느날 인천에 사는 어느여성이 마스터로 있는 방에 들리게 되었고, 그녀의  세심한 배려로 '태그' 라는걸 알게 되었고, 그분은 전화까지 해주며 '음악' 올리는 방법까지 아르켜 주었고, 아내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그녀의 배려로 아내는 음방을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 자신이 대견스러웠고, 아내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저들보다 조금 더 빨리 깨우친 아내를 대단하게 본 듯 했다. 어느분은 자신의 공장에서 만든 물건을 주고싶다는 애정을 표시하는가하면 어느분은 자신이 찍은 사진이 '사진콘테스트'에 출품했고 당선 되었던 사진이라며 아내에게 꼭 보내주고 싶다며 주소를 물어오기도 했다. 그런 즐거움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때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던 아내에게 다가온 한 남자가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적극적이라 등거리를 유지하며 그분을 탐색하곤 했지만, 그분은 아내에게 지극정성으로 대했다. 남편과 결혼해 살아오면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을 그분을 통해서 느낄수 있었을 만큼 그분은 아내에게 다가와  있었다. 그분은 아내와의 만난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아내에게  예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상대의 얼굴과 직업을 직접확인해보지 않았으니 그분의 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지만, 그분의 모든말이 진실처럼 느껴졌다. 아니 진실이 아니여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분은 집에서 아이들 영어를 가르키고 있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시골에서 자라 공부를 많이 하진 못한 아내는 이야기 도중에 모르는 단어라도 나오면 스펠링까지 곁들이면서까지 설명해주곤 했다. 어쩌다 그분의 목소리가 듣고싶어 전화를 걸어도 그분은 전화비용이 많이 나온다며 자신이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기실 다른 사람이 아내와 같은 경우라 하더라도 아내와 같은 마음이였을 것이다. 비록 사이버사랑이었지만 우리는 전혀 게의치 않을만큼 사랑했었다. 사랑의 깊이가 그 무게를 더해 갈 무렵 그분은 느닷없이 나에게 이별을 선언했다. 그런 아내는 자신을 멀리하려는 그분의 마음을 읽진 못했다. 아내는 그분을 잊기에는 너무 깊이 빠져있었든터라 그분과의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거지만, 사이버사랑이 대개 그러하듯이 그분과의 인연은 일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아내의 마음에 크다란 생채기를 남기고 홀연히 떠나갔다. 처음으로 겪는 아내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정도로 아프게 다가왔고 그분에게 몇번이나 메일을 보냈다. 다시 돌아와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메일을 보내곤 했다.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던 사람이 떠나가고 난 뒤 홀로 남겨진 아내는 감내하기 너무 힘들었다. 온 세상이 잿빛같은 날들의 연속이었고, 마른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속울음을 삼키곤했다. 그분은 그렇게 아내에게 깊은 생채기만 남겨좋고 기억의 폴드속으로 사라지고 말았고 아내는 두 번 다시 마음을 주지 않을꺼라며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