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제인의 哀歌....

정순이 2004. 12. 16. 11:50

오늘부터 어휘력을 키우기 위해 수필을 써볼참이다.

 

"당신 00이름으로 된 비밀번호와 아이디 말해바바요." 이 말이 화근이 될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건 아니었다. 살아오면서 남편이 자신에게 한 태도를 봐서는 충분한 반대급부이겠지만, 남편의 성격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꺼라는 짐작을 못한 아내도 아니였다. 보름 전 채팅 메인홈을 기웃거리다가' 추천대화상대' 에 남성들의 이름이 등재 되어있었다. 같은 지역에 사는 비슷한 나이의 상대남성의 이름이 떠 있는데 그 이름들 중에서 남편의 다른 이름을 발견한 아내는 짓궂은 장난끼가 발동을 했고, 남편에게 쪽지를 보내게 되면서 싸움의 발단이 비화되고말았다.

 

 "아자씨, 지금 머하고 있어요?" 반응이 없다. 분명히 이름이 접속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반응이 없다. 그럴리가 없다고 도리질을 하면서 재차 쪽지를 보냈다. "아자씨, 시간 있으면 저하고 데이트 하지 않을래요?" 'TV 백분토론'을 보고 자신의 방으로 건너간 남편이 컴을 켜는 걸 보았고, (방에 난방을 하지 않기때문에 컴을 켜는일이 아니라면 굳이 그방에 가지 않는다.)분명히 남편의 다른 이름이 접속해 있을꺼라는걸 알고 있는데 두번에 걸쳐 쪽지를 보내도 반응이 없다는 게 이상한 생각이 들어 남편의 방으로 건너갔다. "아니, 쪽지를 보내 데이트 신청을 하는데 왜 반응이 없어요?" 남편의 방문을 열고 남편을 향해 소리를 냅다 질렀다. "쪽지 오지 않았는데...." 남편은 말끝을 흐렸다.

 

아내는 자신의 방으로 건너가며 뒤따라 오는 남편에게 "이거 보세요." 남편은 아내 어깨너머 모니터를 내려다보니 정말 자신의  또다른 이름이 아내의 '추천대화상대'로 등재되어있음을 보았다. 아내의 생각 이면에는 남편과  사소한 의견대립이 있을 때 종종 증거를 대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이 옳다며 고집해오던 남편에게는 무엇보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곧잘 해오든 터였다.  남편도 이상한 듯 도리질을 하고 자신의 방으로 건너갔지만, 그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더 이상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연증식을 한다. 그럴리는 없다는 생각과 함께 어렴풋이 떠오르는 한여자가 있다. '혹시 그 여자에게 남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가르켜 주고 접속하게 한 다음 둘이서 데이트를 즐기는게 아닌가' 라는 의구심이 자꾸만 목덜이를 간지럽혔다.  '얼마든지 데이트를 즐기려면 다른방법으로 하면 될터인데, 왜 남편의 다른이름을 빌려줬을까 ' 라는 생각에 이르자 더 괘씸한 생각까지 드는 것이 아닌가. 언제든가  남편에게 그런 말을  한적이 있다. "온라인에서 즐기는것 까지는 괜찮지만, 오프라인으로까지 이어가는건 안돼요. 당신이 외도하고  싶으면 언제라도 피워요. 그러나 내가 바람을 피웠을 때 다른 말은 하지말아요." 라고 못을 박아둔적이 있었다.  그 밑바닥에는 채팅의 난삽함을 직접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어느날 남편도 익히 알고 있는 남자분한테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로 잠시 볼일이 있다며 쪽지를 보내왔다. 그렇다면 잠시 만나 술이나 한잔하자며 답장을 보냈다. 당연히  남편에게도 알려야 겠다며  전화로 전했고, 그분의 전화번호를 남편에게 말했다. 내 생각 기저에는 공연히 여자가 나서 오해의 불씨를 싹틔우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자두분이서 서로 이야기하는게 더 나을 듯해서이다. 여자와의 만남이라해도 남편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는 남편인데, 더군다나 남성으로부터 받은 쪽지를 남편에게 말을 하지 않을 순 없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 분이 우리동네에 왔을 시간인데도 남편에게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내 입장이라 남편에게 말을 했었고, 아내는 뒷전으로 물러 나 남편하는데로 따라가면 될 듯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 그남자분은 우리동네에 왔을 시간인데도  남편으로부터 전화를 받지 못했다. 어느누구라도 가졌을 당연한 생각인데 말이다.

 

아직 '그남자분이 우리동네에 도착하지 않아 남편이 전화를 하지 않았겠지'생각을 했을만큼 남편을 믿었는지 모른다. 내게 쪽지를 보낸 사람은 남편과의 만남보다는 아내인 나를 만나는걸 더 원했을터인데, 남편이 중간에서 그런생각이 앞서 자신과의 만남으로만 정점을 찍을려는 복안을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대충 거울을 들여다본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고, 신호음이 여러번이 울렸다 싶은데도 받지를 않았다.  서운한 마음을 안고 남편이 갔을만한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 가끔 남편과 들리는' 활어횟집'에서 그남자분과 남편은 앉아있었다. 내가 들어서니 하던말을 멈춘 듯 한 분위기였다.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은건 아니지만, 아무런 생각을 갖고 있지않은 듯 그들과 합류했다.

 

그분은 내게 " 이 비누는 내가 이번에 개발한 것인데 아주 좋아요. 한번 써보세요." 그분이 주머니에서 꺼내 내미는 비누 두장을 손에 받아들고  처음만나 어색한 분위기 반전을 꽤할겸  노래방엘 갔다. 남편을 믿지 못하는게 아니라 그일 이후에 비누를 준분과 같은 대화방에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날 남편과의 만났을 때 했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때 알게 된 사실.....남편은 그 남자분과 자신의 대화방에 자주오는 여자친구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자리를 만들려고 했음을 알았다. 어느새 내 자존심은 바닥에 낙엽마냥 밟히고 있는 듯해 심한 모욕감에 쥐구멍이라도 있었다면  숨어버리고 싶을만큼 존심이 상했다. 그러나 그일로 문제를 삼진 않았다.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는 생각이 앞서.....

 

부부가 여자관계로 또는 남자 관계로 인해 따지는것만큼 추해보이는 게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