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임마꿀레
가을의 서정이 만산을 홍엽으로 물들이고있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했던가?그 명제에 부흥하지 못하고 매너리즘에 빠져있다.
하는 일 없이 마음이 바쁜 날들의 연속이다. 러닝머신으로 운동을 할 때만해도 계기판에 책을 올려놓곤 흔들리는 글들을 빨래 집게로 고정시키고 허기져있는 마음의 양식을 채울려고노력했다. 그런 이제, 뒷산에 다니고부터는 시간이 항상 빠듯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서두른다해도 늘 시간에 쫓기듯 숨가쁘다. 언제 느긋하게 여유를 부려보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기실 그것도 한 두달이지 더 많은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면 지루해 마음의 몸살을 앓을 거 같은 두려움도 한 귀퉁이에 내재돼있다.
두어 시간 동안 뒷산에 갔다와서 씻고나면 어느새 출근시간이다. 굳은 마음만 먹는다면 인터넷통신과의 교류를 끊으면 되지 않겠나는 반문이 일지만, 열락에 더 충실(?)하자는 내 자신과의 알력의 파워게임에서 밀리고 만다. 우리 국민 한 사람당 일년에 책읽는 권수가 0.8권이라고 한다. 그런 수치를 볼때마다 과연 나는 일년에 얼마의 책을 읽을까는 물음에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책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에 와서는 도통 책 읽기가 귀찮다. 인터넷방송을 통해 듣는 선율 고운 음악들을 접할때면 타이트하고 숨막혔던 삶들의 슬러시를 필터링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못 헤어나고 있다.
이 책을 인터넷으로 주문 했을 때 두 권의 책을 구입했다. 그러나 나머지 한 권은 표지와 본문에서는 몇 장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지루하다는 생각에 바로 책을 덮어버렸다. 그 작가가 쓴 책을 두어권 읽었던 적이 있었다. 읽을 때 마다 작가의 글쓰는 솜씨에 고개가 숙여졌고 자신이 겪은 삶의 편린들이 아닌데도 몇 권 의 책을 낼 수 있다는 그들은 대체 어떤 두뇌를 가지고 있을까는 의문부호를 찍게된다. 프로필에 올라와 있는 사진들을 유심히 봐도 별 다른 곳이 없는데도 말이다.^^ 두 권의 책을 구입했지만, <내 이름은 임마꿀레> 라는 책은 실제로 겪었던 일이라 더 가슴에 와닿았고, 페이지를 나 읽고 났을 때마다 다음장의 내용을 기대하게 만든다.
같은 나라에서 단지 하나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로인해 벌리는 살상은 너무 참혹했다. 참혹한 현장을 피하기 위해 아주 친하게 지냈던 친구집으로 피신한 사람을 가정부의 신고로 잡히게 되고 그로 인해 사지가 찢기고 무고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 르완다,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라는건 알고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많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은 년도에 종족간 내전이 벌어졌다는건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세계 1차 대전이니 2차 대전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일이다. 물론 지금도 이라크와 여러나라들과의 전쟁이 있긴하지만, 같은 나라에서 단지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민족의 많은 사람들을 총을 쏴 죽이고, 칼로 온몸을 찌르고 그것도 모자라 사지를 갈가리 찢는 끔직한 일을 악마의 얼굴로 나타나 바퀴벌레라고 생각하며 불특정 다수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위해 살상했다. 지금의 북한과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텍스트였다.
1994년 르완다 내전을 겪은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차분히 이야기 하고 있다. 책을 읽다가 홀로코스트와 같은 대량학살이 실제로 최근에 있었던것에 분노한 독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르완다는 다수인종인 후투족과 소수인종인 투치족으로 구성되었다. 두 인종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심각한 갈등을 겪는다. 결국은 후투족은 투치족을 바퀴벌레라 여기며 무차별학살에 까지 이른다. 사실, 두인종의 갈등은 르완다를 식민지배한 벨기에로 부터 기인한다. 효율적 식민지배를 위해 소수민족인 투치족만을 고등교육시켜 훌륭한 민족앞잡이로 키우 덕분에 후투족이 불만이 곪은 것이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인간의 놀라운 '집단적 광기'에 분개했었는데, 그와 비슷한 일이 내가 버젓히 세상을 잘 살아가는 동안 지구 한 켠에서 발생했다니 놀라울 뿐이다.
170cm에 가까운 키에 29kg 깡마른 몸무게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투를 벌리는 임마꿀레를 보면서 많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한 어려운 여건속에서 얻은 인간승리는 정말 위대하다. 폭력과 살인으로 얼룩진 인간의 역사이지만,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가 희망을 걸고 또 살아가려는 건, 바로 임마꿀레와 같은, '용서'를 향한 노력이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