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벽을 뚫고 밖으로 연결되어있는 연통위로 물줄기 떨어지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비가 오나?'는 생각에 귀를 쫑긋이 하고 소리의 진앙지를 향해 귀를 기울였다. 지나가는 자동차가 수막현상으로 빚어내는 소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른 새벽이지만, 드문 드문 바쁜길을 재촉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앵글에 잡힌다. 창문을 열어 확인해보니 제법 굵은 빗줄기다. '이런데도 산에 갈려나?' 대개 산엘 가기 전에 비가 내리면 그날의 산행은 취소를 한다. 그렇지만, 이제 세번 째 산행에 참석한 터라 산악회 메인흐름도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비가 오는 날은 한 번도 산행을 하지 않았으니...산행을 하지 않는다면 문자라도 왔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않은 것도 아니지만, 답답은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속담을 대입하며 몇 분의 망설임끝에 문자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문자보내기 이모티콘을 클릭했다."이렇게 비가 오는데도 산행하나요?"는 물음에, 몇 초 지나지않아 답이 돌아왔다. "갑니다." ㅎ 문명의 이기..놀랍다.
'등로가 미끄러울텐데 정말 산엘 간다는 것인가..?' '약속된 산행이라, 간다고 하구선 다른 곳에서 하루의 시간을 할애할지 몰라.'여러 의문들이 긴꼬리를 이어달고 후두를 타고 세상밖으로 분화를 했다. 등산베낭을 다시 정리해야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준비하지 않아도 될 레인코트를 챙겨넣어야했고, 비가오니 햇볕을 가릴 모자는 필요치않다는 생각에 꺼집어내야했고, 비옷이 있긴하지만 모임장소까지 갈려면 우산도 챙겨야했다. 그나저나 한 번 발을 들여놓은 산악회라 산행을 할 때마다 참석하라는 메시지를 볼 때마다 거절을 못하는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택시를 탈까하다가 지하철을 타기로 마음을 바꿨다. 가뜩이나 길치인 내가 택시에 의존하다보면 부산 지리를 알기까지는 부지하세월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부산에서 살아온지도 몇 십년이 됐는데도, 아직 부산지명도 다 꿰지 못하고있다. 이야기를 나누다 사람들이 지명을 말할때는 '그런 동네도 있었나?' 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ㅎ <해운대 시외버스 터미널>'한 시간이면 넉넉하겠지.' 물론 두번이나 환승을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긴하지만, 기꺼이 그 번거로움을 성가셔하지않으리! 지하철을 타면 도로정체도 없을 것이고, 속도도 빨라 한 시간이면 넉넉 할 것이라며 시간안배를 하고 모임시각 한 시간 전에 집을 나섰다.
헉....그런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친구의 말을 들을걸 후회하는 마음이 일기 시작한건 모임시각을 몇 분 앞두고서였다. 바지런히 지하철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필링으로 저장해둔 돈데보이가 들려왔다, 액정화면을 들여다보니 산악회회원의 얼굴이다. 모임시각에 도착하지 않아 걱정이 되어서인듯했다. '거의 다왔어요.' 다시 벨이 울렸다. 이번엔 산대장님이시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헤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어느 방향,몇 번 출구를 나와 시외버스 대합실로 오라는 안내전화였다. 이미 다른 출구로 나오고 난 후인데...
빗길을 뚫고 여기 저기를 살폈다. 시외버스 터미널이라면 대형버스가 보일텐데...가까스로 도착을 해보니 다른 회원들은 각자 우산 하나씩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나무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인터넷카페에 포스팅하기 위한 퍼포먼스다. 남자 일곱 분에 여자로는 나 혼자 홍일점이다. 이번엔 용기가 좀 생겼다. 지난 번 두 번째 산행때는 여성이 한 명도 없어 포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눈치 빠른 산행대장님이 "오늘은 혼자가 아닙니다. 나중에 누구 누구가 합류 할 겁니다."ㅎ 정말 재치 있으시고, 순발력, 위트 넘치신 분이시다.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농담을 해도 그에 대처해내는 재치나 기질이 보통이 아니다. 00산악회의 즐거움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데 일등공신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오늘은 비가오니 산행은 무리구요, 해운대 갈맷길을 걸을 생각입니다. 2시간 반이나 3시간정도 걸으면 될 듯합니다. 경치가 아주 좋습니다. 3시간 걷고 나면 도착하는 곳이 섶자리입니다. 거기서 활어회를 곁들인 장어구이를 먹을 생각입니다." 그렇게해서 해운대 해안도로를 끼고 걷게된 갈맷길...아직 부산에 살면서도 누리마루 한 번 구경하지 않았다고하면 '부산 사람 맞냐!'는 답이 돌아올 듯..
비오는 날의 백사장...굵은 빗줄기의 출연만 아니라면 운치있는 모습들이다. 수평선 너머로는 어떤 모습의 세상들이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듯 광할한 바다! 백사장 위로 한무리의 갈매기들과, 비둘기들이 군무를 즐기고 있었다. 일행이 다가가자 비조의 특성을 살리며 바다위를 활공과 유영의 경계를 넘나든다. 파도가 밀려오면서 다랑이 논처럼 켜를 만들었을 모래톱들은 내리는 비로인해 다림질을 해놓은 듯 매끈하다, 왼쪽 오른쪽, 지그 재그..여기 저기 꾹꾹 쩍혀지는 발자국들은 눈위를 걸은 듯하다. 치유된 상처가 덧나기라도 한 듯한 깊게 패인 자국들로 화인을 찍어놓은 듯했다.
백사장을 지나고 틈 없이 들어차있는 거대한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과밀한 도시에서 토지의 고도 이용이라는 측면에서 지어졌고 하늘에 닿는 집이라는 뜻을 가진 마천루! 하늘에게 도전장이라도 낸 듯이 솟아있는 빌딩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제 몸을 드러내고 있다. ! 그리스어로 '사냥창'을 뜻하며 이집트 신전 입구 양쪽에 세워져 태양을 상징한다는 오벨리스크!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않은 낮은 아파트를 지나기도하고 화무십일홍이라는 명구를 따르기라도 한 듯 벚꽆들은 낙하해버렸고, 무성한 잎들만 붉은색으로 광합성을 하고 있다, 좀 있으면 떨어진 꽃잎위로 까아만 버찌가 꽃을 대신하겠지. 벚꽃길을 지나고 목적지인 섶자리에 다다랗다. 고깃잡이 어선들이 들고 나는 곳...바다를 낀 바람의 세기는 대단했다. 풍향따라 우산의 방향을 바꿨는가하면 이내 다른 방향으로 된바람을 일으켜 우산이 뒤집히곤 했다. 낯익은 얼굴이 악수를 청하며 반색을 한다. 여기 저기 구역을 정하고 가름막을 한 포장안으로 들어서니 갈맷길을 같이 하지 않은 일행이 주문해놓은 듯 음식이 정갈하게 차려져있었다. 필두로 나선 총무님의 구호는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마지막 위하여는 한 음절마다 끊어가면서 스타카토로 선창 하고 팀의 구성원들은 같은 구호로 호응하며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위하여!위하여! 위.하.여!~